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 Knight/다크 나이트] directed by Christopher Nolan
2008 / 152 min / US
Christian Bale, Heath Ledger, Aaron Eckhart, Gary Oldman, Michael Caine,
Morgan Freeman, Maggie Gyllenhaal, Eric Roberts, Cillian Mur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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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저와 동갑내기 영국 감독입니다.
활동은 미국에서 하고 있지만 그는 엄연한 영국 감독이죠.
그의 데뷔작 [Following]을 보면 놀런 감독의 태생 자체가 독특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영국 영화들이 가진 발칙한 생생함과 전복적 발상을 그대로 끌어 안고 있으면서도 미국 영화적인 장르적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이후에도 놀런 감독의 영화들은 그러한 자신만의 특색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전 늘 놀런 감독의 영화에 쌍수를 들어 환호할 수 없었어요.
그 난리가 났었던 [Memento/메멘토]도 그랬고, [the Prestige/프레스티지]도 그랬습니다.
오히려 [Insomnia/인섬니아]를 가장 좋아했었죠.
아무튼 대중과 평단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도 불구하고 제게 놀런 감독의 영화는 늘 평균이상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the Dark Knight]에 대한 미국 관객들의 일방적 환호가 '설레발'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잘 만들었겠지만 히스 레저(Heath Ledger)등의 유작이라는 점과 놀런 감독의 네임밸류가 그야말로
크리티컬 매스를 불러온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거라고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배트맨 시리즈는 빠짐없이 보고 있기에 이 영화도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전 배트맨 시리즈를 다 보고 있지만, 단 한번도 만족한 적이 없습니다.
원래 Tim Burton(팀 버튼)감독 영화와 궁합이 잘 안맞는 제 입장에선 평단에서 극찬하는 1,2편도 전 그닥
재밌지 않았고 이후 조엘 슈마허의 작품들은 헛웃음만 나왔죠.
그래도 제일 만족했던 건 바로 놀런 감독의 2005년작인 [Batman Begins/배트맨 비긴스]였습니다.
제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얼마전 전 [Wall-E/월-E]가 올해 본 영화 중 최고라고 말한 바 있는데, 불과 며칠만에 그 견해를
번복해야겠습니다. 제가 2008년 본 가장 압도적인 영화는 [the Dark Knight/다크 나이트]가 되어버렸군요.


이제 고담시라는 배경은 완전히 코믹스와 결별했습니다.
고담시는 미국의 여느 대도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졌어요.
팀 버튼의 초현실적 공간은 이미 진작에 없어졌지만, 이번 [다크 나이트]에선 아예 현실의 미국의 대도시
그 자체입니다. 인구 3천만(극중 언급됩니다)의 미국 초거대도시죠.
원래 배트맨이란 존재는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우화적 존재로 나타날 때 그 설득력을 얻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검은 망토에 마스크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어요. 스파이더 맨과 수퍼맨등은 최소한 수퍼 히어로일 때만큼은
시민들과 다른 공간을 갖습니다. 스파이더 맨은 고층빌딩을 날아다니고, 수퍼맨은 아예 하늘을 날아다니죠.
그들의 존재는 일반 시민들이 발을 딛고 있는 시선의 한참 위에요. 그만큼 다른 존재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배트맨은 이게 아니에요.
그는 수퍼 히어로인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의 이동은 일반인들과 다를게 없어요.
묵직한 하이테크의 장갑차를 타고 다니거나 둔해보이는 바이크를 타고 질주해야 합니다.
이게 초현실의 공간에선 제법 멋지게 먹히는데, 리얼리티를 획득한 배경에선 어색하기 짝이 없다는거에요.
정말 보면서 '와... 정말 실제로 저런 캐릭터가 돌아다니면 쪽팔리겠다'는 생각마저 들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최대한 짐짓 모른채 진지함으로 일관하니 더 어색한거죠.

놀런은 결국 배트맨을 땅바닥으로 끌어내리고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임을 강조시켰습니다.
결국 배트맨은 정말 영화에서의 내용처럼 영웅도, 안티-히어로도 아닌 애매하면서도 의미심장한 포지션을
획득하게 됩니다. 영화 내의 시민들에게서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서도 말이죠.
그 덕분에 이전엔 브루스 웨인일 때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이 영화에선 브루스 웨인의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는 겁니다.
영화 내에서 조커(Joker)는 그를 Freak(변태)라고 부르는데 정말 딱 그짝이 난거에요.
이쯤되면 관객들도 '정말 배트맨이 고담시에 필요한거야?'라고 자문하게 될 법 합니다. 게다가 배트맨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인물로 하비 덴트(애론 애크하트)가 나오죠.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만
고담시의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던집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려는 마음도 만만치 않죠.
이러한 배트맨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그저 ORDER를 DISORDER를 넘어선 CHAOS로 만드려는 조커의 계략에
의해 더더욱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관객의 입장에선 분명 배트맨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스크린 속의 시민들은
배트맨의 존재 자체가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잖아요.
매스 미디어를 활용하고 대중을 겁주는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조커에게 배트맨은 사실상 완벽하게 패배합니다.
그는 조커뿐이 아니라 고담시민과 공권력 전부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배트맨은 조커를 응징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내적인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조커와 비슷한 '광기'
에서 비롯됩니다. 배트맨이 자기 내적인 광기로 인해 조커와 그닥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은 사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911 이후에 수도없이 다뤄져온 미국의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방식'에 대한
대처를 얘기합니다.
조커는 돈도 필요없는 그야말로 단지 CHAOS만을 위한 테러를 즐길 뿐이에요.
그가 즐기는 건 '공황' 상태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것을 즐길 뿐이죠.
조커와 배트맨은 사실 그닥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조커도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 계속 존재했으면 하는거에요.
자신의 계략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배트맨이 존재해야만 자신이 의도한 바가 더 확실히 효과를 보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면서 배트맨이 조커에게 내뱉는 '사람들은 그래도 선을 믿는다'라는 말이 씁쓸한 공염불이라고
느껴지는 건 저만이 아닐거에요. 그리고 아주 잔인하고 짖궃은 선택을 하게끔하잖아요.
쉴 새 없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불편한 도덕적 선택을 강요하게 됩니다. 보는 관객도 정말 힘들죠.
마치 놀런 감독은 '넌 이런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건데?'라고 묻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어?라고 되묻는 듯 하죠.

