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틸샷은 직접 캡쳐한 이미지입니다만, 다음 영화는 대중 공개된 스틸샷 중 골라서 사용했습니다.
[Avatar/아바타], [미쓰 홍당무], [김씨표류기], [마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없다고 지나치게 뭐라 하시는 분은 없으셨음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기준이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2009년에 본 영화 중 50편을 뽑아 봤습니다.
2009년에 본 영화 편수는 정확히 172편입니다. 유난히 극장에서 본 영화들이 많았고, 2008년에 그만둔 DVD
구입도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지만 이어진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매해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 순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위이며, 아울러 이 순위에 오른
영화들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만이 아니라 제가 2009년에 본 영화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개봉연도가 2009년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이점 꼭 참조해주시길

 

 

 

 

 

 

 

21. [the International/인터내셔널] directed by Tom Tykwer
감독이 바로 Tom Tykwer 이고 주연도 클라이브 오웬과 나오미 왓츠(!!).
Tom Tykwer 감독의 영화 중 케이트 블랜쳇과 지오바니 리비시가 나온 [Heaven]을 aipharos님은 너무 좋아한다.
국제 금융의 위선과 비도덕을 정면으로 파고 들어간 이 영화는 사실 1990년의 파키스탄의 BCCI 스캔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지만,
사실 그런 모티브를 따지는게 오히려 국제 금융의 더러운 모습에 대한 사실적 혐의를 비켜가는 꼴이 된다.
이러한 사실이 지금까지 비일비재하게 암암리에 진행되는 것은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테니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IBBC라는 은행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알다시피 룩셈부르크는 비관세 지역이 많고
조세 천국으로 돈세탁이 이뤄지는 곳이며, 게다가 클리어스트림이라는 정치, 사기 스캔들로 유명한 청산소가 있는 곳이다.
수많은 역외펀드들이 이런 조세 천국에 적을 두고 금융 수사를 미로에 빠뜨리는 곳. 그 중 한 곳이 바로 룩셈부르크다.
현대의 자본 이동은 사실 데이터의 이동, 전자결재가 거의 대부분이며 유가증권과 실물이 거래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근거리 소매행위에서만이다.
그리고 이런 IT의 비약적 발전은 세계화의 장치와 함께 자본의 이동을 더욱더 교묘하게 은폐한다.
하지만 어차피 자본이란 제도적 장치에 의해 한 번은 걸러지게 되어 있는데, 그게 바로 벨기에나 룩셈부르크등에 있는 유명 청산소다.
이런 영화를 통해 금융계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영화 속의 허구로서의 음모론쯤으로 치부되는경우도 있을 듯 한데,
최근엔 인식의 환기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서 이런 일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많은 분들이 인지하시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국제금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살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총격전도 인상적이다.(물론 세트이고, 이 총격적인 프리뷰 이후 액센트가 없다는 평에
의해 추가되었다고 한다) 현실적이고 처절한 총격전은 자칫 밋밋할 수 있었던 영화에 상당히 생기를 불어넣고,
이후의 주인공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비록 영화의 끝에서 영화로서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하지만, 이런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한 충분한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
구겐하임씬에서 초반에 등장하는 그 인상적인 비디오 아트는 매우 유명한 독일 작가인 Julian Rosenfeldt의
작품이다. 제목까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Stunned Man'이 아닐까한다.
이런 세트를 이 장면을 위해 만든 걸 보면, Tom Tykwer의 예술에 대한 애정과 Terry Gilliam감독스러운 장인 정신도 엿보인다.
그리고 우연인지 클라이브 오웬은 이렇듯 미술작품들이 강렬한 오브제로 활용되는 영화에 벌써 두번째 출연이다.
첫번째는 바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걸작 [Children of Men].
이 영화에서도 다비드상, 피카소의 'Guernica', 심지어 Pink Floyd의 [Animal]음반 커버, 거기에다가
FPS 걸작인 게임 'Half-Life'의 세계관이 녹아있지 않았나.

