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틸샷은 직접 캡쳐한 이미지입니다만, 다음 영화는 대중 공개된 스틸샷 중 골라서 사용했습니다.
[Avatar/아바타], [미쓰 홍당무], [김씨표류기], [마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없다고 지나치게 뭐라 하시는 분은 없으셨음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기준이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2009년에 본 영화 중 50편을 뽑아 봤습니다.
2009년에 본 영화 편수는 정확히 172편입니다. 유난히 극장에서 본 영화들이 많았고, 2008년에 그만둔 DVD
구입도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지만 이어진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매해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 순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위이며, 아울러 이 순위에 오른
영화들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만이 아니라 제가 2009년에 본 영화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개봉연도가 2009년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이점 꼭 참조해주시길.

 

 

 

 

1. [Gran Torino/그란토리노] directed by Clint Eastwood
우경화가 판을 치는 세계, 한국도 예외는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 첨병에 서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야당이 견제의 기능을 완벽하게 상실하고, 민중은 부조리한 정권에 대해 저항하는 방법을 잊고 무기력하게 산개하여 자신들의
공간에서만 불만을 쏟아낼 뿐이다. 견제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의 권력은 당연히 폭주할 수 밖에 없으며,
사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때 국민들은 대부분 파시즘을 지지해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권력의 나팔수들이 '보수의 집결'을 외치며 좌파가 나라를 망쳤다는 개소리를 하는데, 그들이 떠벌리는 보수'란 환타지에 불과하다.
기득권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해버린 '보수'란 말은 그 진정한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수구와 보수가 혼용되고
동의어처럼 회자되는 지금,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로 잘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Grantorino]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영화에선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이 연기한 주인공을 통해 진정한 보수주의자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회의 공권력이 불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약자를 방치할 때, 어떠한 방법으로 분노해야하는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회의 불의에 대해,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기 위해서는 어느 거창한 대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와 이해를 바탕으로 역지사지의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함도 확실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월트는 끝까지 퉁명스럽고 무뚝뚝하며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전형적인 꼰대 영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이 영화를 본 후까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감동으로 남는 것은
그가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이해할 때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자성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거장의 사적인 영화로 기억될 이 걸작은 내게
2009년에 본 최고의 영화로 남게 되었다.

 

 

 

 

 

 

2. [Låt den rätte komma in/Let the Right One In/렛미인] directed by Tomas Alfredson
지금까지 그 장면 하나하나가 머리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냉혹하고 아름다웠던 영화.
사실 이 영화는 뱀파이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단 오히려 인어의 살을 먹으면 불사의 삶을 산다는 일본 전설에 오히려
더 가까운 느낌이다. 불사의 삶을 살게 된 존재가 지닐 수 밖에 없는 한없는 외로움과 시대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그 존재의 운명에
또다시 챗바퀴돌 듯 돌아가는 타인의 운명들을 냉혹하고도 아름다운 화면 위로 보여주고 있다.
어른의 몸을 갖기도 전에 불사를 획득해버린 존재지만 끊임없이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고, 불사의 몸임에도 햇빛에 그 몸을 드러내면 순식간에 타 올라버리는 한없이 유약한 존재.
그런 그녀가 인간과의 소통을 이룬 순간을 관객은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미 그녀의 곁에서 인생을 버린 이의 운명을 보았기 때문일까?
마지막 소년의 웃음에서 한없은 씁쓸함과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올해 가장 강렬했던 영상.

 

 

 

 

 

 

