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개인 홈피에 두번에 걸쳐 나눠 쓴 걸 하나로 묶었습니다.

1년 넘게 애플뮤직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요즘 Vinyl 시장이 조금씩 명맥을 이어가고 있긴해서...

한번 묶어 올려봅니다.

내용 엄청 길어요. 관심있는 분만.

알맹이 1도 없는 고리타분한 추억팔이...글입니다.

 


*

지금이야 해외 주문이라는 것이 인터넷으로 상품을 쇼핑카트에 넣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엔 해외주문, 즉 mail order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1990년대에는 다이얼업 방식의 네트워크 연결방식이어서 다수의 이미지를 원할하게 로딩하고 발전된 html 규격이 필요하며 전자지불결제 방식이 마련되어야 가능한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등의 국내망 연결이 대부분이었으니 해외업체의 정보를 네트워크로 검색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니 당연히 해외 업체를 컨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어찌어찌 알아내더라도 해당 업체에서 보유한 음반들 목록이 담긴 카탈록이 없으면 물건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신용카드가 안되는 곳도 많았기 때문에 해외 업체에서 받은 인보이스(invoice)를 들고 외환은행에서 뱅크첵을 끊어서 보상적용도 안되는 특급운송으로 도큐먼트 처리해서 2~3만원 비용을 들여 보내야 했다.
물론 도중에 분실되면 특급운송 업체도 책임지지 않는거고.

시차도 다르기 때문에 내 방에 따로 전화를 두었는데 그 당시에도 전화비가 매월 30만원 정도씩 나왔다.
해외업체와의 거래를 위해 팩스도 내 방에 두고 있었는데, 그 당시엔 팩스머신 가격이 100만원을 가볍게 넘어갔다. 우엉...
더 괴로운 건 새벽 3시가 넘으면 본격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해외 팩스들이었다.
요즘의 메일링과 비슷한데... 자신들이 새로 입하한 음반이나 경매 소식등을 마구 보내왔고, 경매의 경우 max bid를 명기해서 다시 팩스로 답신을 줘야 했다.
팩스기가 지금처럼 조용하지 않던 때라... 이건 뭐... 
덕분에 3시부터 6시 가까이까지... 정말 잠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롤로 감긴 팩스 전용지여서 가격도 만만찮았고, 출력되어 나온 팩스는 돌돌... 말려 있어서 죽죽 펴서 클리어 화일에 샵 별로 좌악... 넣어서 정리하곤 했다.
그런데 그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하나하나 해결할 때마다 해외 거래 업체의 주인들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도움된 게 어디 하나둘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First Pressing 그러니까 오리지널 초판만 구입하다보니 어지간한 해외 언더그라운드 음반의 시세를 완벽하게 꿰뚫게 되었다.
당시엔 정동과 명동에 해외 중고 음반을 판매하는 몇몇 유명한 샵들이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거의 구매한 적이 없고, 이제와 얘기지만 그들은 어느 정도 폭리를 취했다.
홍대 주변에 국내 모 포크 뮤지션이 직접 오픈했던 한 중고샵은 Julie Driscol & the Trinity의 [Street Noise] 음반을 17만원에 팔고 있었고(오리지널은 2불...이 채 안되었다), 정동의 유명 중고음반샵에선 Julian Jay Savarin의 [Waiters on the Dance] 음반의 Bootleg을 10만원을 받고 팔았다. 개사기다. Bootleg은 한마디로 짝퉁이다. 국내 청계천에 유통되던 이른바 '빽판'과는 달리 음질도 좋고 커버도 오리지널과 거의 비슷했지만 분명 짝퉁은 짝퉁이었다.
그 쥔장이 내가 들어가니 일어나서 그 부트렉을 가리며 '무슨 일로 왔냐'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일이 기억난다.
 

그 당시엔 인터넷이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중고 음반의 시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이점을 이용해서 심야 FM을 통해 인기얻은 음반을 다소 비싼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다.

