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영화를 못 본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1년에 180~220편은 보던 영화를 올해는 지금(5.21)까지 고작 45편 정도 밖에 못봤다.
그러다보니 영화 포스팅도 거의 없어지고 쓰게 되더라도 이렇게 몇 달치를 모아 성의없이 쓰는 정도.
몸이 피곤하니 자꾸 때려 부시는 영화만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_-;;;
길게 쓰기엔 시간도 좀 지나고해서 짧게 적어본다.
Green Zone/그린존
directed by Paul Greengrass (폴 그린그래스)
115분 / US
브라이언 헬게렌드의 각색,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 멧 데이먼 주연... 이런 최강의 밥상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만한 시너지는 좀처럼 보여지질 않는다. 멧 데이먼은 여전히 진중한 역할을 자신에게 딱 맞게 입고 있고,
폴 그린그래스의 현실적인 연출은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뻔한 이야기를 스릴러 형식으로 취하고 있다는 위험 부담이야 있다고 해도 영화는 너무나 단선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the Hurt Locker/허트 로커]가 정치적 부조리와 탐욕이 개개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에 대해
충실히 다룬 것과 달리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그저 정의감과 사명감 속에서 끝없이 정해진 코스대로 달려갈 뿐이다.
영화가 분명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환상의 조합들로부터 기대한 수준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Capitalism : A Love Story
directed by Michael Moore (마이클 무어)
127분 / USA
마이클 무어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감독이다.
비록 그의 방식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 덕분에 그에 대한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갈리고, 그의 영화 제작의 의도를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마이클 무어는 진작에 이 영화에서 '자본주의'의 원론적인 고찰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고루하고 무의미한 것인지 알았다기보다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로 오인되고 당연시되는 현재의 지구촌에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라는
갑옷을 입고(누군가 말했던 영원히 자기 몸에 딱맞는 황금구속복) 어떻게 수많은 서민들의 터전을 짖밟고
사리사욕을 위해 그 힘을 키워나가는지를 고발하는 데 중점을 맞춘 듯 하다.
사실 이런 연출가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조금은 오버하는 듯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뜻 말하기 힘들어하는 주제들을 거침없이 풀어내고 한 번 더 고민하고
나아가선 행동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이런 연출가 말이다.
Defendor/디펜도르
directed by Peter Stebbings (피터 스테빙스)
101분 / Canda l USA l UK
아래 언급할 [Kick Ass/킥 애스]와 지금 언급하는 [Defendor/디펜도르]는 일상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의 수퍼 히어로들(아니, 미국의 수퍼 히어로들)이 난데없이 인간 세상에 발을 붙이게 된 샘 레이미 감독의 [Spider-Man] 이후로
다시 재조명되는 전혀 수퍼 히어로같지 않은 수퍼 히어로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인 우화들이다.
경찰이 폭력을 통제할 수 없는 현실,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아메리칸 드림의 기치를 올리며 모두가 풍족했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금의 미국.
모두가 폭력에 침묵하고 있어야만 하는 시대에 기껏 집요하게 이들을 막기 위해 일어선 이가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우화로 볼 수 밖에 없다.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는 문명인들이 야만에 길들여지고 지식인은 침묵하며, 공권력은 기득권의 수호를 위해 남용될 때
궁핍한 서민들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배경이 되는 도시의 모습은 흡사 배트맨의 썩어 문드러진 고담시를 연상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모두가 생각하던 바램의 결말이 아니어서 더 그 여운이 남는 묘한 영화.
그리고 본 후에도 씁쓸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
Kick-Ass/킥 애스
directed by Matthew Vaughn (매튜 본)
117분 / USA l UK
그저 잘 빠진 데뷔작 [Layer Cake/레이어 케이크]와 나름 준수했던 환타지물인 [Stardust/스타더스트]로 이름을
알린 영국 출신 감독 매튜 본(어엉???)의 본격적인 헐리웃 무대 영화.
그가 전설적인 가이 리치의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의 프로듀서였고,
최근엔 [Harry Brown/해리 브라운]의 프로듀싱도 맡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고작 세번째 작품이지만 내공이
그닥 만만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가막힐 정도로 전체적인 설정을 [스파이더 맨]에서 따오면서도 기존의 히어로물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운
히어로 영화의 방향을 제시할 정도로 이 영화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공포 영화에서조차도 그닥 다뤄지지 않는, 사실상 금기시되는 아이에 의한 신체적 살해 장면이 거침없이 나온다는 것이
대단히 거북할 수 있으나 이 영화는 그러한 일반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힘들 정도로 기존의 가치를 철저히 짖뭉게고 전복시킨다.
영화의 출발은 고작 도시를 장악한 폭력 모리배에 우연찮게 얽혀 들어가버린 히어로 지망생의 처절한 고난기로
점철되어 시작되지만 영화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보는 이를 압도하는 화면과 감성적인 후크는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
주인공은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의 피터 파커처럼 놀림이나 당하던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학생이었지만 그저
소시민적 영웅주의와 약간의 정의감에 휩싸여 자아도취적인 히어로 행새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엄청난 유명세 뒤에 맞닥뜨린 것은 실질적인 폭력에 대한 엄청난 공포와 그 넘을 수 없는 간극이었고,
그러한 공포를 겪어내면서 조금씩 진정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말도 안되는 스토리가 보는 이에게 대단히 강렬하게 설득력을 갖고 다가오는 걸 보면 매튜 본의 내공도 보통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고. 무엇보다 절정부분, 니콜라스 케이지가 딸에게 소리치며 마지막 조언을 해주는 장면은 자경 폭력의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카타르시스와 감정적인 후크를 유발하는 명장면이다.
