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틸샷은 직접 캡쳐한 이미지입니다만, 다음 영화는 공개된 스틸샷 중 골라서 사용했습니다.
[Avatar/아바타], [미쓰 홍당무], [김씨표류기], [마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없다고 지나치게 뭐라 하시는 분은 없으셨음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기준이에요.

 

 

 

올해도 어김없이 2009년에 본 영화 중 50편을 뽑아 봤습니다.
2009년에 본 영화 편수는 정확히 172편입니다. 유난히 극장에서 본 영화들이 많았고, 2008년에 그만둔 DVD
구입도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지만 이어진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매해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 순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순위이며, 아울러 이 순위에 오른
영화들은 2009년에 개봉한 영화만이 아니라 제가 2009년에 본 영화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개봉연도가 2009년이 아닌 경우도 있으니 이점 꼭 참조해주시길.

 

 

 

 

36. [Revanche/보복] directed by Götz Spielmann
유럽의 영화들은 헐리웃 영화들보다 호흡이 길다.
배역의 심리적 교감을 요란하지 않게 바라보고 밀착하여 따라다닌다.
그덕에 영화는 늘 사유의 여지를 관객에게 제공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의 관계란 건 잔인하리만치 얄궃기도 하다는 걸 영화 속의 네 명의 캐릭터를 통해 보게 된다.
사건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감상자의 전지적 입장이라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토록 괴로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허무한 죽음, 예정된 죽음, 그리고 엇갈린 관계, 인간의 죄의식, 그리고 보복과 용서의 기로에 선 주인공의
모습들을 절제된 구조 안에 이토록 잘 쌓아올린 축조물을 보는 일이란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올해 본 가장 뛰어난 인간의 심리와 죄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스릴러의 구조를 통해 영화적 재미까지 획득한 보기 드문 영화 중 하나.

 

 

 

 

 

37. [Inglourious Basterds/바스타즈 거친 녀석들] directed by Quentin Tarantino
늘 할 말이 많아지는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따지고보면 처음부터 그의 영화는 말이 많았고, 캐릭터들이 대사를 할 때도 대단히 정적인 가운데 긴장감을 풀어 버리거나,
또는 반대로 극도로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을 얄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감독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선 이전작 [Death Proof/데스 프루프]에서 보여줬던 형식미의 확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러닝타임은 150여분에 이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어디 한 둘이 아니다만 영화는 산만하지 않고 이리저리 난 길을 잘도 찾아가는 느낌이다.
타란티노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으응?'하는 느낌이었으나 생각해보면
잔혹한 살육이 합법적으로 이뤄진 이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전쟁'이라는 소재가 타란티노와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보니 '왜 이제서야 전쟁 영화를 소재로 만들었지?'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되긴 했다.
아무튼, 다양한 사적인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을 배치하는 초반부는 대사의 한끝을 보여주며 상당히 치밀하게 진행되는데
실존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관객들의 막연한 전지자의 입장을 통쾌하게 배신하는 후반부 절정은 탁월한 후련함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런 전범들이 그따위로 자신들 발로 종말을 찾아 갔던 사실에 대한 역사적 응징의 느낌도 드니까.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다보면 항상 느끼지만, 이 이야기꾼은 이제 짜여진 틀없이 부유하던 자신의 스타일을
단단히 자신만의 형식미로 구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의 재기는 여전하되 조금씩 이야기를 '잘 꾸려나가는' 재담꾼으로의 면모를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고 할까.
덕분에 그의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최소한 한 번 보고 라이브러리에 쳐박아놓아버리는 영화에서는 많이 벗어나지 않았을까?