3. [파주] directed by 박찬옥
이 영화의 포스터는 완벽하게 영화 자체를 왜곡하고 오도한다.
포스터에서 말한 형부와 처제와의 불륜 비스므리 한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선균은 학생 운동의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죄의식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이 과연 기독교적 환경의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선배 누나와의 사랑 중에 벌어진 사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나치며 겪는 모든 것에 쉽게 다치고 상처받고 그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사실 지나칠 정도로 죄의식을 겪는 이선균의 역할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지만, 이 영화의 힘은 그러한 설정을
대단히 설득력있게 스토리로 녹아낸다.
그를 사랑하면서도 마냥 사랑할 수 없는 처제 역의 서우 역시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결코 쉽게 과거와 화해할 수 없는 인물들. 그 사이에 온전한 사랑이 자리잡을 틈은 그닥 많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온전하게 사랑할 수 없다.
개인의 사랑 역시 시대와 과거의 흐름 속에 축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울하고 어둡지만 동시에 묘하게 설득력있다.
그리고 진중한 이야기를 촘촘히 축조시키는 박찬옥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서우가 온갖 복잡한 심경을 안고, 철거용역이 애둘러싼 건물로 올라가는 장면을 천천히 고속 화면으로 잡아낸 씬은
작위적인 설정임에도 불구하고(정말로), 스러져가는 인물들의 심경을 역사 속에 대위시킨 느낌이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해 본 가장 인상적인 한국 영화. [박쥐], [머더]가 개인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운데 얻은 가장 큰 수확.
다만, 극장 개봉 2주 후 영화관에서 보려고 했지만 도통 하는 곳이 없거나 교차상영이어서 보지 못한,

가차없는 멀티플렉스의 자본 논리 속에서 대기업의 배급시장 장악이 한국 영화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일부의 목소리가 얼마나 뻘소리인지 확실히 절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4. [Avatar/아바타] directed by James Cameron
일산 CGV 아이맥스 DMR 3D로 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충격 자체였다.
그동안 3D라면 입체감을 획득하는 대신 디테일을 포기했던 이전의 3D와는 완전히 다른, 오히려 영화 화면이
스틸 컷이나 티저, 트레일러를 압도하는 놀라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놀라운 것은 기술적인 요인이 시나리오를 압도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영화에서도 진부한 설정이라지만
시나리오는 제법 안정적이라는 점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다움을 느끼게 한다.
물론, 영화 중 판도라 행성의 나무들이 뿌리를 통해 일종의 네트워크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설정은 매우 신선하고
영화 중에서도 두 번이나 언급되지만 결국 이에 대한 깊이있는 에피소드가 없었다는 점등은 무척 아쉽다.
아마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어느 정도는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으로 영화를
폄하하기엔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의 내용 역시 자본논리에 의한 무차별적 재개발이라는 점에서 재개발로 인한 참사를 겪고, 이 순간에도
기존의 거주주민을 배제한 '그들만을 위한' 재개발이 진행되는 우리들의 입장에선 멀게 느껴질 수 없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비 종족의 모습은 지구상의 원주민들의 모습과도 그닥 다를 바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것 같고,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나비 종족의 네이티리는 인간과 다른 스케일과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대단히 섹시하기까지 한, CG에서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된 생생한 캐릭터를 획득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술의 진일보로 인해 CG는 더욱 발전하게 되어 있고, 3D를 넘어선 4D의 대중화는 당연한 결과일테지만,
기술이 스토리를 집어삼키거나, CG 캐릭터들이 스펙터클에 파묻혀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영화들은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의미는 대단하다고 하겠다.

 

 

 

 

 

5. [(500) Days of Summer/500일의 섬머] directed by Marc Webb
이건 로맨스 영화라기보단 탐의 성장 영화에 가깝다. 사실 사랑이라는 행위는 그 끝이 happy든 sad든 행위자의 인생을 재고하고
자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모두 '성장 영화'라고 할 만하다. 다만, 우리는 언제나 A와 B가 사랑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며
줄다리기하다가 힘겹게 오해와 갈등을 풀고 키스하는 지점에서 엔딩 크레딧을 만나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차치하고 나면 우리에겐 제법 볼만한 영화들이 많은 편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이란 것의 감정의 진실을 가감없이 다 드러내준다. Apatow 감독의 코미디처럼 갈때까지 가거나
관객을 몰아세우진 않지만, 솔직한 주인공들의 마음을 보여주며 '이게 진짜 당신들이 겪는 사랑이야기지' 라고 되뇌는 듯 하다.
그렇지않나? 우린 정말 이렇게 치열하게 사랑해왔고 사람마다의 방식으로 그 끝의 결론에 서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하는
사랑엔 뭐 그리 대단한 이벤트조차 보기 힘들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모두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던 순간들 아니었던가?
사랑을 박제화하지 않고 개인의 인생에서 살아 숨쉬게 할 줄 아는 영화.
바로 이 영화다.