 

 

 

 

 

 

22. [Kirschblüten - Hanami/Cherry Blossoms/사랑 후에 남는 것들] directed by Doris Dörrie
원제의 의미는 '벚꽃 꽃구경'의 의미.
어느 날 평생을 함께 한 반려자와 이별해야할 시간을 알게 된다면 그 반려자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얼굴도 못보는 자식을 만나고, 반려자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할 것 같다.
그런 시간이 되도록 빨리 오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만약 온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생에서의 시간을 정리한다는 것이 아쉽다기보다는 남게되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클 것이고.
트루디는 부토 무용수가 되고 싶어했지만 남편 루디의 반대로 그 꿈을 접고 내조일에만 전념했다.
루디는 늘 그렇듯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트루디를 사랑했고. 하지만 트루디가 떠나고 난 후 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자신이 집 안에 트루디를 가둬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녀의 생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트루디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일본에 모든 현금을 다 뽑아서 건너간다. 물론 그곳엔 트루디가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칼'도 있었고.
하지만 다 커버린 아들 딸들은 요즘의 우리나라처럼 부모들을 거의 보지도 않을 뿐더러 귀찮아하는 존재이고,
편치않은 아들집에서의 생활에도 루디는 부인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일본의 모습을 하나하나 가슴과 눈에 담는다.
그러다가 루디는 공원에서 부토 무용을 추는 노숙자인 18세의 여성 '유'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다가 aipharos 님은 여러차례 눈물을 흘렸다.
트루디가 죽기 전 루디와 밤에 호텔방에서 추는 부토무용은 가슴을 묵직하게 한다.
자식들에게서 철저히 고립된 루디의 처연한 시선, 와이프의 옷을 속에 입은채 벚꽃과 정경을 보여주는 루디의 모습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 영화가 정말 둔중한 울림을 주는 건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아니다.
죽음 이후에 떠나간 이의 진정한 바램을 읽고 그것을 이루게 해주려는 진심이 묻어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가슴을 울리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부토(舞蹈) 무용은 영화의 주제와 아주 잘 어울린다.
부토라는 것이 삶의 그림자, 죽음의 세계를 다루는 춤이며, 죽음에서 몸부림치는 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니까.
그 어렵고 괴로운 부토를 '무섭고 기괴하고 파괴적'이라고 느끼던 루디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진심으로 이해하는 입장으로 다가가게 되고 루디의 소원을 풀어주는 마지막 부토 무용을 준비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드러난 도리스 되리의 근작으로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다를 수 있으나
평생을 함께 한 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성찰하는 영화로 추천하는 영화다.

 

 

 

 

 

23.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directed by 김지운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달콤한 인생]이 개봉되었을 때 이 영화를 보고 난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다 나오는구나'하고 엄청나게
반색했던 기억이 있다. 이전 김지운 감독의 영화, 특히 데뷔작에서의 그 아쉬움이 조금씩 작품이 거듭될 수록 덜어지더니
[달콤한 인생]의 그 놀라운 느와르의 미장센에서 진정한 한국 영화의 진보를 맛볼 수 있었다. 당연히 그 이후로 내게 김지운 감독은
가장 기대하는 감독 중 한 명이 되었고. 숱한 화제 속에 개봉했던 [놈놈놈]에 대한 관객들의 설왕설래는 여러가지였지만, 이 영화를 본 나는
평단과 관객의 평가보다 훨씬 높게 이 영화를 즐겁게 봤고 앞으로도 쭈욱 김지운의 영화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서부극의 구조를 만주로 끌고온 일종의 만주웨스턴. 활극이 활극답기 위해서 보여줘야 하는 모든 요소를 밸런스가 무너지기 십상인
3인의 건맨들을 기가막히게 조화롭게 가지고 놀면서 액션 활극이 보여줘야하는 운동성과 적절한 과장을 이토록 잘 살려낼 수 있는 감독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하는 믿음을 심어준다.
그의 차기작이 그답게도 끌로드 소떼(Claude Sautet) 감독의 71년 걸작 [Max et les Ferailleurs/막스와 고철장수]라는 것도 박수를 치게 한다.
얼마나 김지운 감독의 장르적 어법과 잘 맞아 떨어지는 영화인가.
현재 캐스팅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길이 없으나, 그의 바램대로 클라이브 오웬과 시에나 밀러가 캐스팅 된다면 그보다 멋진 일도 없을 듯.

