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일요일이니 더 자고 싶었는데 역시... 난 그게 안된다.

예전 날 알던 이들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넌 잠을 그렇게 조금 자는데... 그 시간에 공부했으면 지금 뭐가 되어도 되었을거야'


그 말은 내가 지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다는 뜻도 되겠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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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정말 비가 많이 내렸다.

이렇게 비가 계속 와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거세게.

하늘은 요 며칠동안 너무 더운 공기를 많이 먹어서 체한 것처럼 꾸르륵 꾸르륵 쿵쾅... 난리도 아니었고.

음식점을 낮 12시에 예약했는데 가는 길이 보통이 아니겠군...하는 약간의 걱정도 들었는데,

오전 10시가 되어가니 빗줄기가 많이 약해지더라.


사실...

이 날은 전시를 보기로 했었다.

정말 보고 싶은 전시가 두개 남았는데 곧 전시가 끝나서 이날 그 중 하나를 보려고 했지만 와이프가 생리통으로 고생이라 패스했다.

그래도 식사는 맛있게 하려고.ㅎ

 

 

 

 

음식문헌연구가 고영 쌤의 페북/인스타 피드에 엊그제부터 정말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들이 올라왔다.

어지간히 만족하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여러장의 음식 사진을 올리지 않는 고영 쌤께서 이렇게까지 사진을 올리다니...

궁금했다.

일산의 프렌치 레스토랑 '보트닉 (BOTNIQ)', 아마도 Botanical Boutique.

그 이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일산의 음식 상권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나로선 가고 싶거나 그런 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고영 쌤께서 올리신 피드때문에, 정말 그 피드 때문에 마음이 혹하여 어제 바로 일요일 점심을 예약하고 와이프와 달려왔다.


영업시간은 화~일요일이며 일요일은 런치만 운영한다.

곧 하계 휴가를 가신다니 혹시 가보실 분들은 휴가 일정 확인하셔야 할 듯.

 

 

 

 

 

 

 

 

일산의 한 아파트 상가 건물에 위치해있다.

상가라니, 위치가 애매하다 생각하는 분들이 혹시 계시다면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덕분에 일부러 발렛서비스를 준비하거나 주차공간을 확보해야하는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일 수 있고-물론 주차권을 주시지만...-,

그렇게 사람이 몰리는 상가 건물이 아니어서 식사를 하는데도 주위 환경이 거의 신경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위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이곳, 공간이 무척 예쁘다.

 

 

 

 

 

 

 

 

전체 샷을 찍어야하는데 그럼 오픈 주방이 죄다 나와서...

그 샷은 도저히 찍지 못하겠더라. 너무 무안하고 민폐 같아서.

 

 

 

 

 

 

 

 

여긴 계산하고 나가면서 한 컷.

 

 

 

 

 

 

 

 

생리통으로 고생 중인 와이프. 한달에 이틀, 이렇게 고생을 한다.

이 고생을 나를 포함한 남자들은 이해 못하겠지.

 

 

 

 

 

 

 

 

아... 와이프가 드뎌 머리를 잘랐다.

어제 나와 함께 미용실에 가서, 나는 커트하고.

와이프는 염색하고 커트하고.

 

 

 

 

 

 

 

 

Botanical Boutique...의 뜻일테니,

당연히 식물들이.

잘 어울린다.

확실히 요즘은 Botanic 컨셉이 유행.

근데 이 유행은 좀 오래갈 듯.

 

 

 

 

 

 

 

 

저 테이블 위의 화병이 정말 예뻤는데 가까이 가서 찍긴 무안하고...

그냥 이렇게 멀찍이 앉아서...ㅎㅎ

 

 

 

 

 

 

 

 

와인 메뉴 스탠드 클립은 brass 컬러.

 

 

 

 

 

 

 

 

커트러리를 이렇게 따로 준비해두셨던데,

 

 

 

 

 

 

 

 

브론즈 재질로 따로 주문 제작하신게 아닌가 싶다.

무척 예쁘던데.

보트닉의 음식과 인테리어의 섬세함이 대단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나 대강 넘어간 부분이 없어.

이건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런치 코스 메뉴.

난 일반 구성,

와이프는 이베리코 플루마를 한우 1+ 채끝으로 변경하여 1만원 추가.

와인은 글라스로 한잔 하고 싶었으나 와이프도, 나도 약을 먹는 처지라... 패스.

그래서 그냥 펠레그리노 탄산수 한 병.

 

 

 

 

 

 

 

 

첫번째,

토마토, 리코타 치즈, 엘더플라워 비네거를 이용한 샐러드.

 

 

 

 

 

 

 

 

평범해보이는 식재료로 이렇게 엣지있는 맛을 내는 집을 우린 격하게 사랑합니다.

처음엔 '어? 리코타 치즈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싶었는데...ㅎ

이건 토마토 샐러드였어.

허브와 비네거로 맛을 기가막히게 조성한.

다음 메뉴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

 

 

 

 

 

 

 

 

두번째,

속초 오징어, 감자퓨레, 먹물소스, 쪽파

...

난 아마 이 메뉴 다섯 접시 이상은 혼자 다 비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더 비울 수도 있을거야.

양이 결코 적지 않은데 정말 맛있어서 더/더/더 먹고 싶었다.

 

 

 

 

 

 

 

 

오징어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부드럽게 조리할까? 이건 내가 몰라서 그런거라 치자.

