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t / 더 셰프>
Directed by 존 웰스 (John Wells)
2015 / min /
director of photography by 아드리아노 골드먼 (Adriano Goldman)
music by 롭 시몬슨 (Rob Simonsen)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 시에나 밀러 (Sienna Miller), 대니얼 브륄 (Daniel Bruhl), 매튜 리스 (Matthew Rhys)
브래들리 쿠퍼와 시에나 밀러가 호흡을 맞춘 영화 <Burnt / 더 셰프>는 먹방, 쿡방이 지상파와 케이블을 지배한 2015년 한국에서 제법 흥미를 끌 만한 요소들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
굳이 먹방과 쿡방을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부터 SNS를 하다보면 내가 원치 않아도 하루에 몇번은 남이 올린 음식 사진을 볼 수 있으니 가히 대중의 삶의 질을 누가 무얼 먹고 마셨는지로 가늠하는 과열 현상이 아직까지는 지속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종종 어디 가서 뭘 먹었는지 올리는 판이니 먹고 마시는 것에 열광하는 다른 이들이야 오죽 할까.
물론 난 가끔... 이게 과연 미식에 대한 욕구인지 아니면 단순한 과시욕인지, 그것도 아니면 즐길 문화가 먹고 영화보는 것 밖에 없어서인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대중의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욕구'는 SNS와 맞물려 상당히 증폭된 일반적인 현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TV에 셰프들이 나와 온갖 기가막힌 요리를 선보이고, 그 음식을 먹지 못하지만 그들이 요리 만드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먹고 감탄하는 모습에 환호하는 컨텐츠가 호응을 얻는 것을 보면 가히 음식에 대한 관음증이 주는 매력이란 거부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영화 <Burnt / 더 셰프>는 미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주방 속으로 카메라를 들이 밀었다. 주인공 역시 짐짓 철학있는 셰프라면 미슐랭의 별따위...라며 초연해하는 이상적인 캐릭터라기 보다는 대놓고 미슐랭 3스타를 목적으로 하는 주인공을 대놓고 다루는 영화다.
스토리 자체야 잘 나가다가 퇴물이 된 천재 요리사 -> 다시 재기를 노림 -> 역경과 고난 혹은 배신 -> 자성과 화해 -> 훈훈한 엔딩....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터라 뭐라 딱히 이야기할 만한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법 몰입도가 높은 이유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주방의 모습과 내어지는 음식의 모습이 제법 생생한 느낌을 주고 있어 미식을 갈구하는 이들의 관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러한 주방에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취재를 해본 적도 없으니 정말 이 모습들이 주방의 모습인지는 내가 읽었던 셰프들의 주방 모습을 다룬 책이나 이야기등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지만 무척 흡사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속 주방과 음식에 대한 자문은 런던에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마커스 (Marcus)'를 운영 중인 스타 셰프 마커스 웨어링 (Marcus Wareing)이 담당했다고 하는데 이뿐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오픈한 랭험(Langham)은 실제 랭험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촬영되기도 했단다.(마이클 루가 셰프로 있는)
15세때부터 식당에서 알바를 하다가 대학 시절엔 Prep Cook (예비 요리사?)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브래들리 쿠퍼는 고든 램지에게 요리 지도를 받기도 했다는데 요리가 익숙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그닥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더라.
그와 함께 앙상블을 이루는 시에나 밀러 역시 화장끼 거의 없이 머리 질끈 묶은 모습으로 제면을 하거나 팬워크를 하는 모습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는데 후일담을 들어보니 세트장의 스토브에 수도없이 화상을 당한 모양이더라.