 

 

 

 

 

 

6. [Moon/문] directed by Duncan Jones
이 영화엔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오마쥬가 곁들여져 있다.
그덕에 거티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과 유사하고, 미장센 곳곳에 한글 '사랑'이란 말이 줄창 등장한다.
인간이 누구나 갖고 있는 '추억'의 순간이 진실인지 조작된 거짓인지를 의심하기 시작할 때 그 인간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고 이 영화는 묻는다.
인간의 존재란 시간을 따라 흘러온 추억의 궤적에서 비롯되니 그것이 송두리채 뒤집힌다면 과연 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 재기발랄하기 짝이 없는 저예산 SF 영화는 올해의 발견 중 하나다.
소재만큼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시로우 마사무네의 원작),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원작은 필립 K 딕의
'전기양은 안드로이드를 꿈꾸는가)에서 익히 봐왔던 것들이지만 스릴러의 구조 안에서 인물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배치한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할 영화 중 한 편으로 자리했다.

 

 

 

 

 

7. [까뮈따윈 몰라] directed by 야나기마치 미츠오
2005년작이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봤다. 이런저런 상영회가 있었지만 모두 놓치고 뒤늦게 DVD를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히마츠리]와 [Godspeed You Black Emperor]로 영화광들에게 전설과도 같은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작품으로 2000년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남자 고교생의 노파 살인 사건을 다룬 '지루한 살인자'를 영화화 하려는
일본 어느 대학교 영화동아리가 촬영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다룬 영화다.
시작부터 마치 '롱테이크 독본'을 연상케하는 8분에 이르는 롱테이크를 보여주더니 영화 속엔 프랑소와 트뤼포의 [아델 H 이야기]나
루치오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주인공]에 등장하는 아센바하등등의 인물들을 끌어내 캐릭터에 대위시키는 한편
영화의 스크린은 끊임없이 관객들의 시선 집중과 감정 이입을 거부하듯 밀어낸다.
고전에 대한 풍성한 텍스트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모든 감정과 의도를 하나의 '실험'(=호기심)으로 치부하려는 일본의
현대 젊은이들의 얄팍함, 그리고 기존의 관습과 도덕률의 틀에 갇힌 채 이를 거부하려는 저항 정신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물론 감독은 그런 젊은이들의 얄팍함을 꾸짖으려는 의도가 아님은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쉽게 알 수가 있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듯 우리들은 씨지프처럼 반복되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고 있고, 시스템은 인간을 규정하고 단정짓는다.
이를 깨는 방법은 그것이 설령 무의미한 발버둥이라고 해도 이런 시스템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게 현대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의 섬뜩함에 대한 해석은 보신 분들만의 해석을 위해 모호하게 열린 구조를 취하고 있다

 

 

 

 

 

 

 

8. [District 9/디스트릭트 9] directed by Neill Blomkamp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의 기대작 #1 이었던 [디스트릭트 9].
하필이면 멈춰버린 우주선이 떠있는 상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의 몹쓸 분리정책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우리가 보는 외계인의 모습은 사실 외계인의 모습이라기보단 남아공에서 차별받고 살아왔던 네이티브 아프리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촬영된 장소가 디스트릭트 6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주인공이 외계인의 정체모를 스프레이를 실수로 뿌린 후 그들처럼 환태하는 것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것은, 당연한 심정이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우리들 모두의 숨은 모습들 아닐까.
외계인들의 강제 이주를 위해 서명을 받을 때 그는 사실상 전형적인 착취자의 위치에서 행동하지만, 그의
환태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절박함을 위해 행동을 하며 상대를 이해한다기보단 상대를 배려한다.
결국 현실에선 결코 불가능한 역지사지를 영화는 절박한 심정으로 풍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실에서 수직적 위치나 인종적 위치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환태되며 바뀔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이 슬픈 SF 영화를 통해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가 가정과 모든 인간 사회와 단절되었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추래하고 흉측한 외계인의 몰골로 환태되었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것일까. 두가지 모두 복합적인 요인이겠지만, 이 영화는 은근히 많은 생각할 여지를 관객에게 던져준다.
그 덕분에 두 번을 봤지만... 그래도 난 지금까지 잘 모르겠다.
독특하고 드라마틱한 SF의 수작.



