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 92min / 다큐멘터리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부분 중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비행위를 통한 쾌락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우린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적절하든, 적절하지 않든 어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내 수중에 쥐어쥔 개인마다 크기가 다른 돈을 통해 어떤 방법에서든 소비 행위를 한다.
소비를 통해 재화를 획득하고, 재화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행위.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모두가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세상의 대중들은 넘쳐나는 하이테크 기술과 네트워크 인프라, 자극적인 쇼 비즈니스에 의해 뭔가 상당히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우린 새로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열광하며, 서로가 경쟁하고 상대를 짖밟고 올라가야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고,
SNS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망 서비스에 의해 동시대적인 감정적 유대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변화가 마치 삶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곤 하며, 심지어 세상의 트렌드를 통달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갖는 경우도 있다.
난 가구 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회사는 자체 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여 상품화한다.
하지만 이렇듯 직접 자체 공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고, 직접 판매까지 하는 가구 업체는 생각 외로 흔하지 않다.
이름이 알려진 가구 브랜드조차 자체공장은 아예 없이 하청을 통해 제품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으며,
생산 능력이 있는 공장은 상품을 기획하는 능력과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경험 및 지식이 취약하여 직접 판매를 하지 못하고 하청업체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그 공장들마저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무너져 간다.
많은 가구 브랜드가 해외에서 완제품 상태의 제품을 직접 수입하거나, 해외 공장에 하청을 줘 OEM 형태로 제조해 가져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중국의 임금이 저렴하다고 몰려갔던 국내 가구업체들은 중국의 임금 수준이 급격히 오르자, 베트남으로 제조선을 옮기더니
이젠 그보다 더 들어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까지 들어간지 오래다.
이런 현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이유는 다들 예상할 수 있듯이 '보다 싼 생산가격 확보를 통해 저렴하게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그 결과 가구 업계는 근 5년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MDF, 집성목, 가죽의 가격은 5년 사이에 자재별로 15~25% 이상 올랐는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가구의 가격은 오히려 20% 가까이 저렴해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드러난 상황만 놓고 어떤 분들은
'가구 업체가 폭리를 취하더니 이케아 들어온다는 뉴스에 위기감을 느껴 가격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거나 힐난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뭇 정당해보이는 힐난은 두가지 관점에서 틀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국내 제조 업체의 경우, 극히 일부 가구대기업을 제외하면 넘쳐나는 저가 수입 물량 때문에 이미 5년 여전부터 영업이익율이 턱없이 떨어져있는 상태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사회 전반을 살펴볼때 노동자들의 실질 급여가 시중 재화의 급격한 확대에 따른 소비욕구의 증대와 생필품 물가상승률을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고,
간접세 상승등의 실질적인 증세 구조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이야기라는거다.
그러니까, 가구 임금 수준 자체가 제과 유통업과 비교될만큼 열악한 수준에서 '폭리'라는건 오로지 가구 재화를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유통 매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
결코 제조업체의 몫이 아니라는거다. 게다가 지금은 가구를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마저 폭리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결국 이건 폭리를 취하고 안취하고의 문제 이전에, 정말 대중들의 삶의 형편이 진보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가구 업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 다른 재화의 경우도 그닥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본주의 체계 하에서는 기업들이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그 경쟁 속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단가를 낮추려고 한다.
생산단가를 낮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정의 혁신이 쉽지 않은 전통적인 제조 산업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을까.
간단하다. 직접 제조하지 않고,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낮은 인건비의 인력이 풍부한 나라에 하청을 주면 된다.
직접 제조할 필요가 없으니 설비 투자가 이루어질 필요도 없고, 인건비는 자국의 1/30~1/50... 1/100에 불과하니 생산단가 역시 턱없이 낮다.
(방글라데시의 방직공 시마는 하루에 2불을 받는다. 한달을 꼬박 일해도 60불이다. 600불이 아니라 60불!)
