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 Torino/그랜 토리노] directed by Clint Eastwood
2008 / 약 116분 / 미국

야근을 마치고 어제 밤 늦게 어머님, aipharos님과 함께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의 신작 [Gran Torino].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쓸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영화를 소개하는 간략한 글들에선 이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리고 스틸 컷도 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총을 들고 서있는 경우가 많았고.
하지만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중 가장 따뜻한 시선과 유머가 담긴 아름다운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양의 흐멍(베트남인)들이 이주해와 많은 백인들이 이미 떠나버린 동네에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 월트는
아들들과 손자들과의 관계도 딱딱하다못해 살갑지 않은 무뚝뚝하고 자기 멋대로이며 타인종에 대해 경멸의 시선을
갖고 있는 노인입니다.
흐멍인들에 대해 달갑지 않은 적대감을 갖고 있던 그는 어느날 옆집의 흐멍인 타오를 같은 흐멍인 갱들로부터
우연찮게 구해주게 되면서 조금씩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갖게 됩니다.
여전히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긴 하지만 타오와 그의 누나 슈, 그리고 흐멍인들과의 조금씩의 교류로 월트는 그들을
피부색이 다르고 달갑지 않은 외부인이라는 시선을 거두고 또다른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 인정하죠.
하지만, 자신들의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오를 괴롭히던 흐멍족 갱들은 점점 더 타오의 가족을 압박하고
이를 보다못한 월트는 결국 타오와 슈의 가족을 위해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래 '노감독의 원칙'이란 글에서, 진정한 보수주의자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 영화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란 과거에 대해 반성할 줄 알고, 사회의 공권력이 불의에 대해 무관심하고 눈을 감을 때
어떠한 방법으로 분노해야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대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와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도 여실히 보여줍니다.
월트는 끝까지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꼰대 영감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합니다만,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상황, 강자가 약자를 유린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연로한 나이일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맞서죠.
그리고 삶의 연륜을 통해 그는 마지막 커다란 물리력의 횡포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안그래도 그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지만,
어떤 시선과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러한 시선이 나올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는 내내 의외로 많은 곳에서 등장하는 따스한 유머 덕분에 많이 웃을 수도 있었고,
그 때문에 정작 마지막 장면에서 월트가 그만의 방법으로 타오와 슈의 가족에게 작은 행복을 안겨줄 때까지만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바로 그 장면을 보고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나오더군요.
어머님도, aipharos님도 저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모두 아무 말없이 젖은 눈으로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
또 이런 얘기가 당연히 나오게 되지만...
걸핏하면 법을 외치고 애국을 외치며 나라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약한 자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조금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이 나라에 너무나 많은 '자칭 보수'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씁쓸하고 더러운 기분이 듭니다.



**
이 영화에 등장하는 미국의 중부지방 어딘가의 작은 마을은 아시아의 빈민 이주민들이 이주해오고 기존에
거주하던 백인들은 대부분 빠져나간 듯 합니다. 이미 경찰력은 무용지물이고, 백주대낮에 여성이 맘놓고 걸을 수
없을 만큼 맘놓을 수 없는 동네죠.
더 잘 아시겠지만, 이런 마을이 어디 한 둘이 아니라죠.
재정의 궁핍으로 점점 더 기본적인 지방정부의 집행능력이 무능으로 치달아버립니다.
거리를 청소할 수 있는 인력도 없고, 치안을 책임질 경찰도 부족하거나 형식적인 업무 뿐입니다.
이런 도시들이 우리나라에도 즐비하게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서울의 부유주거지역을 제외하고, 많은 지역의 길거리가 최근 더 더러워지고 있음을 혹시 느끼시는지요.
준공무원이던 환경미화원들이 값싼 용역 업체로 일임되면서 급여는 거의 60%수준으로 떨어지고 업무는 더욱
과중해지면서 점점 더 거리는 엉망이 됩니다. 물론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것쯤은 이제 조금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인 문제지만 말이죠.


***
Gran Torino는 포드사의 명차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들 중 혹시 모르시는 분은 과거 TV 외화드라마였던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이들이 타고 다니던 그 붉은색
유선형 자동차가 바로 그랜 토리노...라고 하면 아실 거에요.(물론 이건 저와 비슷한 연배...이신 분이나.ㅎㅎㅎ
스타스키와 허치 근래에 극장판으로 나온 영화에도 등장하긴 합니다)
Gran Torino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후세에게 남기고픈 모든 것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멋지게 잘 뽑아낸,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갖는 그랜 토리노.
온전한 가치와 화목, 신념을 모두 뭉뚱그려 응집시킨 것이 이 영화에선 그랜 토리노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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