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
다들 예견한대로다.
그저 미국의 대통령 피부가 좀 어두워졌다는 것 외엔 그닥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긴 한데,
사실 오바마의 당선이 우리와 미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너무 크다. -_-;;;
조금은 부러운 마음도 있다. 저들의 이번 선거를 바라보면서.
오바마가 근본적인 패거리 자본주의 정치를 혁신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고, 제3세계에 대한 폭압적 태도를 거둘 것이라고

그닥 예상하지도 않고... 그렇지만, 미국에서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묵과할 순 없을 것 같다.
사상 최강의 철면피 집단을 대통령과 그 수하로 둔 이 나라의 뭐같은 현실을 미루어보면 더더욱 그 부러움이 증폭되기만 한다.


2003년 늦여름.
짐바브웨의 아티스트 '베베'가 왔다.
당시 난 조건도 나쁘지 않았던 회사에서 인정도 나름 받으면서도 멍청하게도 선배가 부른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고,

사표가 수리되지 않자 건강상의 이유로 입원하는 거짓쇼까지 하며 튀어나와 SKY 중 모 대학출신들로만 구성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주로 예술품 기획/수입/판매까지 하는 회사였는데 전시품의 유지관리를 위해 짐바브웨의 아티스트를 초빙한 것이다.
베베는 180cm의 건장한 체구에 긴다리와 잘 생긴 얼굴이 돋보이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짐바브웨가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의사소통도 큰 무리는 없었지만

무가베의 독재 이후 백인들이 썰물빠지듯 나가버린 상황까지 겹쳐 베베의 나라 짐바브웨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더 엉망이 되어버렸다 다들 아시겠지만)

베베는 성실했다. 꾀를 부리지도 않았고 정말 누가봐도 순수한 마음이 보였다.
난 정말 그 친구를 작가로 대했다.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라고, 그가 피부색이 검다고 단 한번도 그를 작가가 아닌
대상으로 대한 적 없다.
그건 박명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박명래 작가는 사진 작업을 함께 했는데 그때 같이 술자리하면서 숙소도
같이 쓰다가 그 사람됨에 반해 친해지게 된 거였다.

문제는 같은 직장에 있던 다른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평상시엔 너무나 좋은 선배이고 형들이었으며, 다들 내로라하는 컨설팅업체, 대기업에서 명함달고 있던
분들이었는데, 이 베베에겐 그야말로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이중잣대를 들이대곤 했다.
창고에서 수리 작업을 하고나면 그 넓은 창고를 청소하곤 하는데, 이 작업을 할 때면 으례 자신들은 모두 나오고
베베에게만 청소를 맡기고 나오는거다.
내가 열이 받아 베베와 함께 청소를 하면 문 밖에서 고래고래 날 부르며 빨리 나오라고 성화를 내고,
자꾸 그렇게 도와주면 저애들은 노예근성이 있어서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히 도와줘야하는 줄 안다...고 내게 말을 하곤 하는거다.
정말 기가막혔다.
그당시 국내에서 제일 물좋다는 나이트를 가서 룸을 잡고 놀면서 마치 그게 이 친구에게 하사하는 성은...같은
식으로 무게잡고 얘기를 하고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주며 '너희가 언제 이런거 받아보겠냐'는 듯 얘기하고,
베베가 코앞에 있는데도 '애들 에이즈 많이 걸려서 위험해'라고 말하는...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모욕을 주는 것을 난 옆에서 봤다.
베베가 내게 '왜 한국인들은 에이즈에 대해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거냐'라고 탄식하기도 하고,
자신도 많이 배운, 그 나라의 엘리트인데 왜 이곳에서 이렇게 하인 취급 받는지에 대해 정말... 슬퍼하기도했다.
아주 어줍잖은 정의감같은 걸로 난 선배들과 걸핏하면 말싸움을 했고, aipharos님도 잘 알다시피 난 그 선배들과
급속히 멀어졌다. 사실 같이 있기도 싫었다.
요소요소 두루두루 적재적소에 다 들어가 있는 그 잘난 휴먼 네트워크.
난 뭐라도 배울게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게 남은 건 경멸 뿐이었다.

베베는 명확히 짐바브웨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하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엘리트였다.
난 그를 '아티스트'라고 불렀다. 그의 가족의 사진, 아이의 사진을 보고 함께 웃었고 인간적으로 그에게 진심으로
호감을 느끼고 그의 순수한 사람됨을 인정했다. 나 뿐이 아니라 박명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잘나서, 내가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당연하다는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쥐뿔이나 대단하다고 피부색을 따지고 후진국을 따진다는거냐.


오바마가 당선됐다.
어르신들이 얘기한다.

'저런 깜둥이가 대통령이 되다니 미국도 이제 끝났네'라고.

난 우리나라에 팽배한 흑인과 동남아인들에 대한 멸시의 시선을 자주 목도한다.
최근 동남아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이 저지른 범죄가 문제시되자 이들을 '쳑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마저 있다.
이웃 블로거님의 글처럼 노란 것들이 검은 것을 더럽다고 뭐라한다.
쥐뿔 선진국 선진국 노래를 하면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들을 바퀴벌레 보듯 한다.
그들을 내버려두면 마치 그들이 무슨 더러운 역병이라도 옮기는 것처럼 그들을 뽑아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주장하면 '그럼 너희 나라로 가'라고 몰아댄다.
결국 우리들의 선조들도 이들과 비슷한 오욕과 멸시의 이민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들에게 더욱더 천박한 시선으로 멸시와 경멸을 뿌려댄다.

오바마가 당선됐다.
어설픈 민족주의가 국수주의가 되고 배타주의가 되는 기묘한 편협의 땅 한국에서,

만약 혼혈인이 정계에 진출 한다면 그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까.
백인에겐 지나치리만큼 친절하고, 흑인과 동남아인들에겐 일단 색안경부터 끼고 보며,

그나라에서 온 이들은 모두 무식하고 비루한 사람들인 것으로 속단하는 경향이 팽배한 이 땅에서 사람과 사람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피부색은 단지 다른 개성일 뿐이라고 가르쳐달라고 주문하는 것이 사치이고 과욕일 뿐인거다.


짐바브웨에서 온 아티스트 베베.
만약 그가 프랑스에서 온 '백인' 아티스트 베누와... 정도였다면 그 때 그 선배들이 그렇게 막 굴려먹을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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