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의 [アカルイミライ]가 아니다.
역설적인 의미는 맞을테고.

*
난 기본적으로 남탓을 하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죽어도 인정 안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재밌는 건 지금 회사의 임원은 모든게 남탓이다.
자신이 사무실 회의실에서 담배를 피우게 된 것도 이전 직원이었던 누구의 탓.
회계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도 이전 경리팀의 탓, 받아야할 금액을 묵혀놓고 방치해놓은 것도 모든 직원의 탓,
모든 경제 전반의 문제는 자신이 이미 예견한 것이라는 식의 웃기는 말밥같은 얘기를 듣다보면 쓴웃음이 난다.
내 성격도 만만치 않은 걸 아는지 내겐 시비를 걸지 않지만, 직원들의 퇴사 이유 중 1순위가 이 사람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통화 스왑, BDI, 합성CDO, CDS 프리미엄... 개념 제대로 모르면 입 좀 다물고 있던지.
가관이다. 가관...
영화도, 연극도, 음악도, 컴퓨터도 모두 자기 만큼 하는 사람이 없다는 듯 얘기한다.
내가 음악 좋아한다니 내 앞에서 음반 300장 있다고 그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한마디로 우스웠다.
다른 이가 음반 300장을 모았다면 난 정말 반색했을거다. 그리고 격려했겠지.
하지만 모든게 그저 과시하려는 이 어줍잖은 인생을 보면... 비아냥거리게 된다.
무서운 건, 내가 이 임원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이 임원이 어쩌다 내뱉는 옳은 판단마저 지지하지 않는다는거다.
지지하기 싫은거지.
나도 모르게 반대편에 서든지, 침묵한다.
뒤돌아서면 이 행동이 옳지 않다고 절감하지만, 모든 이들을 깔보듯 더러운 웃음을 날리며 얘기하는 이 웃긴
임원의 면상을 보면 가치 판단이 흐려져 버린다.


**
까놓고 말하면, 난 정말 직장을 더이상 다니고 싶지 않다.
일을 잘 해내면 잘 해낼수록 중소업체에서의 책임과 의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인력의 충원을 얘기하다가 혼자 잘 해나가니 걍 내버려두자,

어차피 저 녀석한테 다른 사람 월급 2~3인분이 나가니 함 굴려보자라는 심보인지 일은 미친듯이 늘어난다.
그래서 내 주머니에 조금이라도 그만한 댓가가 더 들어오느냐...하면 절대 그게 아니다.
난 그저 주는 돈 또박또박 받는거다.
남들 다 보합세였다는데 우린 170% 신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는 힘들다고 하고, 내 주머니는 달라진게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언제나처럼 이제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
그리고 업무를 정량과 정성의 양자에 균형을 맞춘 시각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기존철칙은 정량적...
그리고 아쉬울 때 정성적 잣대를 들이대는 사장님과 임원들을 보면, 사실 여기선 비전을 보지도 못하겠다.


***
아트포럼 리...라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말 그대로 dead end다.
인사동과 소격동은 갤러리의 멀티플렉스다.
우린 멀티플렉스에 영화를 보러 가지만,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한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곧 쇼핑과 문화를 구매하고 경험하는 행위와 동일하다.
갤러리도 마찬가지다. 여러가지 전시가 널려 있고,

주변에 기타 쇼핑할 공간과 음식점들이 즐비한 인사동과 소격동은 언제나 인산인해다.