보지 못하신 분은 꼭... 찾아 보시길.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극장 흥행 참패하는 바람에 나중엔 황당하리만치 어이없는 교차 상영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
매튜 본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다소 위험한 메시지의 [해리 브라운]에서와는 달리 '자경'의 입장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듯한 느낌이 오히려 판타지에 가까운 [킥 애스]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킥 애스]의 마지막까지도 스파이더맨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은 이래저래 재미있는 설정.
의형제
directed by 장훈
116분 / Korea
장훈 감독의 전작 [영화는 영화다]가 그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였다면, [의형제]는 적정한 자본을 통해 어떻게
웰메이드를 뽑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이 누구였든지간에 봤을거다. 가장 좋아하는 송강호와 여기 대단히 관심있게 보고 있는 강동원이 함께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실제로 접한 이 영화가 내가 기대한 것보다도 더 인상깊었다는 사실이 그저 흐뭇했다.
꼬고 또 꼬기에 충분한 소재들을 전혀 지저분하게 풀어내지 않고, 개인과 개인의 갈등 관계는 신속하게 마무리짓고
개인과 시스템간의 갈등을 주요 갈등 요인으로 다룬 것도 무척 인상적이다.
송강호가 입에서 빨갱이란 말을 하며 우리 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표상처럼 나오고, 강동원은 주체 사상에 철저히 물든 소위 말하는
빨갱이지만 이 둘은 서로 마주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영역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한다.
따지고보면... 사람사는 건 다 비슷한 법이니까.
사실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색깔 공세때문이지만(전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면 '빨갱이', '좌파'라고 몰아대는
웃기는 인간들이 득실한 이 땅에서 과연 [의형제]가 한 집 아래서 이뤄낸 극적인 화해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고개가 저어지지만...
the Crazies/크레이지
Breck Eisner (브렉 아이스너)
101분 / USA
[Thoughtcrimes]로 재능을 보였으나 헐리웃 입성작인 [Sahara/사하라]에서 실망을 안겨준 브렉 아이스너 감독이
조지 로메로의 동명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
놀랍게도 다음 작품은 전설의 [Flash Gordon/플래쉬 고든]의 리메이크다. 워낙... 추앙하는 팬들도 많은 영화라
이걸 도대체 어떻게 리메이크할 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부담이 될 법도 하다.
이 영화의 원작인 조지 로메로의 작품은 보긴 했는데 이미 거의 20년 가까이 된 터라 기억도 잘 안나고
(후반부 결정적그 부분은 기억난다) 해서 원작과 리메이크의 차이를 어떻게 말할 방법도 없지만 그게 그닥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이지 좀비물은 어디까지 진화할 지 모르겠다. 물론 이 영화를 '좀비물'로 보는 건 옳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전형적인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 변종, 사망 후 극도의 공격성을 띄며 재생하는 점등을 들면 그닥 좀비물과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로메로의 [Land of the Dead/랜드 오브 더 데드](2005)에서 좀비들이 사회적 무리를 만들고 서열체계를 확실히 갖추기 시작하더니
이 영화에선 좀비와 거의 유사해보이는 변종들이 인간이었던 때의 자신의 심성을 극대화한 채로 사고능력을 갖고 행동한다.-_-;;;
아... 생각해보니 조지 로메로의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며 잭 스나이더가 리메이크하기도 한 [Dawn of the Dead/새벽의 저주]
에서도 인간들이 좀비가 된 후에도 자신들의 소비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쇼핑몰로 모여들기는 한다
the Book of Eli/북 오브 일라이
Hughes Brothers (휴즈 형제)
118분 / USA
휴즈 형제라면 영화 조금이라도 보시는 분들은(나이도 좀 있어야...겠고.ㅎㅎㅎ) 다들 기억하실 영화들이 있다.
흑인 형제 감독으로 존 싱글턴, 스파이크 리와는 다른 방향의 보다 주류 대중에 어필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들의 데뷔작인 [Menace II Society/사회에의 증오](1993)와 [Dead Presidents/데드 프레지던츠]로
거침없는 비주얼로 깊은 인상을 준 형제 감독.
이후의 행보가 영... 난감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들은 다시 댄젤 워싱턴과 개리 올드먼을 내세워 디스토피아적인
SF 영화를 만들어냈다.
어째... 영화의 분위기가 아무리 봐도 게임 'Fall Out (폴아웃)'과 너무 비슷하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야 이건
일본 만화인 '북두신권'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핵전쟁 후 폐허가 된 세상에서 약육강식이 판을 치노라면
뭐 이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니 당연한 설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와 신실한 기독교의 부활에 대해 동시에 얘기하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교를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려는 기득권에 대한 풍자이고 경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종교에 관심없고, 사실 종교를 이용한 분쟁이 세계에 팽배한 걸 생각하면 이 영화의 결말에도 난 공감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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