놀라운거지. 자본흐름의 유연성은 급격히 증대되었는데 노동력의 유연성은 언어의 장벽, 선진국의 제한 조치등으로 지지부진하니
형편이 좋지 못한 개도국은 닭장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선진국 대자본의 하청을 받게 되는거다.
이렇게 제조 인프라를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막강한 바잉 파워를 빌미로 글로벌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들간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여
그나마 턱없는 인건비 수준 감내할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뜨린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단가를 맞추지 못한다면 다른 공장으로 가겠다고 얘기하는거지.
당장 일이 급한 공장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노동자들은 하루에 2불(방글라데시)에 불과한 급여를 받으며 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 급급한 하청공장의 사장이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개선, 복지등에 신경을 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청을 맡긴 글로벌 대기업은 자신들은 일이 필요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순기능을 한 것이며
제조 인프라는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할 부분이니 책임이 없다며 모두 발을 뺀다. (실제로 H&M, 조프레시 등의 임원들은 이 영화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결국 이러한 부조리는 엄청난 참사를 불러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2013년 방글라데시 디카 외곽의 방직공장인 라나플라자에서 발생한 붕괴 참사다.
이 참사로 인해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들은 모두 글로벌 대기업에 의류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일하던 방직공들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장에게 건물에 금이 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건물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일하라는 사장의 강요에 의해 건물로 다시 들어가 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나 역시 당연히 옷을 구입한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와이프의 옷(마시모두띠- 인디텍스 그룹 계열)을 제외하면 패스트패션을 지향하는 기업들의 옷을 구입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 와이프, 아들의 옷을 따지면 매년 적잖은 옷을 구입한다.
그리고 그 옷들을 적게는 2년(너무 입어서 옷이 낡아지면...), 길게는 7년까지도 입는다.
와이프의 경우 대부분의 옷을 최소 3~4년 이상을 입는다.(블로그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와 아들의 경우 저렴한 옷보다는 적정한 가격 이상의 옷을 시즌오프 기간에 구입하고 오래...입는 편이고.
나름 신경써서 소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더더욱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글로벌 대기업이 자신들의 이윤만을 좇아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착취하고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추악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의류로 대표되는 섬유산업이 정유산업에 이어 두번째로 세상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입고 있는 면직 의류가 대부분 몬산토의 GMO 변형 유전자에 의해 개량된 면종자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
이러한 개량종자는 모두 몬산토가 독식하기 시작하고, 개량종자는 제초제 내성을 갖고 있어 예전처럼 국부적 제초 작업이 필요없이
그냥 제초제를 대량 살포하면 된다는 사실등을 모두 까발린다.
대량으로 제초제가 살포된 땅은 점점 황폐화되어가고 그 주변에서 일하는 이들은 암, 피부병 발생률이 타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 역시 보여준다.
즉, 글로벌 대기업은 인간이든, 토양등의 자연이든 이 모든 것을 상품으로 보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까발리는 것이다.
결국 공정무역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커피산업이 얼마나 많은 개도국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지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많은 공감대가 형성된 편이며, 그 결과 공정무역 커피들도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정무역 거래의 패션 업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정무역은 단지 하나의 작고 사려깊은 부분일 뿐이다.
많은 이들은 나와 같이 생각할 것 같다.
공정무역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건 단지 소수에 의한 무브먼트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현명하고 사려깊은 소비를 대중에게 이야기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쏟아지는 재화 속에 함몰된 것이 아닐까?
그 지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모두 당연하다고, 유지되어야한다고 믿는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대안을 제시하거나 더욱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게 맞겠지.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이 다큐멘터리를 본 내게 스스로 물어본다.
'이 수많은 저렴한 의류를 비롯한 엄청난 재화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이 저렴한 의류를 진열해놓고 쉽게 구매하게 하고는 정작 주거비용을 비롯한 다른 모든 비용은 급등한 현실에서 우리 삶은 정말 나아지고 있는걸까?'라고.
'Bloodlines' - Mimicking Birds
이 다큐멘터리의 엔딩송.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