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클라우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조식도 먹고...
아침에 일어나서 FIFA U-17 여자월드컵을 보고 나서 부산시립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요트경기장등 몇 군데에서 열리지만 가장 전시가 많이 밀집된 곳은 벡스코 건너편 부산시립미술관입니다.
이곳은 센텀씨티와도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더군요.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번 부산 비엔날레는 서울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습니다.
전시 작품의 규모도, 작품 하나하나의 소소한 재미도 정말 만족했던 전시였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처음 와보는데 상당히 괜찮더군요. 규모도 상당히 크고. 주차장도 있습니다.-_-;;;
(서울시립미술관은 주차장이라고 말할 게 없죠...)
서울시립미술관보다 나은 듯.
부산 비엔날레의 이번 주제는 '진화 속의 삶'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7,000원.
저희는 KIAF VIP 카드로 무료 입장이나... 아무 계획없이 왔기 때문에 그 VIP 카드도 집에 두고왔습니다.ㅎㅎㅎ
신세계 포인트 카드가 있으면 2,000원 할인입니다.
원더랜드.
클로드 레베크의 '찬가'
시립미술관 들어가자마자 1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 전시된 방으로 들어가면 대단히 묘한 기분이 엄습합니다.
찬가라는 작품명과는 아이러니하게 이 방에 들어선 이들은 호사스러울 정도로 미니멀한 작품 외형에 놀라면서도
날카롭기 짝이 없는 매달린 조형물에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찬가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종교적 경이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두려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묘한 작품.
이제 본격적으로 전시실로 입장합니다. 전시는 2층, 3층에서 계속 됩니다.
2층 로비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작품.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동공이 확장되는 스케일의 작품.
자독 벤 데이비드 (Zadok Ben-David)의 '진화와 이론'.
작품의 스케일이 전시 장소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부산 비엔날레에 전시된 작품의 크기는 상당한 크기입니다.
(상부에 설치된 작품은 장-뤽 모에르만의 작품으로 아래 다시 언급합니다)
철판에 일일이 세공된,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인류의 진화의 과정,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이 사용했던 수많은
도구들이 연대에 관계없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2층에 들어서서 맞닥뜨리는 이 작품에 경탄하게 되는데요.
그동안 책 속에서 자주 보아오던 인간의 진화 과정이 진부함의 클리셰를 넘어 이렇게 압도적인 스케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이 수도없이 셔터를 누르시더군요.
자독 벤 데이비드의 작품이 거대한 스케일로 놀라움을 줬다면 바로 건너편의 전시실에서 보여지는
임하타이 수와타나실프(Imhathai SWWATTHANASILP)의 '성장'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찬 가시적 미학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모발을 하나하나 모아 만든 이 놀라운 세공의 작품들은 그 소재가 너무 부담스럽지만, 작품을 보면 신체의
모발이라는 소재의 막연한 거부감이 눈녹듯... 사라져버립니다.
하나하나에 작은 세상과 탄생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알려진 작가라고 하는데 작품 자체가 너무 인상적이에요
작가의 아버님이 작고하시며 딸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준 것을 계기로 이런 작업을 시작하셨다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저랑 결혼해주실래요?'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요. 작품을 보면 정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너무나 이 작가의 작품을 맘에 들어했던 aipharos님.
영국 작가 휴고 윌슨 (Hugo Wilson)의 작품.
영국의 진화 연구가 J.B.S 홀의 정법화된 유전 메커니즘을 작품에 차용하여 '창조자'로서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작품들.
이런거 몰라도 대단히... 작품 하나하나가 주는 시각적 환희가 경이롭습니다.
스티븐 윌크스(Stephen Wilks)의 작품.
이와 비슷한 느낌의 현대미술을 자주 접하긴 하는데 스티븐 윌크스의 작품은 기존 형태의 해체 또는 변이를 이용해 작품을 구상합니다.
스티븐 윌크스의 설치 작품인 '변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영향을 받은 후 곤충이나 동물의 형태를 변형해 작업해왔다고 합니다.
난데없이 등장한 거대 애벌레에 나즈막한 탄성을 지르게 되는데요.
이 거대 애벌레는 자신의 원래 크기에 수천배, 수만배에 이르는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전혀... 형태를
지탱할 수도 없이 줄에 매달려 있습니다.
속박과 존재의 무상함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
전혀...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나무라시겠지만 묘하게 마크 퀸의 '셀프'의 이미지와 겹쳐버립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작품은 카더 아티아 (Kader Attia)의 '무제'.
그리고 앞에 보이는 돌로 덮힌 작품은 중국의 아트집단 메이드인 (MadeIn)의 '고요'.
두 작품이 전혀 다른 작품임에도 정서적 연계가 잘 전달되는 느낌입니다.
메이드인의 '고요'는 저 돌이 그냥 깔려있는게 아니라 물침대의 기능을 이용해 조금씩 융기하고 가라앉습니다.
관객들은 지나치면서 돌의 작은 움직임을 알아채곤 주의깊게 작품을 주시하게 됩니다.
사실 끝없이 움직이는 지구의 모습과 우리의 삶 모두가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막연하게 정적인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이 시간에도 우리의 삶이나 지구의 모습이나 모두 에너지를 갖고 꿈틀대고 있겠죠.(뭔 소리야 지금...)
카더 아티아의 '무제'.
각각의 다른 색상을 띈 비닐봉지들이 하나하나 작품의 단상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모리스 (Moris)의 '찢겨진 하늘'.
