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 엘르>(2016)


Paul Verhoeven (파울 페르후번)

2016 / 130min / France

Isabelle Hupert (이자벨 위페르), Laurent Lafite (로렝 라피떼), Anne Consigny (앤느 꼰시니)



**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보실 분은 패스해주세요!!! **

 

대단히 독특한 영화.

뭔가 한 장면 한 장면 떠오르는 영화 조차도 없을 정도로 독특한 영화.

필리뻬 지앙(Philippe Djian)의 원작 소설 <...Oh...>가 궁금해질 지경.

<Robocop / 로보캅>, <Total Recall / 토털 리콜>, <Basic Instinct / 원초적 본능>, <Showgirls / 쇼걸>, <Starship Troopers / 스타쉽 트루퍼>까지 영화사에 상당히 큰 족적을 남기며 1980~90년대 영화씬을 이끌어온, 우리에겐 폴 버호벤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파울 페르후번 감독의 2016년작이다.

2000년에 발표한 <Hollow Man / 할로우맨>이 너무나 기대 이하여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감독이었고 그랬기에 이번 영화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

이자벨 위페르(Isabelle Hupert)가 나온다는 사실 외엔 내겐 흥미를 끌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 놀라운 전개를 보여준다.

다 보고 나면 올해의 인상깊은 영화 리스트에 반드시 올려놓고 싶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가 되는거지.

기본 얼개는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으면서, <원초적 본능>식의 관객 놀래키기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 악취미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데 이야기의 방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마을 주민을 싸그리 학살하다시피한 전대미문의 살인마를 아버지로 둔 주인공.

그 암흑같았던 과거에서 벗어나려 기를 쓰고 이젠 나름 성공한 게임 회사의 대표인 그녀, '미쉘'(이자벨 위페르)

첫장면부터 충격적인 강간씬으로 시작되는데 이후에도 그녀는 정체모를 남자에 의해 가학적 폭력을 당하며 강간당한다.

그 와중에 미쉘은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안나의 남편과 섹스를 나누고, 훤칠한 앞집 젊은 유부남에게 성욕을 느끼기도 하지.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속에 정상적인 '관계'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럭저럭 상식적인 범주에 속하는 인물은 전남편 정도?

책임감에 유독 집착하는 아들, 지나치리만치 신경질적인 아들의 동거녀, 게임 동영상에 겁탈당하는 대표의 모습을 합성하는 엔지니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섹스에 집착하는 불륜남, 여성을 때려야만 섹스가 가능한 남자... 

이런 모습들이 내 주변에 펼쳐진다면 난 아마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을텐데 주인공 미쉘은 너무나 태연자약...하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악마적 굴레(아버지의 죄악)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겉모습은 그리 심드렁하고 초월한 듯 보이지만 그녀의 속은 문드러질대로 문드러져 눈물조차 더이상 흘릴 수 없는 심리이거나, 아니면 어떤 분노와 눈물도 자신에겐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이와 같은 영화의 끝은 파국에 이르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른 결말의 방식을 취한다.

복면을 쓴 강간범에게 무자비하게 얻어 맞으며 강간을 당하면서도 소극적인 대처만을 해온 미쉘은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자신을 면회하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살해버렸다는 소식을 감옥에 방문한 후에서야 듣게 된다.

자신을 옭죄던 굴레에서 해방감을 느낀 미쉘은 그간 체념하면서 살다시피했던 자신을 옭죄던 굴레에서 벗어난다.

굳이 그 숙명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게 되는거지.

이 과정은 대단히 갑작스래 진행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강간범과의 인연도 그제서야 끝낸다.

상대 여성에게 폭행을 가해야만 발기가 가능한 그 강간범은 마지막에 '어째서...'란 대사를 읊조린다.

그 뒤에 대사가 나오진 않지만 난 나만의 방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째서 당신 혼자 이 고통스러운 굴레와 결별하는거지?'


이 말이 아니었을까...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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