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 är bäst! / We Are the Best! / 위 아 더 베스트!>
Directed by Lukas Moodysson (루카스 무디슨)
2013 / 102min / sweden
Mira Barkhammar (미라 바카마르), Mira Grosin (미라 그로신), Liv LeMoyne (리브 르무엔)
루카스 무디슨 감독의 1999년작 <Raus Aus Åmål / Fucking Åmål / 쇼우 미 러브>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장영화 중 한편으로 이곳에도 몇번 글을 올린 바 있다.
2014년에 발표한 <Vi ar bast! / 위 아 더 베스트>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성장 영화 중 한편으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만큼 이 영화는 인상적이며 사랑스럽다.
아마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명의 아나키스트 13~14세 소녀들은 내가 본 영화의 소녀들 중 가장 대책없으며 동시에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일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ㅎㅎㅎ
1982년의 스웨덴이 배경.
아름답게 꾸미면 예쁠거라는 주변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숏컷을 고집하는 보보, 모히칸 헤어를 고집하는 클라라는
당시 격변하는 대중문화의 흐름을 빠르게 흡수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오로지 펑크록을 고집하는 소녀들이다.
그녀들에겐 펑크가 문화의 노른자위이고 동시에 자신들의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다.
여성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외모와 문화적 취향 탓에 이들은 또래들로부터 사실상 왕따당하는데 이러한 자신들에 대한 비아냥이 빌미가 되어
얼떨결에 라이브 스튜디오에 들어가게되고 스튜디오에 있던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게 되면서 즉흥적으로 그들만의 펑크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 먹는다.
펑크밴드를 결성하기로 했지만 악기 연주를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그냥저냥 말도 안되는 연주와 노래로 시간을 떼우다
자신들과 처지가 비슷한 헤드비히라는 소녀에게 접근한다.
헤드비히는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녀 역시 늘 혼자 식사를 하는 왕따 신세.
헤드비히로부터 간단한 악기 연주를 습득하고 이들은 아주 조금씩 밴드로서의 모습을 갖춰간다.
줄거리를 대충 요약하면 마치 이 영화가 멋진 연주를 위한 소녀들의 음악 여정을 다룬 영화인 것으로 느껴질텐데 사실 보보와 클라라에겐 그런건 그닥 중요한게 아니다.
뭔가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방황 끝에 정진하여 뭔가 그럴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꼭 그런 결말만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은 기성의 입맛에 맞는 결과일 수도 있다.
이 소녀들은 자신들 나름의 멋진 결말을 맞이하지만 말이다.
이들에게 펑크는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화, 기호 중 선택 가능한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체육시간에 농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체육관을 뛰게되는 벌을 받으면서 생긴 불만을 '아프리카에선 아이들이 굶어 죽고 세상은 독으로 오염되는데
저들은 오직 스키 리프트에나 관심이 있지, 저들은 축구팀에나 관심이 있지, 난 스포츠가 싫어 난 스포츠가 싫어'라는 가사로 만들어 외쳐댄다.
물론 보보와 클라라는 아프리카에서 매일 굶어죽는 아이들에게 관심따위 없는 듯 보인다. 펑크라면 뭔가 사회 반항적인 메시지를 담아야한다는
일종의 치기어린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심지어 그녀들은 클래식 기타를 여전히 연주하는 헤드비히에게 밴드에는 일렉트릭 기타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구입하겠다고
길거리에서 별의별 거짓말로-때론 진실로- 동냥을 하기까지한다. 그리고 그렇게 손에 쥔 돈, 아직 일렉트릭 기타를 사기엔 한참 모자르는 그 돈을
배가 고플 뿐이라며 먹는데 다 쏟아붓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어떤 명확한 목표 의식이 있거나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하는 열정 자체가 그닥 분명해보이지는 않는다는거지.
기성세대의 눈에서 혀를 끌끌 찰 수도 있을 법한 이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의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고
열정적으로 이뤄내는 일종의 '성공 신화'를 우린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하기 위한 것이지 일방적으로 규정된 강요된 삶의 목표와 삶의 방식을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다.
누군가는 조금 더 덜 노력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인생에 그닥 큰 목표가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부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누군가는 아둥바둥대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거지.
그런 그들을 '낙오자', '실패자'라고 몰아대는 사회야말로 실패한 사회다.
근본적으로 파시스트 돼지가 된 세상이라고.
자신의 삶의 방식이 열정과 노력, 재능에 의해 재단되고 단죄되는 현실을 난 결코 이성적인 현상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나라에서 똑같은 가치와 삶의 방식을 강요받는 우리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큰 희생자가 아닐까...
영화 속에서 보보, 클라라, 헤드비히는 자신들이 믿고 생각하는 대로 하루를 보낸다.
당장 내일의 나를 걱정하지 않고, 무언가 특별히 엄청나게 잘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옆에서 보면 '사람 구실이나 하겠어?'라고 할 만큼
한심해보일 수 있는 보보와 클라라, 헤드비히일 수 있지만 난 이들의 이러한 '대책없어 보이는 듯한' 청소년 시절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타인과 부딪히며 공감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 당장 치기어린 그들의 가사는 어쩌면 훗날 수많은 이들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전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인생의 출발선 상에서 고작 몇걸음 밖에 떼지 못한 이들에게 '학생답게'를 강조하면서 기성세대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훈육시키고
이걸 해보다가 안되면 저것도 해볼 수 있는 가치의 유연성따위는 말살하다시피한 채 모두에게 동일한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설파해대는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이 스웨덴의 성장 영화가 보여주는, 말하고 있는 주제의식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2년은 미국, 영국의 펑크락 절정기가 한풀 꺾여 Joy Division등을 위시로한 뉴웨이브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
미국에선 이를 2nd Invasions of British Rock이라고 불렀다.
**
영화 속에서 헤드비히가 스웨덴의 전설적인 포크록 밴드 KSMB의 명곡 'Sex Noll Två (Six Zero Two)를 포크 버전으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Trees의 포크록을 듣는 느낌이다.
원곡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
'Sex Noll Två' - KSMB
***
루카스 무디슨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삽입된 곡들 하나하나를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다.
사실 영국 뉴웨이브 밴드들과 (Joy Division이나 심지어 Human League까지) 펑크록은 사실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인데
클라라는 자신의 큰오빠인 리누스가 Joy Divison을 듣는다는 이유로 '배신자'라고 부른다.ㅎ
이쯤에서 Human League.
중학생 시절에 정말 좋아했던 밴드.
'Don't You Want Me' - the Human League
중학생때 가족 여행을 갔다가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도착, 방에 들어오자마자 전축(그 당시에는 전축!)을 켰는데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에서 이 곡이 나왔다.
그때 내가 원하던 딱... 그런 곡이었지.ㅎ
'(Keep Feeling) Fascination' - the Human League
이 곡도 이들의 대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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