 

 

 

 

 

 

24. [Le Scaphandre et Le Papillon/잠수종과 나비] directed by Julian Schnabel
영화의 이미지가 버려진 육체에 의미있는 체류가 된 장 도미니크 보비(이하 '장 도')의 심리적 자유의 일탈을
아주 잘 드러낸다. 그 유명한 패션계의 막강 파워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
어느 날 갑자기 뇌일혈 발작이 온 후 전신마비가 되고, 그는 왼쪽 눈으로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왼쪽 눈만으로 의사 소통을 하여 자신의 책을 내고 책이 발간된 지 10일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는 이젠 다들 아시다시피 실화다.
자신의 육체를 조금도 어찌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장 도는 [Mar Adentro/Sea Inside]의 주인공 마농 샘프레도
(하비에르 바르뎀)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다. 마농 샘프레도는 적어도 말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일탈은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장 도는 오로지 오른쪽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는 것만으로 모든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마농 샘프레도가 죽을 권리를 위해 저항했다면, 장 도는 책을 통해 세상과 마지막까지 소통하고
흔적을 남기려 했다.
그가 치료사와 이전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상상은 자신이 인간이기 위해 남아있는 모습을 부여잡고 그려낸 그의
노력의 반영이다. 그에겐 그러한 상상이 자유를 위한 갈망이라기보다는 본능적 능력을 모두 거세당한 인간이지만
인간이기 힘든 자신에 대한 아름다운 존중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그의 삶에 대한 경외감과 무너져버린 살아 온 궤적들에 대한 반성은 줄리앙 슈나벨이라는
작가에 의해 너무나 구체적으로 스크린으로 투영된다.
보고 난 후 감동만큼의 이미지가 남아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장 도미니크 보비의 인생을 안타까와만 하지 않게
되는 걸 보면, 이 영화의 진정성에 공감할 수 있다.



 

 

 

 

25. [Zombieland/좀비랜드] directed by Ruben Fleischer
좀비 영화는 진화 중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이 다분히 사회적/정치적 메타포로 들고 나왔던 좀비 영화는 최근들어 자기복제를 멈추고
점점 더 진화하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조여오는 압박의 공포는 덜해졌지만, 보다 빠르고 강력한 좀비들은
더욱더 강력하게 붕괴된 가정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풍자하며, 루빈 플레처 감독의 이 영민한 좀비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말처럼, 좀비가 세상을 지배하던 때나 이전이나 주인공은 외톨이였고, 주인공은 언제나 주변인들이
좀비와 같았다는. 그래서 주인공은 이 좀비들이 지배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말.
나와 타인의 관계를 발견하고 어긋난 개개인의 가치관 속에서 불신과 탐욕으로 찌든 관계에서 조금씩 서로를
인정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진정한 '친밀감'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사실 보고나면 이건 미국판 [가족의 탄생]이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전혀 관계없던 이들끼리 만나 서로의
결속을 맺어가는 과정이 어찌보면 딱... [가족의 탄생]이지 않나.
이 영화는 분명히 속편이 나올 것 같은데 정말 기대가 된다.
너무나 즐겁고도 의미심장하게 본 좀비 영화 중 한 편.

 

 

 

 

 

 

26. [Estômago/에스토마고] directed by Marcos Jorge
이 영화는 요리에 대한 영화라기보단 인간의 본능에 대한 씁쓸한 비망록과 같다.
종종 식욕과 성욕, 살인욕구를 드러낸 영화들이 있었듯이 이 세가지는 겨우 한끝 차이인 인간의 본능일 뿐이다.
이 잘빠진 브라질산 이야기는 피터 그리너웨이처럼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거나 전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이나 스탠리 투치와 캠벨 스콧의 [빅 나잇]처럼 음식을 통한 흥미로운
인간과 인간의 교감을 그리지도 않는다. 보다 더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식욕과 성욕, 그리고 그 한끝 차이인 살인의 드라이브가 능글맞게 넘나들고 시간을 넘나드는 구조로 진행되며
감옥에서의 모습과 병치되면서 인간의 본능과 정치적인 권력욕과도 대위되곤 한다.
미식과 성욕을 만족시킨 주인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만둘까? 그럴리가 없지 않나.
영화 그 이후의 시나리오를 관객에게 넘겨주면서 그제서야 이 영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게 된다.

