이 영화를 저희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봤어요.
관객이 적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구요.(영화를 본 지는 10일이 넘었습니다만...)
aipharos님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잔뜩 긴장해서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답니다.
잔인한 장면은 워낙 잘려나간 부분이 많아서인지 그닥 수위가 높진 않아요. 정말 엄밀히 말하면 이 정도 수위는
어느 정도의 호러물만 뒤져도 너무나 많이 나온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가진 정서적 공포 같아요.
단순하게 이 장면 뒤에 나타날 살인마의 모습을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그 살인마가 벌일 끔찍한 고문과 도륙이
미리 연상되어 정서적인 공포가 러닝타임을 장악해버리는거죠.
이런 경우 대부분은 영화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게 전형적인 공포 영화도 아니고,

캐릭터들의 심리를 쫓아가는 것이기도 하니 대놓고 한여름 계절음식 먹어대듯 할 수 있는 오락의 대상으로서의 공포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덕분에, 영화의 중간중간 '이건 김지운표 영화'라는 빛나는 미장센의 프레임들이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두 캐릭터가 끝까지 복수에 매진하는 모습은 그동안 도덕적인 금기처럼 여기던(한국에서) 성역을 다 빗장 제쳐버리고
까댄 느낌은 있지만 역시나 뭔가 아쉽습니다.
완전본을 보면 좀 다를까요? 그저 잔혹의 강도가 강해지면서 이를 통해 은유하고 싶은
한국이란 시스템을 더 기괴하게 풍자할 수 있을까요? 전 확신은 없습니다.

영화 [Henry : the Portrait of Serial Killer/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을 보면 살인마의 과거따윈 안중에도 없고

그가 벌이는 살인의 흔적들을 그저 덤덤하게 쫓아갑니다. 살육을 하면서 존재를 확인한다기보다는
이건 그저 그들에겐 생존의 방식이란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장면 역시 아무런 설명없이 끝을 맺습니다.
[Man-Bites Dog]처럼 요란스럽게 살인마의 뒤를 쫓으면서 찍어댄 페이크 다큐보다는 오히려 전 [헨리...]가 더 인상적이었고 강한 충격을 줬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과 달리 [악마를 보았다]는 약혼녀를 무참하게 빼앗긴 국정원 요원의 추적이 곁들여집니다.

관객들이 온전하게 살인마의 모습을 쫓아갈 수도 없고, 쫓고 쫓기는 추적같은건 더더욱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감독은 그런 장르적 특성은 철저하게 배제한 것 같구요.
캐릭터 역시 흔하지는 않습니다. 복수에 끝까지 매진하고 있는 두 캐릭터 역시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 정도되면 극랄한 악역이 자신의 가학적 행위를 즐거워하며 머리 싸움도 좀 즐기고 자신을 쫓는 이와의 감정적 대립도 하면서
이러한 과정에서 일종의 소통이 일어나는 법인데 이 영화에선 그런 감정의 소통같은게 전혀... 존재하질 않습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다는 겁니다)
감정의 소통이 불가한 이들끼리의 갈 때까지 가는 대립이야말로 정말 지금의 한국 사회의 메타포같지 않나요?

[달콤한 인생]이란 한국 영화 역사 사상 개인적으로 한 손에 꼽을만한 수작을 낸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불꽃캐스팅과 영화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전 한 템포 쉬어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분들이 [달콤한 인생]이 개봉했을 때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는 영화'라고 혹평했는데 전 그 때 그 감상평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전 오히려 [악마는 없다]가 그런 기분이 듭니다.
마지막 수현이 자신 개인적인 방법만으로는 경철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는 괴로움과 좌절,
그리고 밀려오는 허망함의 흐느낌은 다분히 공감이 갑니다만 전 이 영화 자체가 결과적으로는 허망했어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이 글을 대충 휘갈겨 쓰면서도 제가 이 영화를 지인들에게 추천해야하는지 아닌지,
이 영화를 인상깊게 본 것인지 아닌지...도 도통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전혀 뭐라 영화의 영화적 재미에 말을 할 수 없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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