저희는 오픈시간이 되자마자 사실 도착한건데 많은 분들이 찾으셨더군요.
로랑스 데르보 (Laurence Dervaux)의 작품.
인간이 24시간 동안 심장에서 7000리터의 피를 사출하는 것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
강태훈 작가의 '새들은 더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종교적인 소재에서 출발한 차기율 작가의 작품들.
작품의 형태를 보고 난 프랑스 작가인 줄 알았습니다.
장 뤽 모에르만같은 프랑스 작가들이 호방하면서도 기형학적인 선을 잘 보여준다는 선입견이 내게 있어서인지...
이 작품들이 프랑스 작가의 작품일거라 생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작품은 노아의 방주등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작품의 형태에서 종교적 경건함을 찾는다기보다는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형상화된 모습에서 신화 또는 종교적 사실과 인간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추하는 듯 합니다.
억지스러운 감상입니다만...-_-;;;
작품의 시각적인 느낌이 무척 인상적인데, 부산 비엔날레에는 이처럼 한국 작가의 작품에 상당히 놀라운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인상깊었던 아르눌프 라이너 (Arnulf Rainer)의 회화 작품들.
60년대 후반부터 이와 같이 사진과 유성 물감, 크레용을 통해 작업했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의 작업이 많다고해도,
이 방식은 이 분의 오리지널 메쏘드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작품들입니다.
사람의 제스쳐에 집중하고 표정과 동작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불온한 이미지와 동시에 정서적인 유대감을 불러옵니다.
저와 aipharos님 모두 너무나 이 작품들이 좋았어요.
그분의 70년대 작품인 듯 합니다.
쉐쟈드 다우드 (Shezad Dawood)의 작품.
이 작가의 작품은 네온 사인을 이용한 이 작품(트레이시 예민이나 기타 작가들)말고도 또다른 작품들이 더 좋은 듯 한데...
이때 마침 이 부스의 전시조명이 문제를 일으켜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습니다.-_-;;;
으응...? KIAF에서 봤던 그 작품이 여기도 있군요.ㅎㅎㅎ
앨라스테어 맥키 (Alastair Mackie)의 작품.
역시 앨라스테어 맥키의 작품.
위 두 작품은 모두 터키 출신의 인지 에비네르 (Inci Eviner)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 결과물 자체가 유럽 작가의 작품인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건 역으로 인지 에비네르가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풍자같은 것 같습니다. (뭐... 터키도 EU에 가입했습니다만...)
신상호 작가의 작품.
코노이케 토모코 (Konoike Tomoko)의 작품.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의 작품이며 그야말로 압도적인 비주얼을 선사하던 작품인 '지구아기'입니다.
무척 넓은 방 안에 아주 어두운 상태에서 저 동자의 머리가 천천히 하늘을 응시하며 돌아갑니다.
이 작품을 보노라면 관람자는 그대로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아기가 돌아가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스스로
회전하고 있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됩니다.(이 어지러움이란 것이 생각보다 매우 강력하답니다. 멀미를 느낄 정도에요)
지구아기는 아기의 모습이지만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동시에 애틋하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지구의 지금 모습일 수도 있고, 작가와 관람자의 현재 모습일 수도 있겠죠.
위 사진과 이 작품은 모두 후앙 시이 치에 (Huang Shih Chieh)의 설치 작품들.
작품에서 보여지는 메시지가 아주 명료합니다. 제가 워낙 단순해서... 이런 작품들이 더 잘 와닿는 듯 합니다.
작품의 방법론에선 이러한 작품들을 종종 봐왔기에 신선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구체적으로 작품이 전달하고자하는
생태계 파괴에 대한 메시지가 쉽게 다가오지요.
앨리스 앤더슨 (Alice Anderson)의 작품.
건축적 요소에 자신의 신체를 모티브로 작업을 하다고 하는데 시각적인 위용과 달리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개인적으로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중 하나로 꼽고 싶은 신무경 작가의 설치 작품.
안이 매우... 어둡습니다. 사진처럼 환하지 않아요. 찍느라 고생했습니다.-_-;;;
원래는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한 세트만 있었다는데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새로이 작업되었다고 하네요.
저... 책상 위의 손가락들이 랜덤 시퀀스로 빛이 들어오며 움직입니다.
그 모습을 좇는 건 무척 적막하면서도 쓸쓸하고, 또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현대 사회의 몰개성화와 군중 속의 인간의 고독함이 한없이 뭍어나는 작품.
진화와 이론... 가운데 걸려이던 장-뤽 모에르만 (Jean-Luc Moerman)의 작품.
이러한 선(禪)의 사색에 대한 작품들이 프랑스 작가들 작품에서 종종 보여집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
또 얘기하겠지만...
전시회의 가장 주안점은 '전시를 온전히 감상하는 것'입니다.
저도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부산 비엔날레는 사진 촬영이 허가되어 있죠.(일부 작품만 불가)
자신이 기록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는 것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작품이 설치된 부스에 가운데에 당당히 자리잡고 앉아서 묵직한 DSLR로 완전 자세잡고 사진을 찍으면,
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더군요.
전 그냥 지나갔습니다. 찍든말든.
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전시 감상을 방해받아야하죠???
찍고 싶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사람들이 잠시 없는 틈을 기다려야하지 않나요?
하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나중에는 '확 촬영 금지해버려라'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전시 감상이 우선이라는거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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