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태리에 갔을 때, 하필이면 탈이 났었다.
열이 너무 나서 몸은 불덩이같고,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힘이 들었다.
마침 그때 지금은 이태리에서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국내에서도 매년 한번은 귀국독주회를 여는 이민영씨(귀국할 때마다 독주회 초대권을 보내주고 있다)와 
Carlo Colombo의 디자이너였던 조신혜씨의 도움으로 이태리의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이 주말이었기도 하지만 응급실에서 난 무려 3시간 30분을 기다렸다.
알고보니 응급실이라도 제발로 걸어온 환자는 순번에서 밀리고, 응급차를 통해 들어온 환자부터 진료를 하기 때문에 점점 난 순번이 뒤로 밀리기만 했던거다. 
(그것도 모르고 직접 당직 간호원에게 항의도 하고, 속으로 이거 인종차별아냐?라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신혜씨가 '오빠, 여기 기다렸다가 진료받아도 약처방 정도일거고 주사는 절대... 안줄거야'라고 말하길래 난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그 힘든 몸을 끌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리쬐던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햇볕이 난 지금도 기억난다. 
작은 골목길에서 오래된 극장과 카페를 마주하면서 네오 리얼리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정경들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햇빛은 또 얼마나 좋던지.
진심으로 잔디밭에 누워 딱 한숨만 자면 몸이 다 나을 것 같은 그런 햇빛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숙소로 돌아와서 해가 들어오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딱 두시간을 자고, 거짓말처럼 건강이 나이졌다.

지금은 덜하지만,
몇년 전만해도 난 갑자기 열이 오르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인후염을 1년에 한번 이상 꼭...앓았다.
그럴때면 거의 기어나오다시피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인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한 이비인후과에선 내게 늘... 이런 처방을 내렸다.

아침 항생주사 2대, 저녁에 다시 항생주사 1대.
이것도 부족해서 링거처방.
약은 한포에 6알 이상...

주사는 맞을 때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이나고 힘들어지며, 열이 잦아들기를 반복하다가 일주일 가량을 앓으면 나았다.
나중엔 주사맞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집에서 약국의 약만 먹고 버텼는데 그래도 일주일이면 났더라.
결국... 주사를 매일 3대씩 엉덩이에 찔러 넣어도 일주일, 약국의 약만 먹어도 일주일...
그 이후론 난 병원에 가질 않는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처방 남용은 어제오늘 문제가 된게 아니다.
이는 제약회사와 병원간의 부적절한 밀실관계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환자들이 주사 한방, 항생제 처방을 원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는 분들은 아마 다들 이해할것이다.
몸 아프다고 하루 결근하는 것도 얼마나 눈치가 보이는지.
2~3일 결근이라도 하면 잔뜩 밀린 업무에 가재미 눈을 하고 냉랭하게 말을 던지는 사무실 분위기가 얼마나 신경쓰이는지.
심지어 정말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쉬고 나왔는데도 꾀병이라도 앓은 양 취급하고, 나중엔 회식자리같은데서 상사라는 인간이 
성실과 불성실... 아파도 정신력으로 버티면 다 버틸 수 있다는 개소리를 듣노라면 다시는 몸이 아프다고 결근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푹 쉬면서 몸을 회복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호사다.
결국 의사에게 먼저 얘기한다.

'주사 좀 놔주세요'

내가 내 건강을 지키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직장 문화.
이런 상황인데 무슨 항생제 처방 남용을 의사탓만 할 수 있겠냐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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