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and Budapest Hotel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Directed by Wes Anderson (웨스 앤더슨)

2014 / 100min / US

Ralph Fiennes (레이프 파인즈), Tony Revolori (토니 레볼로리), F. Murray Abraham (F 머레이 에이브러험), Jude Law (쥬드 로), Saoirse Ronan (시얼셔 로넌)

Edward Norton (에드워드 노튼),  Adrien Brody (애드리언 브로디), Mathieu Amalric (마띠유 아말릭), Willem Dafoe (윌렘 대포), Jeff Goldbrum (제프 골드브럼)
music by  Alexandre Desplat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웨스 앤더슨 감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려고 맞지도 않는 시간 맞추려 노력했음에도,
이제서야... 봤다.
aipharos님, 아들과 함께.
어찌나 재밌게 봤는지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더라..
전작인 [Moonrise Kingdom / 문라이즈 킹덤]도 대단히 인상적이었으나 초반부에는 다소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도입부부터 액자 구조를 통해 호기심을 자아내더니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몰입도를 보여주더라.

이 영화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리뷰들이 나와 있고, 이 영화에 내재된 수많은 함의들에 대한 분석도 많은 듯 하다.(특히 해외 글에)
내가 굳이 그런 분석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으니 이 영화가 그동안 그가 연출한 이전 영화들과 다르다고 느낀 점들을 위주로 적어본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본 분들은 다 알듯이 그의 영화는 언제나 대칭에 집착한다. 대칭, 그리고 그로인한 횡적인 움직임이 매우 강조된다.
캐릭터의 움직임은 대부분 횡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이를 마치 확장된 연극 무대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이 따라 간다.
전작 [문라이즈 킹덤]이 이러한 대칭과 횡적인 움직임의 극단을 보여줬다면 이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선

그 정점을 찍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이 영화에서 횡적인 움직임과 대칭적 프레임은 극대화되어있다.
이렇듯 웨스 앤더슨 감독의 전매특허같은 횡적인 움직임을 통해 자칫 늘어질 수도 있는 역동성은 과장된 수직적 움직임을 통해 확보했다.
웨스 앤더슨의 전작 중 역동성이 강조된 영화로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Fantastic Mr. Fox]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는 애당초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액션의 역동성을 표현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조플링의 뒤를 쫓는 무슈와 로비보이의 설원 추격전이 단적인 예인데, 액션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사선 방향성을 지니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긴박한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로는 드물게 상당히 긴장감있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실제로 몇몇 부분은 장르적 특성에 매우 충실하다.
아주 짧게 지나쳐가지만 무슈 구스타프의 난봉 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의 강도는 매우 센 편이고,

조플링이 코박스의 뒤를 쫓아 미술관으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장면의 리듬감은 대단히 탁월해서 정교한 미장센과 결합되어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아마도 웨스 앤더슨 감독이 자신의 형식을 벗어버리고 맘먹고 장르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하는 궁금증마저 자아낼 정도로 말이다.
한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더 언급하자면,
무슈 쿠스타프가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탈출하는 장면의 리드미컬한 편집은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라고 부를 만하다.
무성영화의 형식을 끌어오는가 하면, 줄스 다신의 걸작 [Rififi/리피피]를 연상케하는 장면마저 있다.
웨스 앤더슨의 이전 영화들 대부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지만

과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큼 유려한 리듬으로 극을 마음대로 주물러대며 유희했던 적이 있었던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놀라운 리듬감을 보여준다.

프레임, 장르적 특성이 두드러진, 리드미컬한 편집뿐 아니라 이 영화는 정교하게 구성된 액자 형식의 영화 구조의 정점을 보여준다.
첫장면에서 화자인 소설가가 회상하는 장면으로 하나의 액자가 형성되고,

형성된 액자 속의 소설가가 무스타파(로비 보이)를 만나며 그의 회상 속으로 또다시 들어가는 액자 구조가 형성된다.
이 간극은 명민하게 고려된 화면비율로 차이를 두고 있는데 회상 장면 이외의 장면은

1.85나 2.35대 1 스케일을 보여주고 무슈 구스타프와의 회상장면은 4:3 화면비율로 제작했다.
이러한 액자 구조 속의 또다른 액자 구조 형식이 이처럼 별다른 화면 전환 하나없이 유려하게 이어지며 관객의 흥미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건 대단한 재능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되더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연히 미장센.
웨스 앤더슨 영화의 미장센이이야 언제나 회자되는 부분이지만

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미장센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시대 초월적인 느낌 정도를 벗어나 장대한 서사적 이미지까지 전해준다.
난 웨스 앤더슨 영화의 미장센에서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식의 미장센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적어도 이 영화에선 그만한 느낌의 서사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호텔 식당을 부감으로 잡은 장면이나 소설가와 무스타파가 호텔 사우나에서 만나는 장면에서의 고풍스러운 사우나 모습,

그리고 코박스가 조플링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들어선 미술관의 미장센은 분명히 서사적인 무게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형식미는 이전의 웨스 앤더슨 영화들과 비슷하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동안 괄목할만한 세계를 하나하나 구축해오던 웨스 앤더슨의 미학이 드디어 말 그대로 '그랜드(Grand)'하게, 장엄하게 축조되어

