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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확진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몰상식한 행동이 도마 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종교적 문제고 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타인의 안전을 배려하지 않고,
심지어 검진 권유조차 마다한 채 잠수를 타는 이런 몰상식한 행위는 신천지 교인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서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신천지 교인들의 어처구니없는, 경멸스러운 행동들에 분노한다.
게다가 그들이 문자로 돌린 단체 행동 지침은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경멸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드디어 나왔는데 역시나 신천지와 관련되었다네.
그런데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혼자 이사온 것이라고 밝혔는데 조사 결과 동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사고 방식이 뇌에서 작동하면 이렇게 자신의 안위 밖에 모를까.
동거인의 이동 경로를 뒤늦게 파악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만큼의 위험 요인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이 기본적인 사고조차 할 수 없는 이 인간들은 도대체 타인에 대한 배려, 사회적 공생이라는 개념이 있는걸까?
나와 와이프는 대단히 개인주의적인 삶을 산다.
우린 지금 살고 있는 옆집 거주자들과 이야기 나눈 적 없다.
그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인사나 할 뿐이지.
하지만 그만큼 우리로 인해 다른 거주자들이 불편을 겪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소음을 최소화하고, 현관 문 앞에 아무 것도 놓지 않고 늘 청결을 유지하게 하는 것.
혹시 모르니 청소나 세탁은 절대 늦은 시간에 하지 않고 고기 구워먹고 현관 문 열어놓는 싸가지 없는 짓을 하지 않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을 지킨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다.
1차로에서 유람하듯 서행하면서 안전운전이라고 말하는 한심한 운전자를 경멸하며,
남들 다... 감수하고 기다리는 정체된 진입로 맨 앞으로 새치기하려는 수많은 운전자 새끼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살가운 이웃, 정겨운 공동체를 '굳이' 바라지 않는다.
너무 매정하고 삭막하다고 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주 여러 번의 더러운 경험 끝에 이웃, 공동체라는 단위에 거는 기대같은건 조금도 없다.
이런 난감한 성격이다보니 지인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거나 연락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저 순간순간 기회가 되거나, 마음에 맞는 분을 만날 기회가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니까.
그리고 마음에 맞는 분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으로 우린 만족한다.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하는 일도 없다. 그러다보니 흔히 말하는 '친구'라는 개념도 우리에겐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아 실망도 적다.
우린 딱... 이 정도가 좋다. 와이프도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의 이견도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개인주의적 삶은 절대로 평온하지 않다.
우리가 그어놓은 우리를 위한 편안한 바운더리는 시도때도 없이 위협받기 때문이지.
우리가 불편해할 법한 행위를 타인에게 하지 않도록 우리 멋대로 규정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룰이다.
그 룰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다른 거주자들, 내가 운전하는 도로 위의 다른 운전자들에 의해 무참히 유린된다.
난 이 '룰'이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철저히 내 생각일 뿐인거지.
당연히 우리가 멋대로 만든 룰이 얼마나 무력하고 어리석은 룰인지 매일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 말은 결국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미니멀하게 가져가며 조용히 살고 싶어도 그게 불가능한 '사회적 관계가 강제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얘기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를 기정 사실화했으니 당연히 공동체를 강조하며 공동체 사회의 미덕을 강조한다.
그 미덕이란건 단위 조직 별로 나름의 규칙을 내세우며 개인에게 그 룰을 강요하곤하지.
나처럼 조직, 단체, 공동체, 모임이란 말이 어색한 사람에게 이만큼 피곤한 룰은 없었다.
우리만의 룰도 설득력 없지만 걸핏하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이들이 무례하게 침범하는 사생활의 영역을 '한국 사회의 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조금도 모든 관계에서 손해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말이 지나치게 길어졌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단순히 이타적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곧 나의 편안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적 행위라고.
개인의 영역이 온전히 보호받고,
그 보호받은 개인이 여럿 모여 유닛을 이루고,
그 유닛들이 모여 그룹을 이루며,
그 그룹들이 모여 소사이어티가 된다면 세상이 아무리 '세계화'를 외친다고 해도 충분히 안전하고 안락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아, 잘 알고 있다.
이게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생각해보시라.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된 사회보다
최소한의 배려를 통해 개인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훨씬 안전한 사회가 아닐까.
그런 사회라면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활 확률은 조금이라도 더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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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더러운 이면을 가린 채 그저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우린 이제 간단히 한끼를 채우는 식탁에서조차 세계화를 체험한다.
1회용 젓가락은 중국에서 왔으며, 저 폴리에틸렌 용기는 베트남에서, 나물들도 중국에서, 내가 뿌려먹는 소스도 다른 나라에서.
해당 국가에서 주로 생산되는 식자재라면 모를까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 충분히 유통하여 먹던 식자재들도 이젠 세계화라는 명목 아래 온갖 국가에서 들어온다.
어느 골목이든 즐비하게 들어선 고기집들.
우리가 기를 수 있는 고기는 한정 되어있으니,
보다 충분한 고기를 수입해야하고,
이 땅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보다 수입육이 저렴하니 또 수입을 하고,
나 역시 육식을 즐기지만 우리가 지금 앓고 있는 이 지독한 전염병의 실체는 사실 고도로 '세계화'된 사회가 지닌 진정한 민낯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