 

 

 

9. [Two Lovers/투 러버] directed by James Gray
로맨스 영화도 진화한다.
Judd Apatow가 화장실 유머 속에서 진솔한 인간의 심리를 끄집어 올려내어 하나의 독특한 코미디 장르를 축조했다면,
그 외의 로맨스 영화도 단순히 '너와 내가 맺어진다'라는 동화 속 엔딩에서 벗어나 '너와 내가 맺어진 그 이후'를 솔직하게 담아낸다.
불안한 심리로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사랑하면서 또 다른 현실적 사랑에 발을 두는 모습은 어찌보면 대단히
속물적이지만 영화 속에선 호아킨 피닉스의 우수어린 놀라운 연기에 힘입어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사랑과 주저앉은 자신의 삶을 도피하기 위한 심정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이상적 사랑 사이에서 고뇌 하는 호아킨 피닉스는
결국 이상과 욕심의 빈 그릇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사랑을 통해 현실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대다수의 삶을 얘기한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전작 [We Own the Night]역시 음습하면서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심리를 화면 속에 잘
구현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의 영화엔 그만의 독특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기대해본다.

 

 

 

 

 

 

10. [Il Y a Longtemps Que Je T'aime/I've Loved You So Long/] directed by Philippe Claudel
프랑스 영화는 지루하다...라고 생각하는 분께 이 드라마를 감히 추천한다.
영화는 15년을 복역하고 사회로 나온 줄리엣(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이 초췌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공항까페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동생 레아(엘사 질버쉬타인)와의 어색한 만남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분명히 드라마이지만 줄리엣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은 약한 스릴러 구조로 남겨 놓았다.
그렇다고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려는 맥거핀을 장치한 것도 아니고, 줄리엣의 현재의 고뇌가 필연적임을
알게하는 장치로서만 스릴러의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개인의 미약한 힘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잔혹한 현실. 그리고 그 위에는 가족과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진정 소중하고 존중되어야함을
이 따스한 영화를 통해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줄리엣의 표정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1. [마츠가네 난사사건] directed by 야마시타 노부히로
이 영화는 2006년작이지만 그간 전혀 보질 못하다가 올해 DVD를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일본 영화는 대부분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 과잉과 기술적인 허술함으로 범벅이 된 경우가 많지만, 이런
천재적인 감독의 영화들이 종종 튀어나오기 때문에 마냥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감독의 전작들인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과 [린다 린다 린다] 역시 사랑스러운 정중동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불온하고 기이하며 어두운 영화다.
블랙코미디의 끝까지 간 듯한 씁쓸하지만 뒤를 치는 이야기, 그리고 실질적인 물리적 에너지는 폭발하지 않아도 도대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너무나 팽팽하게 이어져서 프레임 안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계속 의미 없는 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뭔일이라도 터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영화를 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폭발하는 허무한 에너지.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이후를 그리고 있지만, 시대적 상실감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인간의 어두운 본연의 내면과
사회적 윤리가 강압하는 개인의 불가항력적인 정신분열적 상황을 별 것 아니라는 듯 휘둘러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강박과 허무와 이기적 본능을 도덕적 해이를 가장한 얄궃은 에로티시즘으로 표현한다.

 

 

 

 

 

 

 

12. [미쓰 홍당무] directed by 이경미
이 영화의 유머는 Judd Apatow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한까지 치달아버린다. 이런 방식은 은근한 불안감과 쾌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도대체 어쩌려구'라는 걱정과 함께 그 클라이막스가 내려올 서사구조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관객보다 우월한 전지적 입장에서 캐릭터를 내리 깔아 보는게 아니라 '저 사람들은 원래 저런거다'
라고 내버려두고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것이니.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이나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 모두 서슬퍼런 독설과 삐딱함, 과대망항, 피해망상등 일반인의 잣대로 보면
다분히 '정신분열적'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고, 실제로 그들의 행위는 법적인 처벌을 받을 만한 '범죄'이지만 자의든 타의든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힘에 맞서고 거부하려 하지 않는 '인간다움' 은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사상과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똘레랑스'의 기본이 시작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뭣보다 공효진과 서우의 연기는 최고의 앙상블이다.