우리들 기억 저편에 실제로 존재했을 법한 판타지로 존재하는 국적불명의 호텔의 외향으로 완성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듯 정점에 오른 그의 영화적 형식미에 무슈 구스타프와 같은 놀라운 캐릭터를 그려넣으면서

이 영화는 영화적 형식미 이상의 대단히 깊은 애잔함과 여운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사실 무슈 구스타프는 난봉꾼에 적절한 속물의식을 갖춘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이지만 영화 속 무슈 구스타프는 그러한 자신의 속물의식을 전혀 숨기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속물 캐릭터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로비 보이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후 진심으로 사과를 구하는 모습, 로비 보이를 위해

육탄전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 그가 그토록 훌륭한 컨시어지이면서도 그 좁고 누추한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등을 통해 

그가 기본적으로 약자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생하게 그려진 무슈 구스타프라는 캐릭터와 함께 일종의 활극을 겪는 로비보이(무스타파)가 훗날 거대한 재산을 거머쥔 후

그 많은 재산을 포기하면서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인수한 것은 단순히 영화적인 피날레라기보다는 잊혀져가고 상실된 가치에 대한 곱씹음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그 잊혀져가고 상실된 가치라는 것은 단순히 정서적인 부분뿐 아니라

실제로 어딘가 존재했을 법한 그 시절의 물리적 공간과 시대정신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여운이 깊게... 남는다.


*
몇번 언급한 바 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 난 세명의 감독이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거라 생각했었다.
한 명은 폴 토마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감독이고, 다른 한명은 대런 애로노프스키 (Darren Aronofsky) 였으며,

마지막 한명이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감독이었다. 이 감독들이야말로 영화적 형식을 자신의 고집대로 주물러대면서

상업적인 감각도 극대화할 수 있는 감독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세명의 감독은 모두 거장이 되었으니 그런 내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나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최근작들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뭔가 버겁다는 그낌이 든다.
마치...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발칙함을 내려놓고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려고 하는 듯한 최근의 행보와 같은 느낌이랄까?

(오해마시길 난 그의 [폭력의 역사]를 정말... 정말 좋아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Magnolia/매그놀리아]에서 머리를 한대 치는 듯한 그 장대한 개구리 비와 [Punch Drunk Love/펀치 드렁크 러브]에서의

그 비현실적이면서도 애잔한 아름다움은 더이상 그의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그런데 웨스 앤더슨은 다르다.
그는 여전히 [Rushmore/러쉬모어]와 [the Royanl Tenenbaums/로열 테넨바움]의 바로 그 웨스 앤더슨이다.
다른 감독들이 자신의 한쪽 팔을 내려놓고 커다랗고 웅장한 석상 모양의 팔을 끼워넣었다면 웨스 앤더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화적 미학을 극대화해간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인지 난 웨스 앤더슨의 앞으로의 행보도 역시 궁금하다.
어쩌면 또다른 의미에서의 코엔 형제같은 행보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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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에 애드리언 브로디가 나치 친위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 분명한 듯한 견장을 달고 등장한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애드리언 브로디는 유태인아닌가.ㅎ



***
이 영화 속엔 정말이지 수도없이 많은 엄청난 배우들이 까메오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의 까메오가 등장하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배우들이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선 그게 그저 '즐거움'으로 전해진다. 놀라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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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역의 시얼셔 로넌을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보니 반갑더라.
조 라이트의 [Atonement/어톤먼트]로 놀라운 모습을 각인시켜주더니 이후로도 [the Way Back], [Hanna]등을 통해 착실한 필모를 쌓아가는가 싶더니

그 이후 [Violet & Daisy]나 [How I Live Now]같은 도통... 납득하기 힘든 작품에 모습을 드러내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웨스 앤더슨의 이번 영화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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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중요한 미술작품으로 등장하는 '사과를 든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라.
http://theweek.com/article/index/259203/the-untold-story-behind-the-grand-budapest-hotels-boy-with-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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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무슈 구스타프가 그토록 애용하는 향수는 '오 드 파나시'다.
실재로 구입할 수 없는 이 향수는 영화 속에서 무슈 구스타프가 수차례 사용하는데, 맡아볼 수도 없는 이 향수가 왠지 실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그렇게 따지면 수도없이 등장하는 멘들(MENDL'S)의 빵과 초콜릿도 마찬가지겠지.
(멘들스는 드레스덴의 Pfunds Molkerei 를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곳이라고.

다만 영화와 달리 케이크등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고 유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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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구글링을 좀 해봤음에도 ... 알 수 없었던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저... 코박스(제프 골드브룸) 뒤의 멧돼지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이다.
분명히 의도된 그림일 것이고 이 역시 영화를 위해 그려진 그림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궁금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유럽에서 멧돼지는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꼼꼼하기 짝이 없는 웨스 앤더슨이 저 정도의 그림을 아무 이유없이 걸어놓을 리가 만무하지...
아무튼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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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음악.
알렉상드르 데스쁠라 (Alexandre Desplat)
그의 음악은 대부분 다 좋지만 이 영화에선 보다 더 자유롭게 마음가는대로 춤을 추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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