 

 

 

 

 

38. [the Boat that Rocked/락앤롤 보트] directed by Richard Curtis
난 [러브 액추얼리]가 그냥 그랬다. 그나마 좋아하는 장면은 공항에서 만나 포옹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페이드 인-아웃으로 감성적으로 편집하고 그위로 너레이션이 흐르는 장면 뿐이었던 것 같다.
그런 리차드 커티스가 60년대 영국의 전설적인 해적 방송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니 조금은 반신반의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많은 인물들이 떼로 등장하고 말이지.
하지만 보고나니 이 영화는 지금의 한국에 완벽하게 딱 맞아 떨어지는 그야말로 완전 맞춤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끼리 뭘하든 잘했다고 지랄하고 자기들끼리 박수치고 나팔부는 같잖은 정부의 언론 탄압과 사상 통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저항이
이 영화엔 그대로 들어가 있다. 그게 비록 60년대의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우린 60년대의 영국과 다를 바도 없다는거다. 물론 이게 지금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미디어의 80%를 장악하고 뻘짓하는 베를루스코니나, FOX TV를 필두로 뻘짓 다하고 조작 뉴스를 떵떵 내보내는 미국도 그렇지 않나.
저항조차 시들해진 이 시대에 60년대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영화적 설정이지만 난 오히려 그 장면이 너무나 좋았다.
그 이유는 그 모습이 폭압과 통제에 저항하던 이들이 수렁에 몰렸을 때 그들을 지켜준 다수의 국민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우리 모습이 들어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지.

 

 

 

 

 

39. [마더] directed by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나 역시 보통 이상이었지만,
막상 뚜껑열린 그의 차기작은 아쉽게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늘 탄탄한 드라마 위에 상업적인 히트 포인트를 적절히 배치하는 영민한 감독이었던 그의 [마더]는 지나치리만치
복선에 의존하고 탄탄하려고 애쓰는 시나리오 덕에 보는 내내 가슴 한구석에 물음표를 찍게 되더라.
영화의 언더텍스트를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넷 상에 떠돌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모성'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성애'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그 덕분에 영화는 모성의 질긴 정과 함께 동시에 성애적 긴장감을 모두 획득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워낙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탓에 영화적 긴장감은 덜하고 처음부터 전력질주한 마라톤 선수마냥
뒤로 갈수록 에너지가 방전되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이란 이유로 부당하게 폄하된 영화일 수도 있고...

 

 

 

 

 

40. [Star Trek Beginning/스타트렉 비기닝] directed by J.J. Abrams
스타트랙.
제목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TV 시리즈로 미국에선 거의 [스타워즈]에 비견될 만한
문화적 파급력을 지닌 이 장편의 시리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미국의 역사적 사회상과 결부된
팬덤이 부재한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극장판 영화는 스타트랙을 단 한번도 보지도 못한 수많은 타국의 관객들에게 과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올해 공개된 스타트랙의 출발점에 선 이 장편영화는 그 고민에 대한 가장 현명한 답을 JJ 애브러험이 내놨 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영화엔 혹시나 스타트랙 TV 시리즈에서 보아왔던 정적이면서도 사색적이고, 싸이키델릭에 가까운 수많은 이미지들이
완벽하게 거세되어 있다시피 하다. 애초부터 JJ 애브러험은 그런 '스타트랙스러운 세계관'을 구현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을 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세계적인 히트를 친 이유는 바로 스타트랙을 이루는 캐릭터들에 대한 쌔끈한 재현에 있다.
커크와 스폭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에피소드는 잘 빠졌고 더불어 상당히 매력적으로 몰입감을 준다.
그 덕분에 엔터프라이즈호라는 상징성까지 희생해가며 포기했던 정체성을 이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확실하게 획득하고 있다.
그동안 TV 씨리즈를 연출하던 연출자의 장편 데뷔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한 완성도를 보이는 이 영화를 통해
전세계 관객들은 다시 한번 매니어의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보다 말끔해진 스타트랙을 회자시킬 것 같다.
그걸 부정적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새로운 참신함으로 바라볼 지는 역시 개인의 몫이다

 

 

 

 

 