 

 

 

 

 

 

27. [the Reader/리더] directed by Stephen Daldry
시대 속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들이야 어디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과오 중 하나라는 2차대전에서의 유태인 학살은 수많은 이들에게 환경에 철저히 지배
당하는 양심의 허무함을 고발했다.
[리더]는 그 수많은 전범 중에서 무지함으로 그 과오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일련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생명의 존속을 결정했는지조차 모른채 살아온 한 여성을 이야기한다.
같은 영화에서 똑같은 인물들로 두개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이 영화는, 첫번째 이야기로 글을 읽어주는
주인공 미하엘과 한나와의 섹스와 책읽어주기에 대해 탐닉한다. 처음 만나면 섹스에 열중하던 이들은 어느
틈엔가 섹스보다는 옷을 벗은 채 미하엘이 책을 읽어주는 경우가 더 많았고, 책을 읽어주면 읽어줄 수록 어딘가
한나의 정서적 불안감은 책에 몰입하는 것과 비례하여 가중되는 듯 하다. 그리곤 그녀는 사라진다. 수많은
성장통을 미하엘에게 잔뜩 남겨둔 채.
시간이 흐른 이후의 이야기는 이미 법대생이 된 미하엘과 전범 재판장에 끌려온 한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한나가 전범이 된 데에는 절대적으로 사적인, 글을 읽지 못한다는 수치심에서 그 사실을 감추려는 과정에서
발발한 경우가 많다. 이는 물론 절대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과오지만,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아는 미하엘,
그녀와 사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던(그것도 육체적인) 미하엘의 입장에선 또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도록
한다. 법정의 모든 이들이 한나를 바라보는 시선 아래로 미하엘과 한나는 자신들만의 '비밀'을 갖고 고독한 마주 보기를 하는 샘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책 읽어주는' 전반부를 비중있게 처리했다. 스티븐 달드리의 전통적이면서도 서사적인
연출, 정공법적인 앵글은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가꿔주며, 원작소설을 충실히 각색한 힘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28. [Watchmen/왓치멘] directed by Zack Snyder
원작 그래픽 노블을 읽고 영화를 접한 느낌은 놀라우리만치 원작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 되기도, 동시에 이 영화는 내 생각만큼 회자되지 않는 '평가절하'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Zack Snyder 감독으로선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보여줬다고 생각해본다.
그의 장편 데뷔작 [Dawn of the Dead] 리메이크에선 속도감을 맘대로 휘두르는 재능에 놀랐었고, [300]에선 비록 누가봐도 부시 체제의
침략 본성을 옹호하는 저열한 의도를 드러냈다고는 해도, 폭력과 성애가 맞닥은 지점에서 육체와 육체가 맞부딪히는 강렬한 영상을
감각적으로 선보인 그의 재능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과연 [왓치멘]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로어쉐크'를
어떻게 표현할 지 심히 걱정이 되긴 했는데, 걱정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잭 스나이더는 그냥 원작을 스크린으로 copy to paste 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손가락으로 넘기는 그래픽 노블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대한 화면의 그림책으로 바뀐 사실에 의아해할 수도 있고,
연출가의 해석이 거의 담기지 않은 이 영화를 과연 온전한 '작품'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의구심과는 또 별개로 고작 2권이지만 엄청나게 복잡하고 말이 많은, 도대체 한 편짜리 영화로 영화화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의구심을 싹 날려버릴 정도로 완벽하게 다이제스트본을 만들어낸 잭 스나이더의 역량은 분명 재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능력 덕분에 종이 안에서 묻혀버린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지 않았나.
[아바타]를 본 지금 생각하기로는, 이 영화를 DMR 3D로 봤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해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IMAX-정확히 말하면 DMR 3D-로 상영된 바 있다) 나와 aipharos님은 관교동 CGV 유로

클래스에서 디지털로 보는 것에 그쳤는데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DMR-3D로 봤다면 엄청나게 놀라운 비주얼을

더욱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실크 스펙터로 열연한 Malin Ackerman의 그 놀라운 몸매도 다시 접할 수 있었을...-_-;;;


 

 

 

 

 

