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떻게 하다보니... 과거 mail order 시절 얘기를 지인과 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해외 주문이라는 것이 인터넷으로 상품을 쇼핑카트에 넣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엔 해외주문,

즉 mail order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1990년대에는 다이얼업 방식의 네트워크 연결방식이어서 다수의 이미지를 원할하게 로딩하고 발전된 html 규격이 필요하며

전자지불결제 방식이 마련되어야 가능한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등의 국내망 연결이 대부분이었으니 해외업체의 정보를 네트워크로 검색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니 당연히 해외 업체를 컨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어찌어찌 알아내더라도 해당 업체에서 보유한 음반들 목록이 담긴 카탈록이 없으면 물건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신용카드가 안되는 곳도 많았기 때문에 해외 업체에서 받은 인보이스(invoice)를 들고 외환은행에서 뱅크첵을 끊어서

보상적용도 안되는 특급운송으로 도큐먼트 처리해서 2~3만원 비용을 들여 보내야 했다.
물론 도중에 분실되면 특급운송 업체도 책임지지 않는거고.

시차도 다르기 때문에 내 방에 따로 전화를 두었는데 그 당시에도 전화비가 매월 30만원 정도씩 나왔다.
해외업체와의 거래를 위해 팩스도 내 방에 두고 있었는데, 그 당시엔 팩스머신 가격이 100만원을 가볍게 넘어갔다. 우엉...
더 괴로운 건 새벽 3시가 넘으면 본격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해외 팩스들이었다.
요즘의 메일링과 비슷한데... 자신들이 새로 입하한 음반이나 경매 소식등을 마구 보내왔고, 경

매의 경우 max bid를 명기해서 다시 팩스로 답신을 줘야 했다.
팩스기가 지금처럼 조용하지 않던 때라... 이건 뭐...
덕분에 3시부터 6시 가까이까지... 정말 잠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롤로 감긴 팩스 전용지여서 가격도 만만찮았고, 출력되어 나온 팩스는 돌돌... 말려 있어서

죽죽 펴서 클리어 화일에 샵 별로 좌악... 넣어서 정리하곤 했다.
그런데 그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하나하나 해결할 때마다 해외 거래 업체의 주인들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도움된 게 어디 하나둘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First Pressing 그러니까 오리지널 초판만 구입하다보니 어지간한 해외 언더그라운드 음반의 시세를 완벽하게 꿰뚫게 되었다.
당시엔 정동과 명동에 해외 중고 음반을 판매하는 몇몇 유명한 샵들이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거의 구매한 적이 없고,

이제와 얘기지만 그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홍대 주변에 국내 모 포크 뮤지션이 직접 오픈했던 한 중고샵은 Julie Driscol & the Trinity의 [Street Noise] 음반을

17만원에 팔고 있었고(오리지널은 2불...이 채 안되었다), 정동의 유명 중고음반샵에선 Julian Jay Savarin의 [Waiters on the Dance] 음반의

Bootleg을 10만원을 받고 팔았다. 개사기다. Bootleg은 한마디로 짝퉁이다. 국내 청계천에 유통되던 이른바 '빽판'과는
약간 달리 음질도 좋고 커버도 오리지널과 거의 비슷했지만 분명 짝퉁은 짝퉁이었다.
그 쥔장이 내가 들어가니 일어나서 그 부트렉을 가리며 '무슨 일로 왔냐'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일이 기억난다.

그 당시엔 인터넷이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중고 음반의 시세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이점을 악용해서 심야 FM을 통해 인기얻은 음반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를 하기도 했다.
웃기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물량량떼기...식으로 몇 kg에 얼마 이런식으로 값을 치루고 음반을 들여오다 보니

음반의 가치가 매우 자의적인 기준이거나 시중에서 언더그라운드 매니어들 사이에 회자되는 음반들 중심으로 비싸게 형성이 되곤 했고,

정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치가 있는 음반들은 종종 어처구니 없는 가격에 나와있기도 했다.

영화에도 등장했던 명동의 한 유명 중고 음반 샵에서 Beggar's Opera의 걸작 [Act One] 초판을 겨우 1만원에 구입하는 행운도 있었으니 말이지.

해외에 mail order를 통해 구입한 것은 음반만은 아니었고, LD와 VHS까지 다양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음반 컬렉팅이었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걸핏하면 목동세관, 인천세관에서 잡혀 출두명령이 오고... 반송하거나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열받아 제품을 발로 밟아 박살내는 일도 있었다. ㅎㅎ

이젠 그런 수고가 사실 거의 필요없어졌다.
토니와 새디가 런던에서 시작하여 나중엔 건물도 지은, 내가 가장 많이 거래하던 영국의 Vinyl Tap은

이제 과거의 영광은 골로 보내버린 지 오래고, 우체부가 본업이었던 주인이 하던 노르웨이의 오르바슬이나 아들이

한국인 입양아였던 미국 뉴욕의 메트로등등도 더이상 초판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 조차도 다 귀찮으니 걍 아마존으로 CD나 구입해보거나 국내 샵에 입고되는 수입 CD를 위주로 구입하니까.
게다가 초기 한번에 7장...만 수령가능해서 2~3일 텀으로 주르르 도착하게 하느라 샵에 패키지를 나눠 달라고 하고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이젠 정말 과거 얘기다.

인프라의 발전으로 인한 문명의 편익을 부정적으로 바라 볼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다만, 그 당시에 그렇게 힘들게 한장 한장의 음반들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그런 벅찬 기분은

아마존에서 제품 골라 받아볼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건 사실이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음악에 미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처럼 솔식으로 검색어만 넣어놓으면 주르르...

내가 원하는 음반을 다 얻을 수 있는 지금은 그런 열정적인 과정은 생략된 채 수많은 뮤지션들이 내 앞에서 컨벤션을 하는 듯한 오만한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멋진 음악들이 오늘도 출시되고 있다는 점과 과거처럼 음악씬을 주도할 만한

초대형 그룹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수많은 실험과 음악적 한계를 타개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더욱더 가열되고 있다는 거다.
누군가 현재의 세계 록음악씬을 위기라고 말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지금의 록씬은 비틀즈의 해산과 함께 불어닥친 Rock Renaissance시절, 록, 블루스, 포크, 아방가르드, 클래시컬 록,

챔버 록등이 경연을 펼치던 바로 그 때와 너무 비슷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뮤지션들 가운데 일본인들의 이름은 점점 너무 많이 발견되는데(일본그룹으로서가 아니라 해외그룹의

멤버로서, 특히 여성 보컬)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답답한 국내 음악 풍토 때문인지... 도통 기뻐할 만한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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