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lourious Basterds/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 (Quentin Tarantino)
2009
Brad Pitt, Melanie Laurent, Christoph Waltz, Eli Roth, Diane Kruger, Daniel Bruhl
늘 할 말이 많아지만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따지고보면 처음부터 그의 영화는 말이 많았고, 캐릭터들이 대사를 할 때도 대단히 정적인 가운데 긴장감을 풀어
버리거나, 또는 반대로 극도로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을 얄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감독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선
이전작 [Death Proof/데스 프루프]에서 보여줬던 형식미의 확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러닝타임은 150여분에 이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어디 한 둘이 아니다만 영화는 산만하지 않고 이리저리 난 길을
잘도 찾아가는 느낌이다.
타란티노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으응?'하는 느낌이었으나 생각해보면 잔혹한 살육이
합법적으로 이뤄진 이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전쟁'이라는 소재가 타란티노와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왜 이제서야 전쟁 영화를 소재로 만들었지?'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되긴 했다.
아무튼, 다양한 사적인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을 배치하는 초반부는 대사의 한끝을 보여주며 상당히 치밀하게 진행되는데
실존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관객들의 막연한 전지자의 입장을 통쾌하게 배신하는 후반부 절정은 탁월한 후련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런 전범들이 그따위로 자신들 발로 종말을 찾아 갔던 사실에 대한 역사적 응징의 느낌도 드니까.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다보면 항상 느끼지만, 이 이야기꾼은 이제 짜여진 틀없이 부유하던 자신의 스타일을
단단히 자신만의 형식미로 구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의 재기는 여전하되 조금씩 이야기를 '잘 꾸려나가는' 재담꾼으로의 면모를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고 할까.
덕분에 그의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최소한 한 번 보고 라이브러리에 쳐박아놓아버리는 영화
에서는 많이 벗어나지 않았을까?
[Pandorum/팬도럼]
크리스티앙 아바르 (Christian Alvart)
2009
Ben Foster, Dennis Quaid, Antje Traue
근래들어 지구가 '멸망해버린다'는 가정을 둔 영화들이 봇물터지듯 나오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Wall-E/월-E]도 다시 지구로 귀환하긴 하지만 사실상 지구의 문명은 종말을 일차적으로 종말을 고한
것이고, 알렉스 프로야스의 수작 [Knowing/노잉]도 기독교적 신비주의에 종말론을 나름 잘 버무려 끝장나버린
지구를 얘기하고 있으며, 최근의 [2012]는 대놓고 지구를 갈아 엎어버린다. 이뿐이 아니라 쉐인 에커의 [9]도
기계문명과의 전쟁으로 생명체가 전멸해버린 지구를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역시 한 순간에 끝장난 지구에서 지나가는 우주선에 히치하이킹한...경우잖나.
그렇다면 이 영화 [팬도럼]은?
이 영화에선 직접적으로 지구 멸망을 다루진 않는다. 지구가 사멸해가는 과정에서 또다른 지구를 찾아나선 우주선에
지구로부터의 마지막 송신이 올 뿐.
그 이후에는 우주선 내에서의 아비규환같은 살육이 있을 뿐인데, 그런 영화들도 우린 너무나 많이 보아오질 않았나.
[에이리언]은 말할 것도 없고, 괴물이라기하긴 좀 그래도 [Event Horizon/이벤트 호라이즌]도 그렇고 대니보일의
[Sunshine/선샤인]도 막판엔 철저한 우주선 폐쇄 공간 내의 사투이고.
그렇다보니 이 영화 [팬도럼]은 이런 수많은 영화들과 조금은 '다르게' 보여야했을거다. 그래서 선택한 건 일종의
반전, 그리고 괴물 캐릭터들의 구체적 형상화.
반전은 그닥 제대로 먹혀들지 않지만 이 영화가 주는 스릴은 이 영화가 지닌 과학적 한계의 단점을 극복할 정도의
미덕을 주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 결과 영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함없이 볼 수 있었다는 것. 사실상 돌연변이가 된 괴물들의 캐릭터도 끔찍하지만
지나치리만치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오히려 더 공포감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혹성탈출]을 보는 기분이었어.
[M.W/뮤]
이와모토 히토시
2009
타마키 히로시, 야마다 타카유키
적어도... 테즈카 오사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면 그 영화화는 조금 더 신중해야하지 않을까?
타마키 히로시가 나와서 관심이 있었던,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영화화한 이 [뮤]라는 영화는 일본이 얼마나
블럭버스터급 영화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홍콩 영화만도 못한 편집, 죽어라 떼깔만 내고 싶어하는
빈약함, 70년대 수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음악으로 뒤범벅이 된 이 영화에 대해선 그닥 얘기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마지막은??? ㅎㅎㅎ '제이슨 본' 씨리즈의 패러디야?
러닝타임 내내 보는게 힘들 지경으로 난감했던 영화.
영화의 내용도 그닥 곱씹을 필요가 없는 영화.
초반에 추격씬이 너무 길어서 '이렇게 길 필요가 있어?'라고 되뇔 때부터 불길하더만...
결정적으로 타마키 히로시가 맡은 캐릭터에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그가 하는 행동마다 '응? 왜?' 라는 생각이 번뜩번뜩 떠오르니..
[Gamer/게이머]
마크 네벨다인 / 브라이언 테일러 (Mark Neveldine / Brian Taylor)
2009
Gerald Butler, Amber Valletta, Michael C. Hall, Logan Lerman, Kyra Sedgwick
어지간해선 '쓰레기'같은 영화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쓰레기'같다는 생각 뿐.
마크 네벨다인과 브라이언 테일러는 제이슨 스태텀의 [Adrenalin/아드레날린] 씨리즈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 첫번째 영화는 그래도 기발했지만 두번째 [Crank High Voltage]에선 기발함을 뭉개버리는 천박함과 저열한 캐릭터와 비주얼로 실망을 좀 했었는데
그들의 이 영화 [Gamer]는 제법 그럴싸한 소재를 갖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얄팍하고 천박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얄팍하더라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면 또 그래도 괜찮은데, 이 영화는 끝까지 어줍잖은 기괴함을 집어 넣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게임 '소사이어티'의
구역질나는 세계관도 그들의 인간에 대한 저급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것같아 씁쓸하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못하고 무뎌진 도덕률을 심드렁하게 표현하려 했다는 것은 알겠으나,
소사이어티같은 영화 속 가상현실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저 난잡하고, 더럽고, 추할 뿐'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이지만 이 감독들이 여성을 보는 시선이 정말 실제로 어떤지조차 의문이 갈
정도로 그들은 여성의 본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의도적인 왜곡의 시선을 갖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튼...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를 이토록 뭉개버리는 이들의 재주도 놀라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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