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오후 8시, LG 아트센터에서 홍승엽과 댄스시어터 온 '뿔' 공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현대 무용 안무가인 홍승엽씨의 신작이 LG 아트센터와의 공동제작으로 초연되는거죠.
당연히 관련 사진, 동영상 전무합니다.
LG아트센터 홈페이지의 공연 동영상에도 '뿔'에 관련된 동영상은 없습니다.
사진도 없습니다.
심지어 팜플렛에 사용된 사진들도 '뿔'과 관계없습니다. -_-;;; (난감합니다)

올해들어 다섯번째 LG아트센터 공연 감상입니다.
앞으로 두 번 더 보게 되는데 10월에나 있어서 저흰 당분간 LG 아트센터 올 일이 없네요.
물론 6월 하순의 에밀 쿠스트리차와 노 스모킹 밴드의 공연은 무척 보고 싶긴 한데 어찌될 지 모르겠구요.

저희가 LG 아트센터의 공연 7종 패키지를 구입한 것은 작년 감상했던 '바체바 무용단'의 공연 덕분이었어요.
그 전에 '크로노스 쿼텟' 공연도 좋았지만 '바체바 무용단'의 공연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공연 마지막에 눈물이 날 정도의 멋진 감동이었죠.
그리고 올해 피나 바우쉬의 공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동보다는 여유롭고 호사스러우며 황홀한 느낌을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고스란히 몸에 익히고
일어날 수 있었죠.
가나모리 조와 노이즘의 무용은 깊이있는 철학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미니멀한 조명과 격렬하면서도
완벽히 통제되는 듯한 에너지를 치열하게 느낄 수 있었죠. 놀라왔어요.
이 날 홍승엽의 공연도 그만큼은 아니라도 기대했어요. 사실 이전에 찾아본 홍승엽씨의 안무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제가 좋아할 것 같지 않다라는 걱정을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전 이 공연에 대해 저 자신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연습 끝나면 모두 아르바이트하러 가야하고 그간 '고꾸라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는 홍승엽씨의 말을 배제하고 얘기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이니 '이 정도면 잘했다'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어디까지나 무용의 'ㅁ'도 모르는 문외한의, 그저 본대로 느낀대로의 글일 뿐입니다.

공연 시작 후 거의 15분에 다다를 때까지 여명을 받아 엎드린 채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진을 뺐습니다.
사실 그 시간은 괴롭다시피했어요. 지독하게 반복되는, 그리고 느린 동작들을 보느라 너무 힘들었다는거죠.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도 아쉬움은 컸습니다.
인형극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마임과도 비슷한 솔로나 격한 동작으로 선을 그리는 무용수들의 동작도
뭐하나 딱히 임팩트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격하긴 가나모리 조와 노이즘의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의 동작은 움직임이 분명히 횡/종/사선을
긋고 한 번의 동작이 한 번의 움직임으로 끝나면서 이를 연속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스텝의 움직임이
대단히 적으면서도 역동적이었죠.
그런데 '뿔' 공연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휘두름'이 많았습니다.
정말 솔직히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움직임의 양은 더 많은데 어째 느껴지는 건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모습들 뿐입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건, 극의 흐름을 퍼포밍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짠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겁니다.
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여지껏 본 무용들은 무용수들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해주는 것이 음악의
역할이었는데 이번 공연은 음악이 주인공이고 거기에 안무를 짜맞춘 느낌을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거에요.
그럼 이런 경우의 결과는 뻔합니다.
한 음악이 끝나고 다른 음악이 이어지면 단막극이 한 편 끝나듯 분절되는 느낌이 되어버린다는겁니다.
이건 아주 제가 보기엔 치명적인 문제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건...
극적인 희열감보다는 하나하나의 아이디어와 설정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기분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거에요.
이야기하고자하는 바는 아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무용수들이 무대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해 기괴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일제히 천천히 걷는 장면은
목적 의식없이 한 방향으로 아슬아슬하게 치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한 것임도 한 눈에 알 수 있었고
그 뒤로 엉겨붙어 구르던 두 남자는 속박된 현대사회와 가부장적 제도의 압박을 얘기하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는 메시지로 남아선 곤란합니다.
이 메시지가 '도대체 쟈들 뭐하는겨... '라든지 피식하는 웃음까지 관객에게 유발하는 건 분명히 안무의 문제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을 무언가 보여주려는 설정으로 채우는 느낌. 솔직히 그게 '뿔'공연에서 느낀 거에요.

물론 인상깊은 장면도 있었고, 눈에 띄는 무용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다 였어요.
전 70분이라는 여지껏 본 공연 중 가장 짧은 시간의 공연도 버티기 힘들었어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거의 '가나모리 조와 노이즘'에 필적할만한데 가나모리 조와 노이즘의 80여분은 너무
짧게 느껴진 반면, 홍승엽과 댄스 시어터 온 '뿔'의 70분은 피나 바우쉬 공연의 2시간 30분은 상대도 안되게
길게 느껴졌어요.

이건 제가 무용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감히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하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하지만, 솔직한 심경이 그랬답니다.

 

 


**
이 날 그저 저녁먹고 공연만 봤을 뿐인데 목디스크 때문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앞으론 어지간해선 당분간 외출하기 힘들 것 같네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