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ppening/해프닝] directed by M. Night Shyamalan
2008 / 약 90분 / 미국 / 18세 이상가
어제 늦은 밤 aipharos님과 롯데씨네마에서 [the Happening/해프닝](이하 [해프닝])을 관람했습니다.
[the Sixth Sense/식스 센스]이후로 부당할 정도로 '반전(反轉) 영화 감독'으로 낙인찍인 샤말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죽어라 까이는 대표적 감독 중 한 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그의 이후 작품들은 불가피하게 [식스 센스]의 반전 파괴력과 기계적인 비교를 당하며 '시시하다',
'이게 뭐냐'라는 볼멘 소리들을 듣게 됩니다.
특히 [Signs/사인]에 이르면 그 비난의 목소리는 더더욱 거세지죠.
사실 이건 비단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도만 덜 했지 비슷했습니다.
그 결과 디즈니와 아주 좋지 않게 결별하고, [Lady in the Water/레이디 인 더 워터]는 제작사를 찾지 못해
전전하다가 워너와 간신히 손잡고 내놓았으나 참담한 성적을 냈죠. 그 덕에 헐리웃에선 샤말란이 차기작을
더이상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흉흉한 얘기까지 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상당히 실망했지만, 그 전까지의 모든 샤말란 영화를 다 너무너무
재밌게 본 나로선([언브레이커블]은 soso...) 이런 샤말란의 고전이 상당히 아쉬웠어요.
저와 aipharos님은 겨우 딱 다섯 명이 영화관에 있었던 [the Village/빌리지]의 그 드라마틱한 오싹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이번 [해프닝] 역시 개봉한 지 그닥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관객은 초라했습니다.
덕분에 쾌적하게 보긴 했지만...
샤말란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힐난은 대부분 기대했던 반전을 배신하는 내러티브에 있습니다.
인터넷의 많은 네티즌들의 말을 대략 종합하면 '크리쳐가 나올 줄 알았는데 김샜다([빌리지])', '잔뜩 긴장
하게 해놓고는 딸랑 조악한 외계인 하나 나오더라([싸인])'등입니다.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반전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반전 자체에 지나치게
주목하고 그 충격의 경중으로 샤말란 영화를 폄하하는 경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 덕분에 드라마의 구조가 튼실한 샤말란 영화가 기대 이하의 평점을 받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물론 샤말란 월드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나 aipharos님, 그리고 얼마 전 이 영화를 저희보다 먼저 본 지인분들 같은 경우죠.
게다가 이번 [해프닝]은 전혀 반전이랄 것이 없습니다.
기존의 샤말란 영화 작법과는 다른 듯, 비슷한 영화가 바로 [해프닝]이에요.
이 영화의 내용은 아주아주 간단합니다.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어요.
고등학교 과학 교사인 엘리엇(마크 월버그)는 공원이 테러를 당해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자 동료 교사
줄리안(존 레귀자모)과 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내 앨마(주이 디샤넬)를 데리러 갑니다.
엘마는 딱 한번 저녁 먹었을 뿐인 조이(얼굴이 나오지 않지만 이 사람이 샤말란 감독입니다)라는 남자의
계속된 전화로 이 일이 엘리엇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죠.
역에서 줄리안과 그의 딸 제스와 함께 만나 기차를 탄 이들은 테러가 북동부 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뉴스를 듣게 되고 설상가상 기차가 한적한 작은 도시에 멈춰서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난데없이 멈춰서고 자살을 하게 되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이 사실은 테러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뉴스로 밝혀지고 사람들은 조심스레 이것이 자연 현상의 일부가 아닐까 의심하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주합니다.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매혹적입니다.
난데없이 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집단으로 뛰어내리는 장면은 엄청나게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잔인하리만치 매혹적이에요.
샤말란은 이렇게 격정적 순간을 극단의 심리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연출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인위적인 기술의 힘을 절대로 빌리지 않으면서(그의 모든 작품이 다 그래요) 공포에 이르는 과정을
심리적 묘사와 스크린플레이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정말 몇 안되는 감독입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잘못된 홍보들로 이 영화가 무슨 마치 재난 블럭버스터로 소개되곤 하는데,
이런 엉터리 홍보와 리뷰들이 샤말란의 영화를 매도하는 주원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엔 스케일따윈 없어요. 화려한 CG도 없습니다.
하지만 음산한, 기존의 느낌과는 확실히 다른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산하면서도 비장한 선율에 맞춰
벌어지는 슬로우 패닝과 생략의 묘미를 잔뜩 갖춘 탁 후지모토(Tak Fujimoto)의 촬영이 샤말란의 연출력과
최상의 궁합을 이뤄내, 충분한 공포감을 매혹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샤말란 답지 않게 너무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충분히 재밌습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임에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어요.
다만 바로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스토리엔 거의 드라마틱한 관계가 부재하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샤말란 감독은 그간 언제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드라마틱한 관계를 통해 주제를 역설해왔잖아요.
[빌리지]에선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려는 인간과, 이를 막는 괴수 괴담과의 대립이 다양한 이야기를 파생하며
인물들의 캐릭터를 분명히 했고, [싸인]에서도 건조한 가족 관계를 재앙으로 인해 조금씩 이해하고 열리는 과정이 녹아 있습니다.
물론 [해프닝]에도 엘마와 엘리엇의 갈등이 위기를 통해 극복되는 과정이 나오지만, 이건 그야말로 해프닝에 불과할 뿐이죠.
(전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해프닝]이란 제목이... 변변찮은 엘마와 엘리엇의 오해를 지칭하는 것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농담입니다. 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재밌습니다.
90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고 느낄 정도로 충분히 재밌어요.
*
롯데씨네마 부평에선 1개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 중인데, 정말 황당하게도 화면비를 스크린의 상하에
맞추는 바람에 화질 번짐 현상과 함께 좌우가 잘려버리는 기가막힌 현상이 있었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이젠 화면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요.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엔 상단의 커튼이 화면비를 맞출 때까지 내려오지요.
기가막혔습니다. 덕분에 매혹적인 화면을 뿌연 화면으로 봐야 했답니다.
**
주이 디샤넬은 요즘 정말 활동이 왕성합니다.
평상시 스타일이 좋아 은근히 팬이 많죠.
개인적으로는 [the Go-Getter]를 매우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엔 [Thumbsucker]의 Lou Taylor Pucci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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