종종 재밌는 일도 있었는데 중고음반을 해외에서 대부분 물량량떼기...식으로 몇 kg에 얼마 이런식으로 값을 치루고 들여오다 보니 음반의 가치가 매우 자의적인 기준이거나 시중에서 언더그라운드 매니어들 사이에 회자되는 음반들 중심으로 비싸게 형성이 되곤 했고, 정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치가 있는 음반들은 종종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 나와있기도 했다. 영화에도 등장했던 명동의 한 유명 중고 음반 샵에서 Beggar's Opera의 걸작 [Act One] 초판을 겨우 1만원에 구입하는 행운도 있었으니 말이지.


해외에 mail order를 통해 구입한 것은 음반만은 아니었고, LD와 VHS까지 다양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음반 컬렉팅이었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걸핏하면 목동세관, 인천세관에서 잡혀 출두명령이 오고... 반송하거나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열받아 제품을 발로 밟아 박살내는 일도 있었다. ㅎㅎ

이젠 그런 수고가 사실 거의 필요없어졌다.
토니와 새디가 런던에서 시작하여 나중엔 건물도 지은, 내가 가장 많이 거래하던 영국의 Vinyl Tap은 이제 과거의 영광은 골로 보내버린 지 오래고, 우체부가 본업이었던 주인이 하던 노르웨이의 오르바슬이나 아들이 한국인 입양아였던 미국 뉴욕의 메트로등등도 더이상 초판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 조차도 다 귀찮으니 걍 아마존으로 CD나 구입해보거나 국내 샵에 입고되는 수입 CD를 위주로 구입하니까.
게다가 초기 한번에 7장...만 수령가능해서 2~3일 텀으로 주르르 도착하게 하느라 샵에 패키지를 나눠 달라고 하고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이젠 정말 과거 얘기다. 

인프라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편익을 부정적으로 바라 볼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다만, 그 당시에 그렇게 힘들게 한장 한장의 음반들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그런 벅찬 기분은 아마존에서 제품 골라 받아볼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건 사실이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음악에 미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처럼 솔식으로 검색어만 넣어놓으면 주르르... 내가 원하는 음반을 다 얻을 수 있는 지금은 그런 열정적인 과정은 생략된 채 수많은 뮤지션들이 내 앞에서 컨벤션을 하는 듯한 오만한 생각마저 들었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그런 다운로드 세태마저 Spotify(스포티파이)나 Apple Music (애플뮤직)등으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가버렸다.

이젠 매니어, 컬렉터가 아닌 한 구매의 과정과 소장이라는 개념이 모두 거세된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즐긴다.

당연히 오디오 시장도 격변했다.

디테일한 액세서리들로 음질에 집중하던 오디오 시장이 순식간에 블루투스등의 편의적 기능 위주의 제품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당분간 이런 세태는 지속될 것 같다.



**
20대 때 열심히 해외 mail order하던 흔적들은 전부 다 지워버린 줄 알았는데 와이프가 몇년전 이사하면서 어디 구석에 잊고 버리지 못했던 흔적들을 찾아내서는 내게 보여줬다.
기억하기 싫은 내 20대 한심한 삶이지만, 이젠 내 그 잊고 싶은 시간도 보듬아 안아야지. 
지금에 와서야 이 당시에 해외 각지에서 받았던 음반/영상 카탈록들을 죄다 버려버린 걸 후회하고 있다.

 

 

 

 

피터 로간의 카탈록. 

 

 

 

 

 

 

 

 

보면 EX/EX 라든지 M-/EX 등의 표시를 볼 수 있다.
이건 음반커버와 음반의 컨디션을 의미.
대부분 first pressed LP(초판 LP, 즉 뮤지션이 그 음반을 낸 첫번째 프레스)를 구입하기 때문에 90년대 초라도 이미 20년 가까이 된 음반들이 ST (Still Sealed/밀봉) 상태로 돌아다닐 일은 거의 없다.
중고 음반이므로 음반커버 상태와 음반 상태를 ST > M+ > M > M- > EX+ > EX > EX- > VG+ > VG > VG- 의 순으로 등급을 매겨 기재한다.
사실... 이 등급은 정해진 바가 없어서 중고 음반 판매업자 마음대로 정해지곤 하는데, 그래서 어떤 샵에서 VG+ 정도의 나쁜 등급이 다른 샵의 M (mint condition) 등급과 비슷한 경우까지 있곤 했다.
일반적으로 M (mint condition)이면 상당히 만족할 만한 컨디션이며, VG 등급이면... 음반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거나 커버등급이 VG라면 커버 한부분에 곰팡이끼거나 찢어진 경우도 있다. 