41. [the Hangover/행오버] directed by Todd Phillips
결혼을 앞둔 남자들의 '총각파티'는 어찌보면 익살스러울 수도 있으나 그 내면엔 좀 씁쓸한 여운이 있다.
이제 '넌 결혼할테니 다른 여자와의 섹스는 꿈도 못꾸지. 그러니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즐기는거야'라는 어이없게도
가족 제도에 구속당할 예정이면서 그 서글픈 끝을 예단하고 마지막을 여성들의 살을 부비며 즐기자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묘하게도 즐겁지만은 않지 않나.
하지만, 그건 다 핑계지. 어차피 결혼한 부부의 70%가 이혼하고, 유부남, 유부녀의 혼외정사가 80%
(남자는 90%)가 넘는 지경인 미국에서의 '총각파티'란 그냥 그 핑계로 실컷 부비부비(그루빙)하자는 것 외엔 없는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총각파티의 끝은 어디인가?라고 누군가 의아해한다면 그 사람에겐 이 영화를 권한다.ㅎㅎㅎ
사실 영화의 내용이야 결혼을 앞둔 덕이 친구들과 라스 베가스에 가서 총각파티를 진탕 벌이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장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로 별 다를 것이 없지만, 이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사람들이 '나 어제 완전 필름 끊겼어'라고 말하면서
'내가 어제 그랬어?'라고 난감해하며 묻는 이들에게서 힌트를 얻은 영화의 진행방식이 아주 인상적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러니까 이들은 총각 딱지를 떼고 가정이라는 암흑으로 빠져드는 '덕'을 위해 라스베가스 시저 호텔 옥상에서
술잔을 마주치지만 다음 장면이 바로 엉망진창이 된 호텔방에서 각양각색으로 쓰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넘어 가버린다.
관객들은 당연히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라고 궁금해하지만 관객이 궁금한 만큼 이 영화속 덤앤 더머들도
완벽하게 필름이 끊겨 도대체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결혼을 앞둔 친구 덕은 사라져 보이지도 않고 말이지.
자신들의 '끊겨버린 필름'을 복원하고자 이 덤앤 더머들은 단서를 찾아 나간다.
그 와중에 속박하는 애인에게 말없이 따르던 스튜나, 교사지만 애들 코묻은 돈이나 꼬불치던 선생같지 않던 선생필이
개그스러운 자각을 하는 경험이나, 덕의 처남이 될 처지지만 사실상 대책없는 앨런의 좌충우돌이 기가막히게 벌어진다.
그렇다고 교훈적인 뭔가를 기대하지 마시길.이들은 마지막까지 다 자란 애들일 뿐.
인생살아가면서 나이먹고 근엄해지고 보수적이 되는 어찌보면 많은 이들이 당연시하는 과정에 묘하게도 반기를 드는 영화.
정말로 재밌게 본 영화.

 

 

 

 

 

42. [Wendy and Lucy/웬디와 루시] directed by Kelly Reichardt
신자유주의... 말이야 그럴싸하다.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같은 자들이 떠들어댄 저 보수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키기위한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개념은 무한경쟁에서 낙오되는
대다수를 조금도 떠받쳐줄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걸 민영화하여 이윤을 극대화 한답시고 인력을 줄이고 장비의 노후화를 눈감고...
그러다가 결국 카트리나 태풍이 왔을 때 FEMA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잖나. 볼리비아의 엄청난 수도요금 급등도 다 그 민영화때문이었고,
미국의 정전사태도 역시 민영화로 인한 이윤추구의 마인드에서 나온 인재들이었다.
켈리 라이하르트의 이 영화 [wendy and lucy/웬디와 루시]는 영화 러닝타임 80분동안 단 한번도 신자유주의니
고리타분한 정치적, 경제적, 철학적 이야기를 조금도 담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피라미드의 가장 밑을 차지하는 빈민 중 한 명인 웬디라는 여성의
며칠간의 일상을 통해 황폐화되고 삭막해진 미국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이란 허울좋은 구실로 '평평하지 않은 싸움터'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켜 내몰아댄다.
그리고 국가가 담당해야할 공적투자를 국민 개개인에게 하나둘 떠넘긴다. 미국의 예처럼 어디에서나 교육 재정을 먼저 줄이고,
서민 복지 예산을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버린다다. 이건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어느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나라도 2010년 복지예산을 늘렸다고 헛소리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절대예산을 늘린 것이지,
 정작 빈곤층에 필요한 예산은 전액삭감되거나 대폭 축소되었음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화 [웬디와 루시]에서 웬디는 단 한마디의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지만, 그건 그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이데올로기에 처절하게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끝까지 보는 이를 암담하게 만든다. 시스템을 통해 양산된 '패배자'들이,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체제에 저항할
엄두조차 못내고 무너지는 저들만의 세상. 자신이 가진 최소한의 것마저 뺏겨버리는 웬디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답답함의 끝을 보게 된다.

