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자마자 사람 좋은 듯한 웃음과 농담을 툭툭 던지며 아이들의 환심을 산 그는
칠판에 아주 커다랗게 '天皇 (천황)'이라는 한자를 적었고,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날 천황이라고 불러'라면서 농을 풀었다.
아마도 처음 그 국사 선생님을 본 대부분의 학우들 머리 속에는 '돼지'라는 단어가 부유했겠지만
놀랍게도 이후로 그 국사 선생님을 '돼지'라고 부르는 학우를 본 적이 없다.
짖궃은 제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를지 뻔히 알았던 그 선생님은
학우들 머리 속에 연상되었을 '돼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후덕하고 뭔가 둔하지만 권위적인 이미지의 천황이라는 말로 덮어쓰기 해버린거지.
어제 인상적으로 본 다큐멘터리 <the True Story / 더 트루 스토리>에서 패스트 패션 산업의 심각한 폐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오늘... 샤워하면서 생각해보니(ㅎ) 패션업계에서 시작된 이 '패스트 패션'이라는 말도 사실 하나의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소비 행위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재화에 대한 응분의 가치를 제공하고 소유,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구매를 결정하는 여러가지 요인 중에는 내게 필요한 것인가, 가격은 합리적인가등의 요인도 있지만, 이 재화의 품질이 만족스러운가의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양한 전자 제품을 구입하게 되더라도 마감, 소재, 내구성등의 품질을 재화 가치의 분명한 한 요소로 생각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하물며 몸에 걸치는 옷은 더더욱 소재의 품질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예전 우리나라 수트업체의 광고 카피가 '1년을 입어도 10년 입은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을 입은 듯한 옷'이었을까.
(물론 이 카피는 단순히 소재의 우수함만을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의 구매 가치의 기준이 되는 '품질'에 대한 부분을 사실상 거세해주는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거지.
우리가 흔히 '보세의류'라고 말하던 저가의류와 달리 패스트 패션은 보세의류에 필적할만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SS, FW시즌으로 알려져있는 신상품의 출시 주기를 7~10일 간격으로 밀어내는 방식과 거대하고 트랜디한 매장을 갖춤으로 보세의류가 지닌
'싸구려'의 이미지 대신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한 트랜디 의류' 이미지를 입었다.
그러니까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구입하는 이들은 보세상품등의 이미지인 '저가 의류'를 입는게 아니라 '트랜드'를 입는다는것.
단순히 저렴하고 다양하면서도 트랜디한 옷을 구매할 수 있어도 소비자들은 결국 옷의 '품질' 역시 따지게 되는 법인데
아마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옷을 구입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품질의 관점에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옷을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품질에 대해 크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혹은 이야기하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거지.
국내에 상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많은 이들이 이 옷들의 품질에 대해 왈가왈부했었다.
물론 지금도 패스트 패션 브랜드 상품 중에서도 어떤 브랜드의 옷이 더 소재의 품질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패스트 패션을 구입하면서 그 트랜디한 속성에만 집중하지 의류 소재의 품질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싸고 예쁜 옷, 한 시즌 입고 버려도 부담이 없는 옷이니 그것으로 이 옷들의 가치를 다했다고 생각하는거지.
글로벌 패션 S.P.A. 기업들의 제품에 '패스트 패션'이라는 말을 통해 이들 제품의 성격을 소비자 중심이 아닌 생산/공급자 중심으로 규정하여
의류 소비자들이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옷의 품질'이라는 측면을 아주 자연스럽게 거세하도록 해주는 프레임을 짜준 것이 아니냐는거다.
옷을 시장에 내다팔 때 '적정한 수준이 못되는 소재의 품질'은 상당히 신경쓰이는 부분이었을거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은 싸고 미친듯 다양한 상품을 트랜디한 매장에서 풀어내니 한 시즌 입고 버려도 무방한 옷이야...라는 프레임만 잘 짜주면
옷의 품질을 관리하는 부분에 대한 부담은 크게 줄어들테니.
아직도 정리가 잘 안되었는지 별것도 아닌 얘기를 참 길게도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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