 

 

 

 

 

 

13. [Entre Les Murs/the Class/클래스] directed by Laurent Cantet
이 프랑스 영화 속의 선생님들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혀를 끌끌 차는 작금의 우리들 시선에서 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예의를 밥말아먹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엔 아이들의 놀라운 되바라짐에 다소 문화적 충격을 받게 되지만, 곧 놀라게 되는건 이에 대응하는 선생님 들의 태도들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화가 나지만, 그들이 이들에게 대응하는 인내와 체계적인 시스템에 보는 이들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주지하는 바를 우리 나라 관객들이 제대로 목도할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의 교육 시스템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충격은 아이들의 되바라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열풍 속에 재정 규모가 축소되고
지원도 축소되는 현 공교육 시스템을 떠받치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우린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캡쳐한 바로 이 영화의 스크린샷. 이 스크린샷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비록, 선생도 인간인지라 욕을 하게 되고 문제아를 퇴학시키려는 절차를 밟고, 그 절차가 단지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영화는 얘기하지만, 그러한 시스템조차 갖고 있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 속 모습들은 사뭇 충격적이다.
로랑 칸테 감독은 현재 프랑스의 공교육 실태를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연출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잡무에 시달리고, 저소득 아동 급식 지원은 완전히 삭감되고, 거의 미국의 무너진 공교육 이상으로
무너져가는 우리 나라의 공교육 실태를 바라보면 씁쓸한 마음뿐이다.


 

 

 

 

14. [Up/업] directed by Pete Docter, Bob Peterson
한때 지브리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의 궁극이고 종착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봐도 가슴을 때리는 이야기와 넋을 빼는 2D 애니메이션의 세심함에 놀라고 또 놀라던
시절이 있었고,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등을 픽사에서 내놨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감정없는 폴리곤 덩어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게 아닌가...하는 비아냥을 내뱉곤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비아냥이 [몬스터 주식회사]에 들어와선 감탄으로 변하다가 [인크레더블]에선 환희와 경탄으로,
[월-E]와 [라따뚜이]에선 주체하지 못할 진중한 감동으로 변하여 결국 픽사는 제 가슴 속 최고의 애니메이션
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월-E]에서 가슴을 뒤흔드는 격한 감정을, [라따뚜이]에서 마지막에 울리는 진솔한 감동은
어느 영화에서도 느끼기 힘든 놀라운 순간들이었으니.
그런 그들이 내놓은 신작 [up/업]은 기존의 사회라는 시스템에 얽메이고 피폐해진 더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한 판타지다. 영화는 어드벤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 영화는 서글픈 현실에 대한 우렁찬 저항같은 느낌이다.
이 영화 초반 10분.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것도 클라이맥스도 아닌 초반 10분에 가슴이 울컥하는, 지금 다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울컥하는 그 진하디 진한 여운은 이 영화를 내내 지배한다. 그리고 그 초반 10분이 후반의 모든 이야기들을
심지어 논리적으로도 포용하게 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어찌보면 자살 여행일 수 밖에 없는 칼의 모험을 애니메이션다운 발상으로 기발하게 전개시켜 버립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답게 이야기는 탄탄하고 그래픽은 정말 놀라울 지경이며,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그들이 한없이 감사하고 놀라울 뿐이다.

 

 

 

 

 

15. [the Wrestler/레슬러] directed by Darren Aronofsky
이 영화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에반 레이첼 우드(Evan Rachael Wood)와 역시 정말 좋아했던 매리사 토메이(Marisa Tomei)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리사 토메이는 나이가 들수록 원숙한 성적 매력을 점점 드러내는 것 같은데 07년 시드니 루멧(Sidney Lumet) 감독님의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에서의 Philip Seymour Hoffman(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섹스씬은 나름 상당히 충격이었다.-_-;;;
아무튼...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채 쇠락한 레슬러의 모습을 연기한 미키 루크는 자신의 인생 역정의 일기가
그대로 대위되면서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는 영화다.
감독이 감독이니만큼, 평범한 드라마가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영화 속에 보여지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
다다른 이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찬란한 시절엔 내팽겨쳤던 가족과 인정의 소중함을 쇠락한 후에서야 깨닫지만,
인생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동화처럼 많은 기회를 주지도, 관용을 베풀지도 않는다.
올해 드라마는 이처럼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연출과 주조연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가 절절하게 다가왔던 영화.

