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들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었다.
짐은 한 보따리.
여길 먼저 들어갔는데... 아들 왈 '아빠 여기 여학우동인데요?'
'...'
옆동이었어.
헤어지기 직전 기숙사 방 앞에서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급히 찍었다.
그래서 사진이 이 모양이다.
사실은 아들 한번 꼭 안아주고 싶었다.
물론... 우린 종종 서로 꼭 안아주긴 했지만...
이 날은 더욱더.
그런데... 주장 선배가 마중을 나오는 바람에...
뭔가 아들을 마마보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아 우리 둘 다 참았다.(아, 바보같아)
'그래도 사진은 하나 찍어야지'
하면서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고작 이 사진.
아들의 저 표정은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마음을 아는 듯한, 저 표정.
+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와이프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내가 아들이 기숙사로 간 후의 와이프를 걱정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인지 와이프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냥 그러지 말라고, 울고 싶으면 참지 말라고 했다.
근데 나도 힘들더라.
기숙사 보낸 부모들이 전국에 몇인데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런거 상관없다.
우린 우리의 감정이 중요한거니까.
++
참 다정한 아들이다.
훈련 끝나고 9시~10시 사이에 도착하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꼭 와이프와 얘기를 나눴고,
내가 집에 있으면 나와도 함께 얘기를 나눴다.
자신이 관심있게 본 영상, 궁금했던 사안들을 기꺼이 우리와 공유했고,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한 실천적인 모습도 분명히 보여주었고,
이에 대해 우리와도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우리에겐 숨김없이 얘기해줬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감정에 대해서도, 그 감정의 버거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얘기해줬다.
그래서 그 작은 기쁨과 힘든 마음을 우리와 함께 나누었고 우린 존중해줬다.
6일 기숙사로 내려가기 전, 죽마고우들과 만나서 놀다가 옆자리 동갑내기 이성들과 합석하게 되었고,
그 중 한 명이 아들에게 관심을 보여 내려가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해서 아들이 만나고 왔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기획사에 소속된 친구던데 의외로 말이 꽤 잘 통했나 보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뭔가 아들이 더 훌쩍 자란 느낌도 들더라.
이렇게 살가운 아들을 이제 매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와이프의 애잔함은 더 심할 것 같아.
나도 이렇게 많이 허전한데 와이프는 오죽할까...
+++
그래도 우린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활에 우리가 적응하게 되리라는 것도.
아들은 자주 집에 오겠다고 말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집에 오는 횟수도 점점 뜸해지겠지.
운동선수로 지낸다는건 생각 이상의 피로함을 동반하니까.
++++
그래도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아들이 너무 보고 싶으면 꼭 얘기하라고.
그럼 함께 아들에게 달려갈테니 나 힘든거 생각하지 말고 꼭 얘기하라고.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우린 이렇게나 나이를 먹었네.
다른 걸 바라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부모들처럼 우리도 아들이 건강하고, 그곳에서 잘 적응해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맺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짝사랑말고 교감을 나누는 사랑도 하길 바래.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줘서 난 정말 우리 아들이 고맙다.
아들이야말로 우리에겐 축복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를거야.
+++++
한가지 더.
와이프에겐 몇 번 얘기했었지만,
난 우리 아들의 엄마가 당신이어서 정말 고맙다.
아마 세상에 둘도 없이 따뜻한 엄마일거야.
내가 일하느라 정신없는 척 할 때 매주 한두번씩 아들데리고 아들 눈높이에 맞춰 전시도 보러가고 연극도 보러가고,
그때부터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권해주면서 아들의 유년기를 빛내준 건 순전히 와이프 덕분이었다.
난 지금도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아들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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