비단 주방의 모습 뿐 아니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서 홀 스탭과 매니저의 테이블 세팅이나 서비스 모습이 꼼꼼하게 등장하는 점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모습을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지배인이자 소믈리에 역인 토니를 연기한 다니엘 브륄 (Daniel Bruhl), 홀매니저인 사라 그린 (Sarah Greene)등 매우 잘 계산된 좋은 캐스팅이 영화의 현실감을 무척 잘 살려줬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아담 존스(브래들리 쿠퍼)에게 일종의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셰프인 리스역을 맡은 매튜 리스(Matthew Rhys)는 정말 현업에 종사하는 셰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드리아노 골드먼 (Adriano Goldman)의 카메라 웍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시선보다 조금 낮은 시선을 유지하면서 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절대 부감과 접사, 니(Knee)레벨을 사용하여 음식이 가장 아름답게 보여질 수 있는 앵글, 주방의 모습이 가장 현실감을 획득할 수 있는 앵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매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서사적인 와이드 앵글등을 구사하여 영화 속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바로 내뱉은 말이 '촬영감독이 누구지?'라는 것이었으니...
또한 영상과 기가막히게 리드미컬하게 어우러지는 롭 시몬슨 (Rob Simonsen)의 음악 역시 효과적이었다.
주방의 앙상블을 마치 클래식 합주가 이뤄지는 앙상블인 것처럼 연상케하는 그의 음악은 상당히 인상적이더라.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앞으로 여러 영화에서 롭 시몬슨의 크레딧을 보게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영화 자체가 미슐랭 3스타를 목표로 하는 셰프의 이야기인터라 미슐랭 얘기를 간단하게 하게 되는데...
일부 언론에서 마커스 웨어링의 레스토랑이 미슐랭 3스타라고 오보를 내던데 2015년 런던에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 at the Dorchester)'와 '고든 램지 (Gordn Ramsay)' 둘 뿐이다. (미슐랭 2스타는 11개)
미식의 성지라는 파리도 미슐랭 3스타 업장은 9개에 불과하며, 과거 브레송이 음식을 먹던 전설의 레스토랑 라투르 다르장 (La Tour d'Argent) - 일본 미식의 선구자이자 괴인인 기타오지 로산진이 소스가 맘에 안든다고 고추냉이 꺼내 양념장을 만들어 먹는 망나니짓을 했던 곳도 라투르 다르장이다- 은 별을 하나씩 깎여 지금은 1스타 레스토랑이 되어버렸다.
난 라투르 다르장에 가본 적이 없고, 아마 평생에 가볼 일이 있을까...싶지만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서도 그 모습이 보였던, 내겐 뭔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어서 이젠 1스타가 되어버린 라투르 다르장에 쓸데없는 안타까움도 좀 든다.-_-;;;
참고로... 우리나라는 미슐랭 평가를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으며,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 뉴욕이 미슐랭 2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뉴욕의 미슐랭 3스타 업장은 6개이며 2스타 역시 10개에 불과하니 정식당의 위상도 상당하다는 의미.
또한 World Best Restaurant 100에서 정식당은 9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http://www.theworlds50best.com/list/1-50-winners#t51-100)
**
재밌는 것은 이 영화 <Burnt/더 셰프>의 공식 사이트(http://burntmovie.com/)에 가보면 영화 속에 등장한 음식들의 레시피가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있다는거다.
물론... 레시피를 보더라도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하는 생각이 들지만.ㅎ
***
시에나 밀러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그녀는 정말 빛나더라.ㅎ
****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망설여지긴 하는데...
우린 아직도 미식이 사치 행위의 한 부분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파인 다이닝에서 걸핏하면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끼에 8만원 이상의 식사를 한달에 절반 가까이 먹는다는게 나같은 사람에게 어디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굳이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 외에도 일상에서 소소한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찾는 프랜차이즈의 음식값은 다들 알다시피 결코 저렴하지 않다. 어지간한 샐러드바만 이용해도 2만원은 훌쩍 넘으며, 닭 한마리는 최소 16,000~18,000원이고 피자 라지 한판은 무조건 2만원이 넘는다.
이런 프랜차이즈를 벗어나, 가능하다면 한달에 한두번 합리적인 가격에 멋진 음식을 내는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그 방법이다.
우리 주변엔 합리적인 가격에 기분좋은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내가 잘 먹고 배부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을까'를 고민한다면 대형 프렌차이즈가 아닌 작지만 내실있는 업장을 찾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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