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닙니다.
주변에 사진을 전공하고 유학을 다녀오고... 작가들이 있었지만, 내겐 그저 그들이 '지인'이나 '친구'
였을 뿐, 어떤 참조 대상도 되지 못했습니다.
내가 얻게 된 건 그들이 찍어 준 '놀라운' 결과물들을 받고 기뻐하고, 여러가지 사진 기종에 대한
정보들 뿐이었죠.
인사동의 아트 까페에 가서도 그 많은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집을 보면서 '와... 우리 사진집들
꼬박꼬박 구입하자'라고 운을 뗏지만 결국 우리 집엔 단 하나의 사진집도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집엔 여러가지 똑딱이 필름 카메라들이 있었고 SLR 카메라도 있었지만 그건 다 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저 식구들끼리 나들이 갈 때는 써왔던 액세서리 정도로만 생각했었으니까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젠 작동조차 하지 않게 방치했을 리가 없겠죠.

제대로 된 첫 디카였던 SONY DSC-S85도 저보단 aipharos님이 거의 사용했습니다.
재밌게도 제가 사진에 관심을 가진 건 aipharos님의 사진을 보면서 였습니다.
전 aipharos님이 찍어 준 민성이 사진들을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어느 집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뻔한 사진이 아니어서 너무 좋고, 순간 순간 포착되는 스토리가
묘사된 느낌이어서 정말 좋아해요.
aipharos님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하지만... Canon 20D로 올 때까지 전 거의 카메라를 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어딜 가서도 aipharos님이 사진을 찍었고, 전 집에 와서 그걸 보는 것으로 만족했어요.
20D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D도 되려 aipharos님이 거의 들고 다녔으니까요.

사진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게 된 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올리면서 aipharos님의 홈피에 세를 든 이 게시판의 게시물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봐야 음식이나 찍고 놀고 온 사진들이었지만 어쨌든 과시적 욕구로 시작된
사진찍기는 조금씩 게시판을 부지런하게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때는 후보정도 거침없었습니다. 까짓... 디카라는게 원래 후보정을 후하게 인정하는 거 아냐?
라는 마음으로 이건 도대체 사진을 올리는 건지 사진작업을 하는 건지...
대상과의 소통...? 그런거 없었습니다. 그냥 거침없이 연사하듯 미친 듯이 찍어댄거죠.
하다못해 aipharos님께

'뭘 그리 고민하며 찍어, 그냥 똑같은 컷도 두 방 이상씩 찍어. 그럼 한 장은 걸려'

라고도 얘기했습니다. 네... 창피한 얘기지만 전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박작가와 얘기를 하고,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면서 점점 더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간혹 '이렇게 부담을 느끼며 찍고 싶은게 아닌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작품을 만드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껏해야 우리 식구들의 나들이를 담는 것
뿐인데도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마음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말이죠.
사람들이 간혹 '어차피 디카라는 게 편의를 목적으로 전용하는 건데 뭐 그리...'라고 하는 글들도
보지만, 요즘엔 제가 바라본 시공간을 왜곡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하하... 물론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다시 브레송의 사진들을 봤습니다.
가슴이 울컥...하는 이 형언하기 힘든 찰나의 미학이 제게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도대체 어떤 작가적 미학으로 뷰파인더를 바라보길래 이런 사진들이 나오는 건지 경외감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지인 중 한 명이 브레송의 사진학적 위상에는 조금도 이의할 마음이 없으나, 그의 작품들이
순간을 묘사한 근대성의 미학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근대성이나 현대성이나 늘 이작가가 중시하던 말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대상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상의 빛과 어둠이 관찰자와 소통하는 듯한
이 결과물에 대해서 전 그런 미학적 가치를 따질 수 없더군요.

물론 전 앞으로도 그저 저희 가족의 나들이만을 담을 겁니다. ㅎㅎ
제가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시선을 좇으며 작가주의적 행위를 좇는다고 제 결과물도 그것과
같을 거라곤 생각도 안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사랑하는 aipharos님과 민성이의 모습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사진 담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소한 내 소중한 사람과 공간들과도 소통하지 못한다면 지금 얄팍하게 부대끼는 천박한 고민에
대해서 조금도 해답을 내리지 못할 것 같거든요.

**
그렇다고해도...
가볍게 들고 다니다가도 내가 셔터를 눌렀을 때 내가 느끼고 소통한 대상을 고스란히 담아줄
수 있는 카메라...에 대한 로망은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습니다.
분명 사치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오리지널 First Pressing LP에 그토록 열을 올렸던
제 모습도 사치였었겠죠.(뭐 이렇게 합리화합니다)
M7 또는 Epson R-1DS+Summarit 50mm의 조합...같은...

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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