29. [Synecdoche New York/시넥더키 뉴욕] directed by Charlie Kaufman
찰리 카우프먼의 이 괴이한 데뷔작을 끝까지 보고나면 형언하기 힘든 불확실성의 감정에 사로잡혀 버린다.
아주 뿌연 안개 속을 걸어가다가 저 멀리 어딘가로부터 새어나온 빛을 따라 천천히 걷는, 하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빛을 따라 마냥 걷는 느낌.
바로 그런 느낌의, 한마디로 '괴작'이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중반부터는 사실상 완전히 연극의 포멧을 빌어 현실과 주인공의 심리,
그의 가공의 경계들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들. 그리고 헷갈리기만 하는 관계의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그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인생과 이야기를 걸고 초현실적인 관계 속에 역설적으로 현실을 인정하게 하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전달받게 된다.
마지막에 병원에서 일어나 해체된 현실이 재현된 도시를 걸어가다가 벤치에 앉아 맞이하는 엔딩은 정말이지
강렬하고도 놀라운 여운을 남겨준다.
어줍잖은 글 따위로 리뷰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영화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난해한 영화라서
순위를 낮췄지만 그 의미심장함만을 따진다면 올해 본 영화 중 TOP 10 안에도 들 영화.


 

 

 

 

30. [La Sconosciuta/Unknown Woman/언노운 우먼] directed by Giuseppe Tornatore
2006년작.
드라마를 스릴러로 녹여내는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내공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영화.
자극적이고도 불온한 오프닝에 이어 관객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주인공 이레나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좇아가며,
난데없이 긴장을 조성하는 급박한 장면들과 범죄의 장면에 몰입되게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따라가게 되는 이레나의 과거에서 맞닥뜨린 안타까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관객들은
이레나의 편에 서서 범죄를 묘하게 이해하고 옹호하는 동질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레나의 페이드 백을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그녀의 모진 삶보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레나라는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폭압적인 남성 중심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상처를 안고 키우고 보듬아 안고 치유까지 하는 것은 절대로 남자들의 몫이 아니니까.


 

 

 

 

31. [Die Welle/디 벨레] directed by Dennis Gansel
빈부격차의 심화와 경제위축으로 인한 고용감소는 역사적으로 파시즘을 불러왔다.
파시즘이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메커니즘으로 쉽게 군중의 심리에 독버섯처럼 퍼진다는 사실을
실화에 근거한 이 영화가 보여준다.
파시즘에 관한 강의를 맡은 독일의 한 고등학교 선생이 아이들에게 파시즘과 독재주의를 체험하도록 그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비판의식없는 일체화를 유도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이러한 파시즘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어
선생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
어찌보면 훌륭한 교육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국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라이너 벵어 교사가
파시즘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시즘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파시즘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집단의 폭력을 자양분으로 독버섯처럼 자라는 법이니까.
비록 영화 자체는 설정의 축약과 비약이 있어 상황을 온전히 따라가기엔 문제가 있지만, 영화 자체는 파시즘이
기초하는 폭력과 욕망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파시즘의 중심부에서 역사를 불구덩이로 집어던진 그 중심인 독일에서 있었던 사실이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영화라서 더욱 설득력있었던 영화.

 

 

 

 

 