그곳엔 '뭘 봐야지'하고 반드시 사전 정보를 습득할 이유도 없다.
가면 뭘하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아트포럼 리...는 아니다. 내 친구의 갤러리지만, 이 곳은 정말 딱 이곳이 목적지이자 종착역이다.
이 예쁜 건물은 상동의 신도시 안에 있다.
이작가가 이 갤러리를 지을 땐 이 동네가 상동의 카페촌이 될 자리라고 판단했었단다.
이해는 하나 넌센스인건 사실이다. 지금 이 예쁜 아트포럼 리 갤러리 옆은 고깃집과 카센터, 낚시도구를
파는 가게들과 그냥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서울과 인천의 사람들이 아트포럼 리에 오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차를 가져오는데, 

문제는 이곳까지 와서 겨우 1시간 남짓한 전시를 보고 다시 아무 기타 여가없이 돌아가야 한다.
아트포럼 리엔 이젠 카페도 없기 때문에 정말 그냥 전시보고 돌아가는거다.
이작가도 이러한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지역의 대안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을 했으니 이런 건 크게 관심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대안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는게 적절한 마케팅 마인드를 가진 제안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난 아주 잘, 정말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지금 전시 중인 한석현 작가의 전시.
지역 주민들조차 이 갤러리는 아직도 낯설다. 주변을 걸어가며 예쁜 건물이니 흘끗흘끗 보며 주변을 맴돌지만 선뜻 들어서지 않는다.
미술관계자들은 이걸 이해못하지만, 난 이러한 분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뭘 안다고 갤러리에 가... 이런 생각들이 일반인들에겐 실제로 있을 수 있다.


****
난 종종 전시회를 다녀온다.
내가 가장 큐레이터들이 답답한 경우는 많은 갤러리들이 스스로 관객들을 내쫓고 있는 경우다.
그들이 인쇄한 전시 소개 팜플렛이나 리플렛을 읽어보면 가관이다.
대학원 논문을 쓰듯 어려운 말들로 잔뜩 박아놓은 그런 리플렛을 보면서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걸 당연스럽게 알고 있다는거다.
성곡미술관에 지난 주 갔을 때 어느 중년의 남자 한 분이 같이 온 다른 한 분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스테판 쿠튀리에의 공장 시리즈 중 '토요타'를 보면서 '이건 토요타만의 정밀한 조립 설비 시스템을 이해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얘기하는거였다.
난감하다.
난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물론 믿는다.
작가에 대한 배경, 작가가 작품을 작업할 당시의 환경, 의도... 이를 알면 더더욱 많은 것이 보인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전시회는 거의 없다.
심지어 공개될 작품조차 알려지지 않은채 전시가 오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몰려온다. 이들 중엔 중고등학생들도 있다.
그들은 작품을 직관적 해석으로 수용한다. 당연한거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라니.
난 그러한 말 자체가 미술계 인사들의 꽉 막힌 엘리트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읽혀졌다.
KIAF 2004에 갔을 때 가장 어색했던 것은, 서로 주고 받는 인사가 '홍대~~학번', '서울대~~학번'이었다는거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솔직히 우습기 짝이 없었다.
큐레이터는 엄밀히 말하면 마케터다.
그런데 이 마케터가 대중과의 소통 합일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혼자 내달린다.
때로는 규모있는 경우 원장의 입김 하에, 때로는 자뻑에 빠진 프로그램으로 말이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서 우리나라 미술 시장은 많은 발전을 하고, 상당히 대중화에도 성공하고 있으나 아직도
만연한 이런 우스운 자뻑 현상은 제발 좀 밀어내 버렸으면 좋겠다.
예술한다고 고귀한게 아니라는거다.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고귀한 것이지.


*****
내 주변엔 누가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진 K작가, 성실함을 갖춘 P작가, 공간을 확보한 L작가, 역시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한국의 요식업 시스템에서 제대로 적응치 못하는 S쉐프가 있다.
물론 뒤져보면 더 나오겠지. 가까이 보면 이 정도가 맞다고 본다.
여기에 전직 굴지의 갤러리 큐레이터였던 Y씨도 있다.
그리고 능력도 없고 뭣도 없지만 마냥 회사에서 나가고 싶은 내가 있다. -_-;;;;
연계고리들이 있다.
재밌는 작업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들은 태생적으로 아주 자기들 멋대로다. ㅎㅎㅎㅎㅎㅎ
루틴한 타임 테이블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지.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은 발상들은 생긴다.

그게 밝은 미래를 '희망하는' 현재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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