 

 

 

 

43.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directed by David Fincher
먼저 이 영화를 순위에 올려야할지 말아야할지 무척 고민했다는 사실부터 말한다.
아마도 데이빗 핀쳐의 거침없는 초기작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을 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그렇다고해서 [Zodiac/조디악] 이후의 데이빗 핀쳐를 부정하느냐... 그건 또 절대로 아니다.
[Panic Room/패닉 룸]의 사실상 실패(난 적어도 이 영화를 실패했다고 본다) 이후 그는 거친 호흡과 감각을 조절하고 긴 호흡과 느린 템포를
리드미컬하게 이용할 줄 아는 거장의 영역에 발을 담근 듯한 [조디악]을 들고 나타났다.
그 영화를 보면서 그의 다른 면모가 적당히 놀랍고, 적당히 어색했지만 [조디악]이 준 영화적인 흥분에는 조금도 이의가 없었다.
그러더니 이젠 누가봐도 거장의 느낌이 풍기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들고, 보다더 아카데미 영화제에 가까운
영화를 들고 인생의 아이러니를 얘기하기 위해 이 영화를 들고 나왔다.
어떻게보면 그닥 별 것 없는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펼쳐야하는지, 누가봐도 영화제를 겨냥한 영화라는 느낌의 이 영화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지 다소 혼란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우습게도 이토록 장황한 이야기를 서사적이고 시적으로 잘 풀어놓는
그의 연출력은 놀라울 정도라는 사실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_-;;;;
우린 '컬트'라는 장르 아닌 장르로 사랑받던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변화를 잘 기억한다.
초기에 육체와 심리의 유기적이고도 난해한 관계를 풀어해치며 극단적인 비주얼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가 장점은 오히려 더욱 드라이하게
발전시키고 거기에 시대와 인간의 폐부를 꿰뚫는 통찰력까지 더해가면서 진정한 거장으로 변모한 사실을 우린 기억하고 있다.
부디... 재능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데이빗 핀쳐 감독도 그러한 영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44. [Knowing/노잉] directed by Alex Proyas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한 편인 [Dark City]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재난 영화.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가 압도적인 CG로 처음부터 끝까지 재난에 함몰되는 인간을 버려버리듯 그려내고 시대의 참극과 개인의 관계를
얄팍하기 짝이 없게 대충 던져버린 것과 달리, [Knowing/노잉]은 적어도 재난에 의해 종말에 이르는 인간의 심리와 관계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노잉]에서의 캐릭터들은 그리 쉽게 감독에 의해 소모품으로 내쳐지지 않고, 주인공은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 와중에
자신이 가져왔던 관계를 가진 이들을 위한 마지막을 준비하고, 인간이 근원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종말의 의미를 캐내는 것에 더욱 주력한다.
개인이 자연의 참극을 막아내고, 그 와중에도 뻘스러운 농담을 내뱉고, 재난이 주인공들을 위해 대비된 소품처럼 전락되는 [2012]의 얄팍함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흥행성적은 아쉽기 짝이 없을 뿐이다.
(물론 [2012]의 CG는 놀라울 지경이고 무서울 지경으로 잘 만들어졌음은 부인할 맘없다)
그런 진중함이 빛나기 때문에 마지막 종말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45. [Adventureland/어드벤쳐랜드] directed by Greg Mottola
단순한 코미디로 보기엔 이 영화는 그 위트 속에 자본주의의 힘의 논리에 속절없이 무기력한 미국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아이비 리그의 대학에 진학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음에도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동네의 촌스러운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그나마 학비를 마련하면 살 곳이라곤 부잣집 친구가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약속된 것이  없었던 근거 하나인데,
영화의 말미에 그 부잣집 친구는 진학할 학교를 바꿔야하므로 미안하게 되었다는 전화 한 통을 던진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부모님의 바램처럼 자신의 거주지 부근의 원하지 않는 대학을 가던지,
아니면 입학을 미루고라도 돈을 벌어 학비등을 충당하던지.
그 와중에 담긴 이야기는 부유하지만 불안정한 가족 속에서 팽개쳐진 놀이공원 동료와의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랑 역시 주인공에겐 그닥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모든 상황이 주인공에겐 단 한 번도 쉽지 않고, 꼬이고 어려운 시련들 뿐이지만,
마지막 주인공은 스스로의 인생을 결정하고 퍼붓는 빗 속에서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모든 걸 걸어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틴에이지 코미디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무한자유경쟁의 허울 아래, 사랑도 꿈도 모두 포기하고 좌절해야하는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코미디의
장르적 보편성을 빌어 만들어낸 이 영화에 난 박수를 보낸다.

