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Will Be Blood] directed by Paul Thomas Anderson
2007 / 약 158분 / 미국
출연: Daniel Day-Lewis, Paul D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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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Thomas Anderson은 저와 aipharos님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장편은 모두 DVD로 갖고 있구요.
사실 장편 데뷔 12년인데 겨우 다섯편의 장편이라니... 봉준호 감독보다 더하군요.

데뷔작이 범죄물, 연이어 드라마 두 편, 그리고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성이 빛나는 로맨스를 찍더니
이번엔 Upton Sinclair의 원작을 각색하여, 그야말로 누군가의 말대로 타임캡슐에 넣을 만한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2007년은 코엔 형제의 [No Country for Old Men],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Eastern Promises]등 정말 대단한 영화가
많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론 코엔 형제의 영화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가 같은 해에 개봉한 사실이 아쉬울 만큼 말이죠.

이제서야 보게 된 [There Will Be Blood]는 종교적 관점이 개입되겠지만 대단히 '악마적'인 영화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이 10여분을 넘게 진행되는 인트로에서 보여준 가공할 호흡과 Arvo Pärt(제가 좋아하는 현대음악가라고 얘기한 바 있는)의
음산한 오케스트레이션만으로도 압도적이고 또 앞으로 진행될 서사를 위해 풍부한 정서와 정보를 전달해줍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굳이 업튼 싱클레어의 원작을 이제서야 들추어 이토록 잔혹한 시선으로 시대를 반추하는 이유는 진부한 짐작이겠지만,
종교의 광기와 석유를 위해 미쳐버린 괴물과도 같은 지금의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업튼 싱클레어의 원작이 어떻든 그건 전 모릅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미국인들은 끝없이 자신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그것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단죄하며 고독해하지만 즐깁니다. 결코 자신의 방식을 후회할 리도, 포기하지도 않고 말이죠.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데니얼 플레인뷰, 그리고 역시 이전에도 제가 기대하는 배우라고 말한 바 있는 폴 다노(Paul Dano)의 일리아 선데이.
이 둘의 사고 방식은 지금 현대의 미국인들의 사고 메커니즘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
종교적 신념을 가장한 채 속물적인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일라이 선데이, 자신은 결국 엄청난 부를 일궈내지만
자신과 관계한 모든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위악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는 데니얼 플레인뷰는 정확히 지금의 미국을 얘기합니다.

재밌는 것은 우린 데니얼 플레인뷰의 삶을 조금씩 좇아가며 그의 인생을 엄밀히 말하면 가급적 이해하고 동정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철저한 고독에 담긴 그를 보면서 그걸 권선징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도리어

저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인생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죠.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악을 스크린으로 명백하게 목도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인물, 일리아 선데이에 대해선 조금도 연민을 갖지 못합니다. 동정의 여지없는 시선이 되죠.
그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데니얼 플레인뷰처럼 보는 이도 철저하게 일리아 선데이를 경멸하고 혐오합니다.
워낙 분명한 노선을 택하고 있어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바라보는 청교도적 윤리관으로
가장한 미국 개신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분명히 느낄 수 있어요.
이 영화에서만 보자면, 개신교도들의 우매한 광적 신앙은 살인을 저지르고
대중과 부를 분배하기 거부하는 기업인만도 못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오해할 필요 없습니다.
이 영화가 미국의 현실을 변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인물들, 결국 일리아 선데이나 데니얼 플레인뷰도 다를 바 없음을 마지막에 알게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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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Radiohead의 Johny Greenwood가 맡았습니다.
Radiohead에서도 피아노, 리드 기타, 신스, 리코더, 음향효과를 맡고 있는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창의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Arvo Pärt같은 현대 음악가의 곡,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등이 툭툭 뒤섞여 등장합니다.
영화의 음악이 쓸데없이 도드라지진 않지만 이 영화의 건조하고 메마른 감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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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o Pärt는 제가 Heiner Goebbels(하이너 괴벨스)만큼 좋아하는 작곡가입니다.
그러고보니 2005년 1월에 포스팅한 글에서 잠시 언급한 바가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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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영화적 형식미는 얼핏 보면 그간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과 다른 느낌이 들지만 사실 크게
다른 건 없는 듯 합니다.
다만, 이번엔 보다 더 작위적인(어감이 부정적인데), 아니 그림이 될만한 앵글을 유난히 많이 잡아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장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왜인지 모르겠네요.
사실 앵글과 조명만으로 서사의 정보를 준다는게 쉬운 건 아닌데요.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이러한 방식이 세련되게 받아들여지진 않았어요. 이상하죠.
전 이 영화를 정말 너무 인상깊게 봤음에도 지나치게 툭툭 메시지를 강조하는 장면에선 멈칫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그림'은 많이 나왔는데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진 못하겠다라는거죠.
제가 감히 이런 말을 한다는게 참 우습긴 한데... 제가 느낀 바는 그랬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이 장면에서 우린 아주 쉽게 이 둘의 운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비춘 곳에서 앉아있는 이와 아닌 이.
너무 주지하는 바가 명백해서 도리어 전 어색했어요.

 

 

 

 

 

콸콸 쏟아지는 기름 웅덩이에 비친 아름답고 맑은 하늘.
그리고 송유관을 '따라' 걸어가는 한 사람.
송유관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송유관으로 인해 얻는 부를 좇는다는 의미로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거뭇거뭇한 기름 웅덩이에 아이러니하게 비친 맑은 하늘...
다만, 이 프레임에서 얻는 정보들은 단순히 연계성없는 독보적인 정보들입니다.
굳이 한 프레임의 정보가 인과율에 따라 관계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분명한 메시지를 너무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간혹 생뚱맞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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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장면입니다. 뭐라 할 말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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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Miss Sunshine]의 Paul Dano는 나이스 캐스팅입니다.
[L.I.E]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컸군요.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고 변태적이기까지한 선한 척하는 웃음을 묘하게 지어 보이며 욕망을 좇는 그의
모습은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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