Mint 컨디션의 경우 대체적으로 평균 2~5만원 정도의 가격이었으며 좀 귀하다...싶으면 한화 8~10만원, 약간 더 귀하다 싶으면 20만원 정도 하는 음반은 부지기수로 널려있었다.


 

 

 

 

 

 

 

벨기에의 필리뻬 꼴리뇽.
내 취향의 음반들보다는... 챔버락쪽의 음반 구매 목록이 유난히 강했던. 


 

 

 

 

 


 

 

뉴욕의 Metro Music.
이곳 주인장이 Doug Larson인데 원래 대단히 까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 거래하다보니 아들이 한국에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빌미로 급격히 친해지게 되었다. 아들을 위해 한국을 알려주려고 정말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실제로 한국에 아들을 데리고 내한하기도 했었고.
나도 약간의 도움을 줬다. 

 

 

 

 

 

 

 


 

유태인이 운영했던 레이져스 엣지.
이 음반 샵으로부터 사기당한 이들도 은근 적지 않다.
물건이 절대로 안와~~~ 다행히 난 사기를 당한 적은 없고. 

 

 

 

 

 

 


 

 

캘리포니아의 와일드 플레이시스.
비트팝, 싸이키델릭, 서프락(Surf-Rock) 리스트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가장 많이 거래했던 영국의 Vinyl Tap.
답답하게도... 가장 많이 거래했던 이곳 카탈록은 하나도 남아있는게 없다.
토니와 새디가 운영하던.
일본 고객들을 뚫고 VIP에 올랐던.ㅎㅎㅎ
덕분에 토니와 새디는 좋은 음반 정보만 있으면 내방 팩스로 새벽에도 열심히 새로 확보한 음반 리스트들을 꾸준히 날려줬다. 

 

 

 

 

 

 


 

 

ㅍㅎㅎㅎㅎㅎ
이 당시 음악 감상회를 열곤 했는데...
곡목과 뮤지션 안내를 적은 팜플렛을 준비해갔다. 
이런 그림도 그리고 말이야.

이건 볼펜으로 그린 그림.ㅎ

 

 

 

 

 

 

 

 

정성이다...
다 내가 그린 그림.

이건 Nigel Mazlyn Jones의 음반커버를 그린 것. 


 

 

 

 

 


 

 

이건...ㅎㅎㅎ
8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33년 전.
내가 매주 혼자 재미로 했던 몽키 챠트.ㅋ 
컬쳐클럽의 'Time'이 1위, 2위는 Styx의 'Mr. Roboto' (이곡은 국내 금지곡이었다. 이유가... 가사 도중 도모 아리가또 미스타 로바또...라는 일본말이 나온다는 어처구니 없는...)
3위는 듀란듀란 곡, 4위는 스티브 닉스 누님, 5위는 데프 레파드, 6위는 휴먼 리그, 7위는 릭 스프링필드, 8위는 프린스, 9위는 유리드믹스, 10위는 내가 지금도 종종 듣는 네이키드 아이즈. 

 

 

 

 

 

 


 

 

응???
그렇게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오디언 잡지가 제법 남아있다.

일본에서 발행되던 마키(Marquee) 잡지는 한권도 안남아있다. 

 

 

 

 

 

 


 

 

영화도 참... 열심히 구입했는데.
이렇게 신용카드 안되고 뱅크체크만 되는, 마이너 취향의 음반샵도 무척 많이 거래했다.



이것들은...
이제 더이상은 버리지 말아야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