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막내 김창익씨가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아버님께선 그당시 정말 거금인 돈을 들여 제게 오디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해주셨었는데, 아침 일찍 절 깨운 아버님이 거실로 절 데려가더니 선물이라고 보여주시더군요.
감동먹었었죠. 정말 제거면 제 방에 둬야하는데 그쵸?ㅎㅎㅎ 하지만 정말 제 것처럼 저 혼자 썼어요.

그 오디오를 선물로 받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는 생활은 어느 정도 굿바이했습니다.
제가 처음 산 음반이 바로 산울림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였어요.
제 오래된 사진(이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아주 오래된 사진)도 있지만 이 음반을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몰라요.
타이틀 곡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엄청나게 긴 전주가 있었음에도 전 뭐가 좋았는지 타이틀 곡을 죽어라
들어댔죠.
지금 다시 생각하지만, 저희 가족은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밤이면 Boney M의 음반이나 이것저것 틀어놓고 식구 모두 거실에서 춤을 추곤 했어요.

아무튼...
전 계속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버님은 미8군까지 가셔서 우리나라에서 금지시킨 곡 때문에 제대로 감상이 불가능했던 Pet Shop Boys나
Prince의 음반을 마구 갖다주셨고, 친구들에겐 걸어다니는 팝송사전이라고 불리우며 음악을 친구사귀는
기준으로 삼게 되었죠.
그러다 결국 해외 음반숍과 mail order을 하게 된거에요.
산울림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집니다.
해외 리스너들과 샵 주인들이 우리나라 레전드 음반과 맞교환을 요구하게 되었고,
전 정동이나 명동을 돌며 산울림 1~3집을 닥치는 대로 구해서 trade했습니다.
당시 1집이 약 120불정도의 가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2~3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거든요.
제가 음반 컬렉팅하는 데 크진 않아도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산울림'입니다.

제가 산울림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3~14년 전 종로의 어느 건물 지하 공연장에서였어요.
연주도 삑사리고 다 이상했는데 그 공연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김창완씨의 짝짝이 양말도 압권이었구요. ㅎㅎ

산울림의 곡들은 사이키델릭과 몽환적 감성이 교차하는 느낌의 곡들이 많지요.
놀랍게도 산울림의 김창완씨는 몇번에 걸친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싸이키델릭을 그 당시 거의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영국 록은 거의 몰랐다고 말했었죠.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어떤 음악의 강력한 자장 안에서 만들어진게 아니라면 산울림의 오리지널리티는 놀라운 수준이거든요.
전 지금도 우리나라 최고의 음반 중 하나는 산울림의 1,2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음반들이라면 여럿 있겠지만,
제가 자신있게 꼽을 수 있는 것은 산울림의 1,2집과 추억들국화 음반이에요(들국화의 음반이 아니라)

김창익씨가 돌아가셔서 이젠 더이상 산울림의 온전한 공연을 볼 수는 없겠습니다.
김창익씨가 멋적게 기타를 들고 웃던 공연장에서의 모습이 정말 기억나네요.
(오해가 있을까봐, 김창익씨의 원래 포지션은 드럼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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