 

 

 

 

46. [Harry Brown/해리 브라운] directed by Daniel Barber
목적을 위해선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한다는 입장에서 이 영화는 과연 순위에 넣어야하는지 고민을 했다.
엄밀히 따지고보면 이 영화는 초법적인 자경단을 은연 중에 옹호한다는 점에서(특히 엔딩씬에선 그러한 감독의
의도가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단히 위험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전직 해병대원이었던, 그것도 매우 뛰어난 대원이었던, 하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 연금생활자일 뿐인 해리 브라운(마이클 케인)이
다수가 고통받는 무의미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스스로 총을 들고 처단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심정에 지지와 경계의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되는 복잡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명분없는 폭력에 대한 적의에 찬 경계, 무기력한 경찰을 믿느니 시민들 스스로의 손으로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마이클 케인의 빛나는 연기를 발판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거의 없지만,
이 영화가 그러한 영화적 완성도를 획득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그 슬럼가의 흉폭한 무의미한 폭력을 일삼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버려버려야할 쓰레기로 확실히 규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물론 그러한 시선에도 일리는 있지만, 그보다 먼저 시스템의 붕괴, 거침없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끝도없는 걸러내기가 이뤄지고

그 결과 부익부 빈익빈이 확대대고 빈곤의 세습이 반복되는 바로 그 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고찰은 조금도 이뤄지지 않고,
시스템 주변부의 인간과 인간의 적대적 대립만을 그려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울 뿐이다.
마이클 케인은 영국의 빛나는 배우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왔지만, 그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나와서도 얼마나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 지를 보려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2005년작 [the Weather Man/웨더맨]을 보시길.

 

 

 

 

 

47. [Terra/테라] directed by Aristomenis Tsirbas
SF 영화 속에서 늘 침략받고 무기력하게 패퇴하던 지구.
죽어라 당하기만 하는 일이 지긋지긋해졌는지 지구가 언제부턴가 갑자기 외계 행성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엔 도덕적으로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장치된 당위적 전제가 있다. [아바타]의 지구도 그렇고, [테라]의 지구도 그렇고
지구는 이미 에너지의 고갈과 생산성의 붕괴로 발전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이란 점이 그렇다. 아예 [테라]에서의 지구는
자신들끼리의 대립으로 행성 자체를 잃어버린 상황이기도 하고.
지구를 잃어버린 이들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별 '테라'를 찾아내지만 그곳엔 이미 지적생명체인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과
공존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그들을 제압하고 정복자로 군림하느냐의 윤리적 갈등을 이 애니메이션은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갈등의 구조는 단편적이면서도 피상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애니메이션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학습해야만 한다는 보편적 교훈과 자신과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롯될 수 있는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뚝심있게 펼친다. 그에 이르는 과정 역시 드라마틱하고.

다만... 그렇게 공존하게 된 테라인과 지구인의 평화는 도대체 언제까지 가능할까?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Matrix)]의 마지막 편의 엔딩부에서 예언자라고 일컬어진 할머니 프로그램은 전지적인 프로그램에게
인간들과의 약속을 지켜줄 것이냐고 묻자 그 전지적인 프로그램(?)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지? 인간?'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던진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가 원인이 되어 점철되어온 폭력의 역사. 그 역사 속에서 학습하지 못한다면 모두가
공존하는 평화의 생명력따윈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평화는 오히려 위태롭게 느껴진다.