아무튼 조커의 이러한 위압적이고 압도적인 폭력에 도시는 완전히 카오스 상태가 됩니다.
게다가 배트맨은 이러한 폭력을 누르기 위해 더더욱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죠.
아니, 사실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초법적 행위를 합리화하고 소수의 희생을 미끼로 삼게 된다고 말하는게
맞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대처 방식에 대한 그의 대의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고담시의 평화를 위해서'
입니다. 911 이후의 미국의 악의 축을 처단하는 방식과 너무 비슷하지요?
물론 그의 집사인 알프레드(마이클 케인)는 진작에 배트맨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갱들을 너무 몰아대어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죠.
이쯤되면 왜 놀런 감독이 배트맨을 철저히 땅으로 끌어내렸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아요.

극단으로 달려댄 이 영화의 끝에는 우리가 그간 보아왔던 Hollywood Ending 따윈 없습니다.
고뇌하고 번뇌하던 스파이더맨조차 사실상 획득했던 해피 엔딩따윈 없어요. 이 영화의 끝은 배트맨을 더욱더
암흑으로 몰아쳐넣고 팀버튼의 가위손마냥 만들어 버릴 뿐입니다. 배트맨의 폭력적 방식은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거에요.배트맨은 모든 죄를 뒤집어 써야하며, 도망다녀야 하는거죠.
다분히 미국의 정치적 타협과 해결을 은유한 이 엔딩은 보는 이에게 씁슬함을 선사합니다.

액션이 기본인 영화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이 이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약간 할 말이 있는데, 지인 및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에서 [다크 나이트]는 액션을 기대해선 안된다. 액션은 거의 없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전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 반응들이 무척 의아한데요.
(물론 늘 그렇듯 영화를 보기 전엔 간략한 스토리도 거의 안보고, 영화보고 난 후에도 제가 글을 정리할 때까지는
타인의 어떤 리뷰도 보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150분 내내 액션이었거든요.
액션이 나오는 장면도 생각보다 대단히 많았고, 액션이 나오지 않는 장면도 그 리듬이 액션 장면들과 거의
비슷했습니다.(심지어 음악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식으로 비슷한 리듬의 영화들은 중반부 이후엔 진이 빠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일관되게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엔 폭발합니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그 비결을 잘 모르겠어요. 그게 편집의 놀라운 힘 때문인지, 아니면 정교한 내러티브 덕분인지.
아무튼 괴물같은 영화였습니다.


*
히스 레저의 연기는 모두가 말한대로 과연 훌륭합니다.
저 연기에서 살짝만 오버해도 이거 대략 난감했을텐데 히스 레저는 억눌린 광기와 싸이코패스의 간극을
완벽히 오가며 연기합니다.
안그래도 좋은 배우였는데 이 영화를 보니 더 그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누가 되었든 만약 앞으로 또다시 Joker(조커)를 연기해야한다면 히스 레저 때문에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
애론 에크하트의 연기도 좋습니다. 그가 서서히 폭발해가는 감정의 리듬은 아주 훌륭한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크리스천 베일은 어쩔 수 없는 배역입니다. 그의 캐릭터는 연기를 하기 이전에 이미 브루스 웨인일
때와 배트맨일 때로 나뉘어져 있어요. 킬리언 머피도 아주 잠깐 나오지만 그다운 광기어린 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사실 킬리언 머피인 줄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슬쩍 흘리는 웃음과 두려움 사이의 놀라운 표정을
보고 그냥 스쳐가는 배우가 아닌 줄은 알았죠.
에릭 로버츠의 모습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또 좋았습니다.
그리고 메기 질렌할은 좋은 배우입니다만 영화와는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아마도 [다크 나이트]엔 블론드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
절대적 존재처럼 비춰지던 수퍼 히어로들이 2000년대 들어와선 영... 살기 쉽지 않습니다.
실사 영화뿐만 아니라 [the Incredible/인크레더블]에서조차 정말 사는게 쉽지 않죠.
[Hancock/헨콕]에서도 그는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받고 고소까지 당하고, [Spider-Man] 역시 내적인
번민으로 비틀대고, [Batman/배트맨]도 시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합니다.
참... 힘들어요.


****
아이맥스로 보고 싶었지만 그저 좀 쾌적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인천 관교동 CGV의 유로 클래스(EURO
CLASS)에 가서 봤습니다. 금액은 더 비싸지만 전용 입구로 들어가고 전용 라운지에 무료 음료, 그리고
리클라이닝도 되고, 좌석간 간격도 넓고, 물건 올려놓는 곳도 있어서 훨씬 쾌적하게 봤네요.
게다가 아무래도 CLASS가 다른 만큼 화질과 음질도 일반관과는 확실히 비교되더군요.
하지만... 제발 영화보면서 왔다갔다 좀 그만하고 뒷사람 짜증나게 핸드폰 문자질 계속해서 불빛 신경쓰이게
하는 짓들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전용 라운지에서

 

 

 

 

인천 관교동 CGV EURO CLASS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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