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Upon the Brain!] directed by Guy Maddin
2006 / 약 97분 /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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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2006년작입니다.
포스터를 보시고 오래된 영화일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이 혹시 계실 것 같아 미리 밝혀 둡니다.
Guy Maddin에 대해선 처음 언급하는 포스팅이 아닙니다. 이미 이전에도 그의 short film등을 포스팅했었으니
참고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Guy Maddin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를 갖고 많은 분들이 비난하는 이유는 바로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겁니다.
전 이 부분에 대해서 언제나 극구 이명세 감독을 옹호했었구요. 역시 이전에도 몇차례 포스팅한 바 있습니다.
이건 심형래 감독의 [D-War/디-워]를 '내러티브'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이명세 감독은 영화가 어느 틈엔가 대사많은 그림책이 된 것에 염증을 느꼈을 뿐입니다.
초기 무성영화가 가졌던 어쩌면 영화로서 완성된 모습이었을 지도 모를 본연의 모습에 더 많은 매력을 느꼈을 뿐이라고 전 믿습니다.
그리고 이명세 감독이 실로 다시 우리 앞에 재현해준 놀라운 시각적 이미지들은 그닥 서사적 구조가 없어도 충분히 호흡하고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무성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뿐이지 지금 언급하는 Guy Maddin 감독처럼 노골적으로
무성영화의 형식미까지 차용하진 않았습니다.
Guy Maddin의 영화는 굵은 노이즈와 흑백(종종 컬러) 그리고 배우들의 voice를 거의 빌지 않는 나레이터의 도입등 또는 표현주의 무성영화 스타일의
텍스트 스크린으로 의미를 전달하곤 합니다. 형식적으로는 완벽히 무성영화 스타일을 재현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Guy Maddin 영화에서
절대로 폄하할 수 없는 음악의 사운드는 옆에서 듣는 듯 생생한 문명의 발달을 고스란히 전달하죠.
시각적으론 1920년대의 표현주의 영화를 서성이는데 귓가에선 바로 옆에서 현악기를 켜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지는 묘한 시대적 이질감을 Guy Maddin의 영화에선 만끽하게 됩니다.
공간의 전도에 의한 예술적 가치의 획득같은 것 말이죠. 마르셀 뒤샹의 변기작품 '샘'이 생각나네요.

Guy Maddin의 2006년작인 이 영화 역시 기존의 Guy Maddin 영화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일렉트라 컴플렉스등은 역시 또다시 반복되고 있으며, 수많은 은유의 상징들이 영화 전체에 아주 넘쳐납니다.
12 챕터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오랜만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름모를 섬으로 다시 돌아와 부모님이 운영하던 등대 고아원을 하얀 페인트로
겹겹이 칠하는 Guy(감독 이름과 동일합니다)라는 남자가 아무리 두텁게 발라도 지워버릴 수 없는 족쇄같은 과거와 마주하며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런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가 지루할 거라는 속단은 버리세요.
챕터 3만 넘어가면 도무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고, Jason Staczek의 가슴을 저미는 듯한 현악과 소품 으로 이뤄진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으며
몽환과 공포, 그리고 극도의 트랜스섹슈얼, 에로티시즘, 성장통을 모조리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도 엄청난 상징성을, 지적 편향성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Guy Maddin의 거침없는 의욕과잉의 비주얼과 함께 말이죠.

그래서 어쩌면 Guy Maddin은 반쪽의 천재일지도 모릅니다.
개개인의 호불호가 철저히 갈릴 수 밖에 없고, Guy Maddin의 대중과의 소통은 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으로 Guy Maddin이 보여준 놀라운 역량을 폄하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만.

이 영화는 한마디로 쎕니다.
공포스럽고 지독하게 아름다우며, 빛나는 이미지의 향연입니다.
한장 한장 넘기는 추억의 필름일 수도 있지만 벗겨내면 벗겨낼 수록 아프고 어두운 관객 자신의 과거를 들춰 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Guy는 성애와 모성애를 구분하기 힘든 어머니의 사랑에 진절머리를 내지만 두번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한 번은 기계적으로 한 번은 소리를 내어서 말이죠.
등대로 아이들을 감시하고, 거느리는 고아들을 공포와 거짓으로 대하며, 죽다 살아나서도 다시 일을 하는 남편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면서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끝없이 외로워하는 어머니. 섬에 난데없이 나타난 유명한 하프 연주자 웬디이자 동시에
명탐정 챈스와 주인공 Guy의 친누나인 시스와의 동성애 또는 양성애. 과거를 끌어안고 화해하지만 결국은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는 Guy.

이 모두가 성과 성의 구분이 모호하고, 성애와 모성애의 구분 또한 모호하며, 감정의 수용과 반항의 경계 또한 모호한,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한...
결국 우리가 사는 삶의 경계가 모두 모호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버리며, 그 모호한 삶 속에서 또다시 원인도 동기도 모를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끼건, 이 영화가 상징하는 그것들이 무엇이건. 그건 전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유난히 이 영화는 더더욱 상징의 의미가 주관화될 것 같네요.
하지만 보고나서 멍한 충격을 받은 듯한 묘한 희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Guy Maddin의 다른 영화들도 기회가 되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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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한글제목이 '악몽의 섬'인 줄 모르겠습니다. 국내 개봉도 안하지 않았나요?
DVD출시도 물론 안되었고. 뭐 그닥 나쁜 제목은 아니지만...
원제는 '뇌에 박힌 낙인' 뭐 이렇게 해석하면 될라나요? -_-;;;;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냥 의역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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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칼 드레이어나 무르나우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생략합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여지껏 본 가장 공포스러웠던 영화는 다름아닌 Tod Browning[Freaks](1932)였던 것 같네요.
완전 의아해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전 가위에 눌리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그 영화의 기형인들이 나와서가 아니라 영화를 지배하는 그 음산한 기운이 무척 충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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