32. [김씨표류기] directed by 이해준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로 신선한 충격을 준 이해준 감독의 작품.
안타깝게도 흥행 성적은 재난 수준이었다지만, 이 영화 자체의 정서와 훅은 제법 만만치 않다.
이해준 감독의 영화는 진일보된 일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대한 고찰은 매우
디테일한 편이고, 캐릭터의 감성적 이미지도 확실히 구축한다. 덕분에 이 영화는 분명히 현실적으로 그닥
설득력없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캐릭터들을 응원하게 되고, 그들의 마지막 조우를 가슴으로부터 박수를 보내게 된다.
집 밖으로 절대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와 외부인의 만남은 [Tokyo/도쿄]에서의 봉준호 감독의 에피소드
에서도 등장한 바 있지만, [도쿄]에서 히키코모리가 집밖으로 나오는 과정은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르다.
공감가는 절박한 심정에서 자신이 지켜온 모든 것을 다 버리지 못하고 가장 소박한 외출을 감행하는 정려원의
질주 역시 무척 가슴에 와닿는데, 과연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세상에 겨우 한발자욱을 뗀 그들은 과연 행복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부분에서 정처없이 달리는 버스의 모습이 더욱 안스러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33. [おくりびと/Departures/굿' 바이] directed by 瀧田洋二郞(타키타요지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독특한 인디적 감성을 보여주는 일본의 작은 영화들은 알게모르게 상당히 많은 이들에게
어필해왔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일본 영화에 상당한 지지를 보내는 편이지만, 사실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키치가 지나친 영화가 범람하는 일본 영화씬을 보면 질릴 때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뛰어난 영화들 몇 편이 설득력을 갖고 대중을 찾기 때문에 그 매력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 영화 [굿'바이]는 잔잔함 속에 소소한 감동을 주지하는 여느 일본 영화와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군데군데
인생의 해학을 풀어낸 유머가 영리하고, 지나친 감정 과잉이 되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구태
역시 최소화해서 누가 보더라도 즐겁게 감동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인간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장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교감을 이루고, 스스로를 찾는 지극히 보편적
교훈이 담긴 영화지만 영화적 재미도 만만치 않다.


 

 

 

 

34. [Drag Me to Hell/드래그 미 투 헬] directed by Sam Raimi
이미 스펙터클의 중심부에 안착한 거장이 과연 초심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난
무척 궁금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얘기할 것은 당연히 코엔 형제와 함께 작업했던 [the Evil Dead/이블 데드]
일 수 밖에 없다. 초심이라고 하면, 그 사지절단의 난리발광 속에서도 빛나는 유머를 잃지 않고 초저예산으로도
엄청난 속도감을 통해 광속으로 폭주하는 그 영화를 빼놓을 순 없지 않나.
바로 이 영화는 그 초심의 기억에 가장 가까운 그의 진짜 영화다.
의도적으로 존재감없는 저스틴 롱을 주인공의 남친으로 배치한 것부터 이 영화는 전적으로 주인공 크리스틴
브라운(엘리슨 로만)의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그닥 저주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엉뚱하게도 집시
노인의 저주를 받아 죽을 고생을 하는 그녀의 짧은 시간을 밀착해서 보여주면서 놀라운 설득력, 거기에 상당한
서스펜스를 광속의 속도감으로 미친 듯이 밀고 나간다.
이러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필하려면 크리스틴 브라운과 그 주변부에 대한 현실적인 설정들이 필수적인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주변부 설정은 대단히 정밀하고 사실적이다.
이 영화에 사지절단따위는 나오지도 않으면서도 그의 초기작과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샘 레이미 감독이
추구했던 속도감과 면밀한 캐릭터의 입체적인 구현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35. [Le Silence de Lorna/로나의 침묵] directed by Jean-Pierre Dardenne, Luc Dardenne
우린 유럽의 역사를 얄팍하게나마 배우면서 그들이 중시하는 인본주의를 어떻게 획득하고 차지했는지 조금은
알고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이룩한 것이 아니라 피를 흘려가며 쟁취한 민주주의의고 민주주의 근본은 바로
인본주의라는 사실 정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하다보니(이렇게 무책임하게 말하기 곤란하지만) 자본주의가 마치 민주주의인양 오도된 현실에서,
수없이 반복된 프로파갠다로 이젠 그 유럽대륙에서조차 자본주의의 더러움에 인본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름의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 역시 천박한 자본주의에 더럽혀진 인본주의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알바니아에서 벨기에의 국적을 획득하려고 위장결혼을 하고, 손쉽게 이혼하기 위해
약쟁이를 고른 로나가 오히려 연민에 빠지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지 못했을 때 손에 쥔 경제적 안정은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는 지극히 교훈적이지만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강렬한 이 메시지가 이 영화 속에
진심을 갖고 생명력을 움켜쥐고 있다.
자본에 대한 양심의 침묵, 그 터널을 빠져나와 로나가 침묵을 깨려는 그 순간, 이 영화는 일말의 동정도 없이
로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하거나, 침묵을 깨려는 이들에게 다가온 암울한 결말이 바로 현실이라고
다르덴 형제는 얘기한다.
다르덴 형제 특유의 롱테이크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하게 되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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