저 감자퓨레는 그 '흔한 감자퓨레'들과는 맛의 단단함, 풍성함이 비교가 되질 않더라.

게다가 쪽파와의 어울림이란 정말...

먹물 소스의 깊고 고소한 맛, 앙증맞게 담아냈지만 결코 들러리가 아니었던 홍합 튀김.

뭐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이런 한 접시를 구성하는 건 공부와 고민이 없다면 과연 가능한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메뉴도 다... 이렇게 완벽하게 클리어했지.

 

 

 

 

 

 

 

 

세번째,

반숙계란, 포르치니 버섯 소스, 쉐리 와인에 절인 마늘.

이번 메뉴도 역시, 이쯤되면 디너를 반드시 먹어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거지.

만약, 일요일도 디너가 가능했다면 어쩌면 나는 오늘 디너까지 먹어봤을지 모른다.

아... 물론 와이프에게 제지를 당했겠지만.ㅎ(근데 와이프도 꼬임에 넘어왔을거라는데 올인ㅎ)

이 버섯 소스, 전혀 짜거나 달거나... 그런 맛이 아니라 깊고 그윽...하다.

 

 

 

 

 

 

 

 

이 메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아주... 훌륭한, 정말 훌륭한 빵도 무염버터에 좋은 소금을 올린 버터와 함께 내주신다.

빵은 버터를 발라 먹어도 되는데... 빵도 직접 준비하신 것인지 궁금했다.

보통이 아니었어. 정말로.

 

 

 

 

 

 

 

 

무염 버터에 아르헨티나 천일염을 살짝 올렸다.

이거... 별미예요.

장난없어요.

 

 

 

 

 

 

 

 

물론... 이 포르치니 버섯 소스를 슥슥 발라 먹어도 정말 좋고.

 

 

 

 

 

 

 

 

네번째 메인.

와이프의 한우 1+ 채끝 80g

메인도 당연히 훌륭한데 메인에 집중하는 3코스 중심의 음식점과 달리,

보트닉은 모든 코스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메인의 포션을 좀 낮추고 전체적으로 고루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린 이 점이 정말 맘에 들었다는거.

암튼...

 

 

 

 

 

 

 

 

스테이크의 풍미도 훌륭하지만 곁들인 가니쉬를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온다.

우측 아래 양파를 볶아낸 기름을 이용한 소스는 스테이크를 묻혀 먹으면 그 감칠맛이 배가되는 효과가 있다.

 

 

 

 

 

 

 

 

내가 선택한 스페인산 이베리코 플루마 65g, 햇양파구이, 애호박.

고기만 다르고 가니쉬 구성은 동일하다.

 

 

 

 

 

 

 

 

이베리코 플루마...

한우도 훌륭하지만 이 돼지고기는 정말... 돼지의 육향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이건 완전 소고기인줄 알았을지도 몰라.

드셔보세요. 정말 만족하실거에요.

 

 

 

 

 

 

 

 

가니쉬들도 정말 모두 다 훌륭하다. 햇양파구이와 호박, 껍질콩 튀김... 모두 스테이크의 맛을 풍성하게 해주더군.

 

 

 

 

 

 

 

 

거기에 아주 밸런스 잘 잡힌 자몽 샐러드도 내주신다.

이 샐러드를 먹어보면 안다.

뭐 하나 허투루 내는 법이 없는 집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과 음료가 나오기 전,

스탭께서 테이블을 정리해주신다.

그리고...

주방장께서 직접 아이스크림을 서브해주신다.


엄청... 커보이는 카라멜 아이스크림.

카라멜 아이스크림 위에 팝콘을 갈아 올렸다.

그리고 아래에는 카라멜 소스가 살짝 깔려있고.

 

 

 

 

 

 

 

 

디저트 아이스크림치곤 너무 양이 많은게 아닐까...?싶었는데 그게 아니야.

이렇게 단면이 빵처럼 쪽쪽 찢겨지는 느낌.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에 공기를 주입하신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대단하다...

 

 

 

 

 

 

 

 

커피도 정말 훌륭했다.

이디오피아 시다모.

산미가 이렇게 흩날리지 않고 밀도있게 풍겨올라오는 커피라면 난 언제든 환영이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계산하면서 바로 다음 디너 예약을 잡았다.

 

 

 

 

 

 

 

 

고영 쌤 덕분에 정말... 기가막힌 집을 알게 됐다.

게다가 일산이니 집에서 멀지도 않고.





++

한국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배달 음식이 여전히 대세여서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소스에 익숙해진 많은 분들.

여전히 먹고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느냐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싹을 틔우지도 못한 나라.

그러다보니 음식점도 메스컴에 휘둘리며 1,2,3...3대 어쩌구... 줄세우기에 길들여진 나라.

망원동에서 객단가 1만원이 넘어가면 접근 가능한 손님 풀이 확 줄어드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쳐지나가듯 먹는 음식점들이 결코 저렴하지도 않다는 사실.

모든게 개인이 선택의 문제라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진득하게 누가봐도 고집스럽게 주방의 고민과 노고가 그대로 드러나는 이런 음식을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들에게서 형편없는 급식 얘기를 들으며,

그 급식으로 최소 6년간 입맛이 길들여지는 대부분의 아이들.


과연 우린 음식에 밀도있게 집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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