 

 

 

 

 

48. [거북이 달린다] directed by 이연우
잘 짜여진 연출의 힘이 컸던 [추격자]를 사실 전 그닥 인상깊게 보진 못했다.
물론 잘 만든 영화였고, 김윤석씨의 연기 역시 흡인력이 대단했지만.
[거북이 달린다]는 절대적으로 김윤석씨의 영화다. 범인을 좇는 점에선 [추격자]와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보다 코미디에 치중하고 있으며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는 극한의 드라이브도 없다.
게다가 일말의 동정심을 보낼 여지 자체가 없었던 [추격자]의 하정우 역과 달리, [거북이 달린다]의 탈주범인
정경호는 오히려 김윤석의 역할보다 더 그럴 듯 하다.
그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는 오히려 꼴불견스러운 남자들로부터 여자친구를 보호해주고 쓸데없는 폭력은

휘두르지도 않는 제법 괜찮은 캐릭터이기 때문인데, 이는 사실상 밀어부치는 고집과 자존심, 오기만 있지 그닥 별 다른 능력도 부재하고

인간적으로 어딘지 모자른 듯 보이는 김윤석 캐릭터와 대비되면서 더욱 대조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경찰의 추격에 몰리는 정경호가 경찰을 따돌리고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쾌감을 얻게 되는 동시에 자꾸 구석으로 내몰리는

김윤석의 처지에 연민을 보내게 되는 묘하게 얽혀버린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딱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범죄물의 탈을 쓰곤 있지만 코미디의 룰을 잘 따르고 있는, 조화가 잘 이루어진 영화로 어떤 부분이 특별하게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영화 전체적인 재미가 은근히 쏠쏠했던 영화로 기억된다.

 

 

 

 

 

 

49. [Man On Wire/맨 온 와이어] directed by James Marsh
똑같은 세상 속에서 50억이 넘는 인구가 공기를 마시며 명멸한다.
역사 속에서 비슷한 사회 구조를 강요받고 그 속에서 비슷한 삶을 살다보니 우린 그런 삶에 지쳐있고 갑갑해 하면서도 막상 이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들에 대해선 배타적이고, 자신의 윤리적 기준, 가치의 기준으로 그런 행위들을 단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 외의 것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로 치부해버리고, 어느덧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에게 필리페 페팃의 놀라운 외줄타기는 가슴 떨리는, 가슴 속에서부터 잃어버린 자신의 도전정신을
부글부글 다시 끓게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행위 그 자체다.
그건 명성을 위해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도전이다.
이 작지만 놀라운 독립 다큐멘터리는 어지간한 스릴러 뺨칠 정도로 긴장감 넘치며 재미있다.
다큐멘터리는 고루한...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50. [Män Som Hatar Kvinnor/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directed by Niels Arden Oplev
유럽은 물론 북미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을 극화한 영화.
3부작 중 첫번째인데 벌써부터 2~3편이 기다려질 정도로 몰입감이 있다.

(최근 2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1편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통적인 스릴러 구조지만 범인을 하나하나 끼워맞춰가는 추리 구조라기보다는 두 남녀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모습을 따라가는 구조로

덕분에 그 흔한 맥거핀도 그닥 보이지 않고 그로인해 영화 자체가 상당히 베베 꼬지 않고 거침없이 쭉쭉 진행되어 깔끔하기까지 하다.
여성 주인공 리스베트의 캐릭터는 어디서나 한 번쯤 등장했을 법한 사실 진부한 캐릭터일 수 있는데 나름 상당한 매력이 있더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성적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가 천천히 남자 주인공과 교감해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있으며,

이외의 주변부 인물들도 잠깐이라도 버리는 카드로 사용되지 않는 느낌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보는 느낌도 들고, 아무튼 간만에 재밌는 추리 영화를 본 기분.
수위는 다소 센 편이어서 성인들을 위한 추리물.
대략의 내용은 웹사이트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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