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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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어벤져스 / Avengers>에 그닥 큰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불편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차피 마블의 만화를 영화화했을 뿐인데 뭐 그리 삐딱하게 '불편한 마음'까지 드냐고 힐난할 수도 있고,
그러한 힐난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마음도 있는데, 아무튼 난 그 영화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내가 마블의 영화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해마다 정리하는 나만의 영화 결산에서 마블 영화는 반드시 한두편씩 들어있다.
작년만 해도 <캡틴 어메리카 2편>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포함시켰으니까.
내가 좀 불편하게 느꼈던 영화는 그냥 <어벤져스>일 뿐이다.
<어벤져스>에선 오로지 막강한 개인 능력을 지닌 이들만이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처절한 액션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어찌보면 제임스 본드의 슈퍼 업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게 위트인지 비아냥인지 도무지 분간할 재주는 없으나 아무튼 그들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구라를 멈추지 않는다.
<분노의 질주 7>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요즘 헐리웃의 블럭버스터는 점점 더 캐릭터의 감정까지 이벤트화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진지한 고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뭔가 관객들이 지루해할 거라 생각하는지
그런 감정씬마저 과도한 배경 음악이 흐르고 지나친 생략으로 도무지 감정 이입될 겨를을 주지 않는다.
이건 <어벤져스>도 마찬가지였지. 덕분에 이들이 살짝 드러내는 고민은 더더욱 가벼운, 치기어린 투정 정도로만 느껴졌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처럼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 따르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저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일 뿐이다라는 장치로 포장된 정복자의 모습이 보였다는거지.
내가 어벤져스 히어로들보고 진지빨고 고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에서 보여준 것 같은 캐릭터 간의 생생한 교감과
과시따윈 사라진 물리적 액션의 진지한 땀내같은 걸 보여주든지 아니면 차라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발랄한 합이라도 보여주길 원하는 것 뿐이지.
다수의 캐릭터가 나오지만 러닝타임은 한정되었기 때문이라며 편집의 문제를 말할 수도 있으나
이 영화가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 수준으로 러닝타임을 늘려도 내가 느꼈던 문제들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상하지? <캡틴 어메리카 윈터 솔져>만 봐도 물리적인 충돌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조금이나마 느껴졌고 주변 캐릭터와의 교감도 충분히 느껴졌는데
야들이 '어벤져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그러한 매력들은 고스란히 사라진다는게.
어쩌면 히어로 개개인의 이야기는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충분히 다뤄지고 있으니 <어벤져스>에서도 그걸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어벤져스>도 그저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러다보니 <어벤져스>에선 관심 밖일 수 밖에 없는 일반인들이 무수히 소모되어 사라진다.
제한된 러닝타임에서 힘없는 일반인들은 그저 폭력의 희생양이 되거나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지르며 거리의 차 사이를 뛰어다니며 도망치는 것 외엔 보여줄게 없다.
액션의 스케일로 보아 누가봐도 엄청난 수의 일반인들이 희생당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온전히 싸움은 어벤져스와 빌런의 몫이다.
알맹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액션의 스케일을 보여준 <어벤져스>에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면서
이 히어로들이 세계를 주물럭거리고 갖고 노는 열강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로지 힘을 쥔 이들이 일반인들의 운명을 지키고 좌우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영화라고 느껴지니.
(히어로 영화가 다 그렇지 않냐고 하겠지만 이토록 히어로들이 하나같이 정치적인 느낌이 나는 경우는 <와치맨>밖에 못봤음...
하지만 와치맨의 히어로들은 이렇게 희희낙낙할 정도로 편해보이진 않지)
강풀 작가의 13번째 장편인 <무빙> 얘기를 하려다가 뜬금없이 비교 대상도 아닌 <어벤져스> 이야기를 꺼낸 건 히어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심하게 결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벤져스는 틀렸고 무빙은 옳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어벤져스>는 만화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것이고 <무빙>은 장편 웹툰으로 상대적으로 긴 호흡으로 캐릭터 한명 한명과 설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강풀 작가의 그 훌륭한 웹툰이 제대로 영화화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하니 공정한 비교가 될 수도 없다.
다만...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의 그 정복자 비스무리한 위용과는 정 반대편에서 서서, 혹은 <크로니클>이 철저히 사적인 영역에서 다루고있는
초능력자와는 또다른 관점에서 초능력을 소재로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완벽하게 구축되어가는 한명 한명의 캐릭터를 통해
이렇게 황홀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강풀의 <무빙>은 걸출한 초능력을 가진 부모로부터 능력이 유전된 그 아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부모와 어른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하거나 말살하려는 적대적 세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초능력의 유전이라니, 픽사의 <the Incredibles/인크레더블>의 꼬마 또는 <판타스틱 4>의 멤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프랭클린 정도가 생각나겠지만
그들과 달리 <무빙>의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 있더라도 능력을 숨겨야만 한다.
그러니까 강풀의 <무빙>에서 언급되는 초능력이라는건 극적인 표현 수단인 듯 보이지만 결국 획일화된 사회적 가치를 맹신하는 사회에서
몰개성과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현실 속 우리 아이들의 개성과 존중받아 마땅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석이의 엄마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었다가 이용만 당하고 용도폐기 처리된 남편의 전철을 밟지 못하도록
아들 봉석에게 초능력을 절대로 드러내지 말 것을 요구하다가 결정적인 상황에서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준다.
아이들에게 유전된 초능력이라는건 사실 아이들 개개인에게 물려진 아이들 자신의 창의성과 개성이며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신에게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켜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 이 기가막힌 웹툰 <무빙>의 주제가 아닐까...싶었다.
사실 주인공은 봉석이, 희수, 강훈이와 아이들과 그들에게 초능력을 물려준 부모들같은 초능력자였지만
강풀 작가는 우리 아이들 모두가 이러한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바로 위에서 말했듯 획일화된 사회적 지향점을 강요받고
스펙에 좌지우지되어 진을 빼고 살아가도 결국 사회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서글픈 우리 현실에 대한 작가의 항변과도 같다.
봉석이 엄마가 봉석이에게 '맘껏 날아라'라고 말하는 장면은 강풀 작가가 작품의 배경이 된 선사고등학교를 오가며 낯익힌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소리쳐 이야기하고 싶은 장면과 다름없지 않을까?
*
개인적으로 강풀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봉석이 엄마가 원래 죽는 설정이었다는 글을 읽고 무척이나 심란했었다.
답답한 세상, 아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기 힘든 세상에서 봉석이와 아이들이 맞이할 결말은 해피 엔딩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현실은 결코 그렇게 헐리웃 엔딩이 되지 못하지만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봤던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적인 엔딩이고,
그 속에서 봉석이가 우울한 캐릭터로 거듭나 기괴한 히어로물의 속편이 연재될 예정이었다면... 난 정말 많이 답답하고 씁쓸했을 것 같다.
해피 엔딩따위 영화에서나 가능한 소리...라고 늘 얘기해왔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난 절망의 산으로 겹겹이 둘러싼 이 나라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해왔다.
이 아이들의 쳐연한 싸움이 비극으로 끝이 날 때 느낄 상실감과 허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
절대적으로 작가의 결정을 존중하고 결말을 숨죽이며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겠어요'라든지 '봉석이 엄마는 꼭 살려주세요'라든지... 하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눈 위에 딱 하나의 발자욱.
그 뭉클한 결말에 길고 긴 여운이 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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