 

 


 

 

16. [the Hurt Locker/허트 로커] directed by Kathryn Bigelow
전쟁은 마약과도 같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언제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르는, 민간인과 적의 구분이 되지도 않고, 누가 적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신을
온전히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몰려오는 극한의 긴장감.
긴장감이 육체를 지배하고, 그 숨쉬기 힘든 긴장감에 치를 떨고 눈물을 흘리고 좌절하지만, 정작 그 전장의
포성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땅에 발을 내디디면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력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실제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이들의 5%가 자살을 선택하고, 30%이상이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보면,
전쟁이라는 것은 어떤 당위도 불가능한 권력가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모두가 인지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 [Near Dark/죽음의 키스]로 내게 전설이 되었고, [Point Break/폭풍 속으로]로 내게 추앙받았던,
한동안 James Cameron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던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the Hurt Locker]는
전장의 극한의 긴장감과 병사들의 서서히 붕괴되는 심리를 놀랍도록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사실 정말, 이런 영화가 진정한 반전 영화가 아닐까?
엄청난 대부대간의 교전만이 전쟁이 아니라, 나나 우리 아닌 타인을 믿을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폭력이며, 전장이라는 이라크의 실상을 이 영화는 엄청난 긴장감과 함께 전달한다.
탁월한 핸드헬드 카메라가 사용되었으며, 가이 피어스, 랄프 파인즈등의 대배우들의 깜짝 출연을 보는 것도
상당한 재미. 무엇보다 주연진의 놀라운 연기는 더욱 영화에 설득력을 불어 넣어준다.


 

 

 

 

17. [Tropa de Elite/Elite Squad/엘리트 스쿼드] directed by José Padilha
브라질의 범죄 온상 중 한 곳인 97년의 리오데 자네이로의 어느 슬럼가를 통해 순수한 호의와 정의감으로
군경이 된 엘리트가 어떻게 시스템 속에서 희생되어 상대에 대한 이해없이 분노와 적의로만 가득찬 총구를
겨누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영화.
엘리트 스쿼드란 브라질 군경 중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조직한 기동대라고 보면 된다.
이 영화 속에선 군경도, 슬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도, 슬럼가의 갱들도 모두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들이다. 그들이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그 순간까지,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분노는 역시
분노로 물려질 뿐이고, 반목이 계속 될 수록 그들이 타파해야할 대상에서 '시스템'은 거세되고 분노와 적의만 타오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겨누는 총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금 2009년을 마감하며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싸워야할 대상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비아파트 지역은 고급 주택지역을 제외하면 점차 슬럼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도시들이 이태리의 남부 지역이나, 미국의 슬럼, 멕시코의 슬럼, 브라질의 슬럼가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절대로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체제의 오만과 과욕에서 오게 되는 망종의 결과일테지만 많은 사람들은 구조적 부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다가도
슬럼가의 사람들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구분짓고 구역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점점더 기득권의 정치는 쉬워지고
편리해질 뿐이고.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상대에 대한 이해 자체를 불식시키고 분노를 키워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금도 가감없는 건조한 편집과 멋부리지 않는 도도하고 솔직한 시선으로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편하지만 그 광경을 끝까지 목도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마지막 총구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먹먹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 같다.


 

 

 

 

