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Machina <887>,

directed & performed by Robert Lepage

엑스마키나 <887>

로베르 르빠주 연출/출연

LG아트센터 5월 30일~6월 2일

 

 

 

 

 

 

 

 

 

12년 전 LG아트센터에서의 <달의 저편> 공연을 놓치고 정말 아쉬워했는데(그 기록이 블로그에 남아있더라)

이제 정말 얼마나 더 로베르 르빠주의 공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몰라 놓치지 않고 싶었다.

다만,

피곤을 통 떨쳐내지 못하는 요즘.

평일 저녁 강남으로 향하는 엄청나게 막히는 도로에서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다음엔 절대 평일 저녁 시간으로 공연예매를 하지 않을거야...라고.

거기에 덧붙여 너무 피곤한데 괜히 예매했나 싶어라는 말까지 덧붙였지.

하지만 2시간의 공연 후에 그런 말을 했다는게 무척 창피해졌다.

로베르 르빠주의 <887>은 마이크로캠, 수많은 디스플레이와 조명등 대단히 기술적인 요소들이 사용된 연극이지만,

보는 이에겐 그야말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다가왔다.

무대를 한 번 돌 때 마다 펼쳐지는 마술같은 큐빅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기술적이지만 관객에게 전달될 때는 로베르 르빠주의 머리 속에 각인된, 그의 말대로 문신처럼 각인된 기억들이 애틋하게, 애잔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시낭송 40주년을 맞아 미셸 라롱드 Michele Lalonde의 시, 'Speak White'를 암기해서 낭송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한 줄도 외우지 못하는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다가 오래도록 자신의 뇌에 각인된 '장기기억'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놓으며 진행되는 이 놀랍도록 찬란한 연극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프랑스계 캐내디언들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어렸을 적 자신이 살았던 887번지 작은 멘션의 이웃들이 살아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를, 이제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해하게 된 로베르의 시선은 단순히 부정에 대한 연민의 차원이 아니라 인종적 갈등, 계급적 갈등 속에서 묵묵히 살아낸 이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조용한 분노 역시 담고 있다.

커다란 상자를 한 번 돌릴 때마다 펼쳐지는 시각적 경이,

아무 말 없이 식당에 앉아 있던 장면,

누이와 침대에서 베개 싸움을 하던 장면,

Speak White를 낭송하던 그 장면의 전율,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의 장면.

그리고 하나둘 꺼져가던 멘션의 불빛들.

작게 흐르던 낸시 시나트라의 bang bang.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 리 브루어와 마부 마인>과 <민중의 적 - 샤우 뷔네 &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이후로 가장 인상깊은 연극이었다.

피로가 풀리지 않아 다음 날 근무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던 터라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올 수 밖에 없었는데,

아쉬움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LG아트센터의 로비는,

 

 

 

 

 

 

 

 

무언가 관광호텔의 로비같은 느낌이 있다.

나쁘다는게 아니라,

뭔가 오래되고 정겨운 그런 느낌.

물론 지금 새로운 공간을 열심히 짓고 있어서 2020년(?) 이후엔 이 곳으로 올 일이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