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쇼룸 문을 닫은 뒤

MMCA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에서 4월 12일부터 시작된 아스거 욘 Asger Jorn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the Artist as a Social Activist> 전시를 보러 왔다.

이 날의 소격동은 정말 토요일 저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그래서 더 호젓한 기분으로 기분좋게 길을 거닐고 전시를 봤지.

무엇보다 이 전시가 정말 정말 좋아서 오랫동안 느끼던 전시 갈증을 깔끔하게 채워줬다.

혹시라도 관심있는 분들은 꼭 전시 직접 보시길.

 

 

 

 

 

생리통으로 가장 힘든 날인데도,

약을 먹고서라도 전시를 보겠다고.ㅎ

그리고 이 날 전시를 정말 좋아했다.

 

 

 

 

 

 

 

원래 우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무척... 이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선도 맘에 안들었지만 무엇보다 그 당시의 전시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꼰대의 느낌이라 싫었다.

하지만 쥐+박 시기를 거친 뒤 몇년 전부터는 좋은 전시도 정말 많아져서 이렇게 오는 재미가 있다.

 

 

 

 

 

 

 

 

아스거 욘

Asger Jorn

아주...아주 오래전,

once upon a time...

심심풀이 땅콩삼아 미학 공부한다고 대충 책들고 뒹굴거리면서 아스거 욘의 이름은 몇 번 봤다.

기 드보르, 미셸 베른슈타인과 함께...

 

 

 

 

 

 

 

 

 

 

 

 

 

 

 

 

 

 

 

 

 

전시는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아스거 욘 Asger Jorn의 작품 세계를 세가지 관점으로 묶어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는 새로운 물질과 형태로서의 실험 정신

두번째는 구조에 대한 도전, 그러니까 모든 사회적 통념과 구조에 대한 도전을 통한 정치적 헌신,

세번째는 남유럽 전통이 북유럽 문화를 매우 한정적이고 지역적인 민속 예술 정도로 평가절하한 것에 대한 대안적 세계관.

이렇게.

작가의 작품은 변하지 않는 형상 그 자체이나,

이면의 메시지는 수많은 관람자 (혹은 관찰자)에 의해 무수하게 많은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스거 욘의 작가적 태도에 대해 조금은 알아본 뒤 전시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쥬빌라시옹 라르모예나쥬즈>

Jubilation Larmoyennageuse, 1969-1970

비닐 포장지를 붙인 플렉시글라스에 아크릴 작업.

 

 

 

 

 

 

 

 

 

 

 

 

 

 

<무제>

Untitled

(collaboration with Enrico Baj)

1958

저 검은색은 옻칠.

 

 

 

 

 

 

 

 

 

 

 

 

 

 

 

 

 

 

 

 

 

<어미 개를 안은 새끼>

the Dog Holds Its Mother

1955

 

 

 

 

 

 

 

아... 진짜 인상적이다.

한참을 서서 봤다.

 

 

 

 

 

 

 

 

 

 

 

 

 

 

 

 

 

 

 

 

 

그의 4부작.

 

 

 

 

 

 

 

 

 

 

 

 

 

 

 

 

 

 

 

 

 

 

 

 

 

 

 

 

이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우린 제대로 보질 못했다.

와이프가 좀 많이 아쉬워해서 다음에 다시 들러 꼭 한 번 보기로.

아스거 욘은 혁명적인 자신의 사회운동가로서의 작품관을 실제 그의 삶에도 그대로 관철시켰다.

대부분의 혁명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가난을 피해갈 수 없어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낡은 회화 위에 자신의 그림을 덫칠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여러번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를 거부했고,

거부하는 정도에 머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트로피를 안겨주는 주체(구겐하임 재단)를 오히려 통렬히 비판했다.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Untitled

(unfinished disfigurations)

1959

가장... 정말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아...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의 초상 위에 새의 형상을 그리고 색을 대충 입히다 만 것처럼 끝낸 이 작품의 제목은 무제이며,

미완의 형태 파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아스거 욘이 끝없이 캔버스 위에 새로운 물질(다양한 소재)과 형태를 구현하려고 한 것은 기본적으로 반달리즘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터뷰, 저서에도 밝히고 있듯이 끝없이 기성의 통념과 모순적 구조에 저항했다.

오래된 그림, 귀족의 그림으로서의 전통적 회화는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modification의 대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결국 원형을 남겨두고 끝을 맺는 방식으로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와이프도 이 작품을 가장 인상깊게 봤다고 했는데,

와이프의 경우 틀에 박히고 답답한 인물상이 덧칠된 새의 형상과 낙서에 가까운 파괴 작업을 통해 오히려 자유로운 생명력을 가진 것 같다고 했다.

나 역시 와이프의 감상에 공감한다.

 

 

 

 

 

 

 

 

<달콤한 인생 II>

the Sweet Life II

1962

 

 

 

 

 

 

 

 

 

 

 

 

 

 

<선량한 목자>

the Good Shepherd

1959

 

 

 

 

 

 

 

 

 

 

 

 

 

 

 

 

 

 

 

 

 

의도적으로 철자를 틀렸다.

 

 

 

 

 

 

 

 

 

 

 

 

 

 

 

 

 

 

 

 

 

 

 

 

 

 

 

 

이 책을 정말 갖고 싶더라.

 

 

 

 

 

 

 

 

 

 

 

 

 

 

 

 

 

 

 

 

 

 

 

 

 

 

 

 

 

욘 미술관에서 작품을 넣어 보내온 박스를 이런 식으로 전시에 활용하고 있었다.

무척 신선하고 재밌는 전시 구성.

 

 

 

 

 

 

 

 

 

 

 

 

 

 

 

 

 

 

 

 

 

 

 

 

 

 

 

 

 

 

 

 

 

 

 

 

 

 

 

 

 

 

 

 

 

 

 

 

 

 

 

 

 

 

 

 

 

 

 

 

 

 

 

 

 

오랜만에 정말... 인상깊은 전시를 봤다.

아스거 욘 Asger Jorn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다음에 한 번 더 들러봐야할 것 같아.

다큐멘터리도 끝까지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