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다머 / My Friend Dahmer』 (미메시스)

 



지은이 : 더프 백더프 (Derf Backderf)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을 따라가보면 대부분 불우한 가정 또는 매우 유복하지만
정서적인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환경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따는 사실을 다들 이제는 알고 있다.
안식과 소통등 기본적인 사회화 과정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극도의 불안감과 외로움을 느낀 이들은
이를 대단히 폭력적으로 해소하거나 아니면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곤 한단다.
대체적으로 이런 경우, 교우들, 친구들과의 소통에 서툴고, 약한 동물들을 가혹할 정도로 괴롭혔다는 공통점도 발견된단다.

그러니까,
이 모든 끔찍한 범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략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대의 연쇄 살인마들의 소행이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 끔찍한 만행에 치를 떨고 사회적으로는 각양각색의 토론을 통해
이 범죄의 근본적인 문제가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있음을 늘... 떠들지만 세상은 사실 그닥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
우린 지금 살인을 개인화하여 은밀하게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보다 더 끔찍한, 대놓고 다수의 민중을 사지로 내모는,
공감능력 따위가 완벽하게 거세된 싸이코패스를 보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은이 더프 백더프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 그 범죄의 내용이 너무나 끔찍해서 최악의 살인마라고 불리우는-
제프리 다머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냈다.
단순히 학창시절의 한 부분을 함께 보냈다는 내용만으로 이 그래픽 노블을 작업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보았던 제프리 다머의 모습을 중심으로 제프리 다머가 구속된 후 행해진 수많은 인터뷰 내용,
그리고 기사, 논문등을 참조하여 다머와 그의 범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철저한 고증을 통해,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독자의 입장이라도 그 누구에게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려
결국은 괴물이 되어버리는 다머의 성장기를 따라가는 것을 더욱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식시킨다.

저자는 그가 가정불화,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등으로 엄청나게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16세때 이미 알콜중독이 되어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가 알콜 중독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었음에도 유독 선생님들만 이 사실을 몰랐다다는 것은
불가사의라고 말하며 이는 어른들이 귀찮은 문제에 끼어들기 싫었던게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한다.

결국,
제프리 다머가 혼자 그렇게 자신의 어두운 욕망과 혼란한 심리와 싸우고 있을 때
도대체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냐는 질문을 하는거지.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난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머의 학창시절이 다소 파편화되어있고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뭔가 애매하다는 느낌도 받은게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토록 끔찍한 성장기를 내가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떠올리게 되곤
대단히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건 게임이나 호러 무비가 아니라 정말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제프리 다머의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두둔할 마음따위 조금도 없다.
다만, 제프리 다머가 성장기때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며,
부모의 갈등 속에 우울한 가정 생활을 보내면서 술로 모든 걸 잊으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고등학생이었을 다머의 그런 처절함을 생각하면 대단히 마음이 아프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는 이런 불우한 성장기를 거치며 범죄의 길로 들어선 아이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하더라.
'불우한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 아닌데 그 아이들이 다 범죄자가 됐냐'고.
그게 다 '개인의 의지 문제다'라고.

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개개인의 사정과 형성된 성격이 모두 동일할 수 있는 것이냐고.
모두가 똑같은 불우한 과정을 겪는 것이냐고.
그리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불우한 경험도 누군가는 미치도록 힘들어하며 절망에 빠질 수 있다는,
사람마다 형성된 성격에 따라 환경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수용력에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냐고.


뻔한 소리를 다시 하게되지만,
우린 지금도 교감, 소통, 즐거움보다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경쟁', '낙오', '경제적 부'를 주입한다.
나와 한 반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라고 자꾸만 부추긴다.
다양한 논쟁을 통해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가 절대적 가치이며,
남과 다르다는 것보다는 저 가치는 틀린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익숙하다.
토론의 문화, 논쟁의 문화가 거세된 사회에선 상대에 대한 비아냥과 근거없는 확신에 기반한 아집만이 존재한다.
이런 답답하고 절망적인 교육 환경에서 또다른 제프리 다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냔 말이다.


*
더프 백더프의 작화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제프리 다머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작화로 드러나는 장면들이 보인다.
작화의 훌륭함이 제프리 다머의 심리적 혼란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래서인지 무척... 씁쓸하게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한글자막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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