18. [the Blind Side/블라인드 사이드] directed by John Lee Hancock
우린 흔히 '권선징악'과 '고진감래'의 결실이 맺어지는 영화를 진부한 '헐리웃 엔딩'이라고 말을 한다.
영화란 영화마다 반복되는 결말에 식상한 영화팬들이 '헐리웃 엔딩'을 비아냥거린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는
그런 '헐리웃 엔딩'의 법칙이 그닥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진부하다는 '헐리웃 엔딩'이 실상 현실세계에선 무척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삭막하기
짝이 없는 우리 시대를 자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그 진부한 '헐리웃 엔딩'의 가장 대표적인 2009년의 영화 중 한 편이 바로 [the Blind Side]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나에게 보통 이상의 감동을 주고 흐뭇하게 한 이유는, 이 영화가 실화에 근거했다는 사실과,
그간의 여러 이야기들처럼 갈등 구조가 대단히 상큼하고 뒷끝없이 풀려 나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여러 억지스러운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캔디 인생을 방해하는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선 그닥 존재하지도 않고,
탄탄한 유대 관계가 헝클어질 위기의 갈등도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벗어나며 억지 드라마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입맛을 비웃는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스토리의 힘을 보여주고 미덕을 찾는다.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시스템에서의 빈부의 차이를 인정하되, 가진 자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슴깊이 체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정말 멋하나 부리지않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연출의 힘은 [Rookie/루키]때보다 더 발전한 것 같다.
이 영화 속 가족은 영화로 미화된 부분이 있을 지 모르지만, 엔딩 부분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이어지는 실제 사진들을 보노라면
작은 행동에도 큰 용기가 필요함을,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보단 양심이 가는 대로 먼저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결실을 가져오는지 가슴떨리는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올해 본 가장 기분좋은 드라마.

 

 

 

 

 

 

19. [Revolutionary Road/레볼루셔너리 로드] directed by Sam Mendes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보다 나은 이상을 갈망한다.
그것이 현실 불가능하든, 아니면 조금만 마음의 결심을 내리면 가능하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갈구하는
이상으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스스로의 비루한 현실을 부정하지만 정작 스스로 가진 모든 것(그게 비록 작은 것이라도)을 버려야한다면
누구라도 쉽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포기지도 못한다.
샘 멘데스의 이 잔혹한 드라마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비망록이다.
인간이 인간일수 있으려면 필요한 것은 정말 '좋은 직장'과 '좋은 집', '화목한 가정'일까?
어찌보면 이 영화는 1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의 징글징글한 애증의 관계를 풀어놓은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을 시스템에 동기시키고 개인의 이상과 꿈이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린 존재가, 온전한 존재일 수 없음을,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부터의 저항이 죽음에 이르는 길 뿐이라는 허무하고 암울한 현실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후폭풍이 만만치않다.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부부는 우리들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가정에 구속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때론 다른 이성과 섹스를 하고, 그래도 가정만큼은 지켜야한다고
생각하고,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결코 이룰 수 없는 현실도피를 꿈꾼다.
그게 이뤄지지 않은 지점에서 선택하게 되는 결정.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고,
자신을 외면한 이에 대한 가장 잔혹한 복수일 수 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내용이다. 그래서 케이트 윈슬렛의 마지막 심경을 알면서도 가슴이 저리다.

 

 

 

 

20. [the Cove/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 directed by Louie Psihoyos
일본의 타이지에서 비밀리에 학살되는 돌고래들에 관한 잔혹한 보고서인 이 다큐멘터리는 돌고래와 인간과의 교감을 주제로 한 60년대
미국의 인기 TV 씨리즈였던 'Flipper(플리퍼)'에서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던 리차드 오베리(Richard O'Barry)가 함께 출연하던
돌고래 캐시의 죽음을 동기로 돌고래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타이지의 돌고래 학살에 대한 진실을 대중에 폭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 다큐는 리챠드의 말처럼 단순히 일본의 비인간적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진 이기심과
끝없는 욕망에 대한 인간다움의 저항에 관한 이야기다.
수많은 동물들이 도살되어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즈음, 왜 돌고래를 학살하는 것이 비인간적인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어쩌면 인간 이상의 지성과 자아를 가졌을지도 모를 돌고래에 대한
무차별적 잔혹한 학살을 통해 절제를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눈물나도록 충격적으로 담았다.
영화 도중에도 나오듯, 문제가 되는 사안을 정부나 기구가 해결해주길 바래선 아무것도 해결이 나질 않는다는,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열망과 인식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에선 잔혹한
그릇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뛰어든 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여진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내 작은 치졸한 조그마한 양심이 떨리기도 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식욕을 위해 끊임없이 거대 사육을 통해
환경을 말살시키고 먹이사슬을 무너뜨리는 행위에 나 하나도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고 절제를 모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 스스로라도 조금씩 해방되어야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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