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린 수많은, 놀라운 3D Projection-Mapping 작업들을 볼 수 있었다.
여러차례 소개했던 Telenoika 그룹의 걸작들과 같은 작업.
다시 한번 영상을 소개하자면...

 

 

 

 

Telenoika Audiovisual Mapping @ Kernel Festival, Desio, 1 & 2

이처럼 정지된 건물에 정교하게 계산된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현실의 건물에 새로운 역동성과 상징을 부여하는 작업은

미디어 파사드의 하나로 해외에선 상당히 자주 시도되었다.
놀라운 시각적 몰입도로 인해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내가 여지껏 봤던 프로젝션 매핑의 최고작은 바로 위에 소개한 텔레노이카 그룹의 커널 페스티벌 출품작이다.

그런데...
친구가 오늘 소개해준 프로젝션 매핑 작업은 정지되어있는 대상이 아니라 프로젝션 매핑의 대상이 움직이는 캔버스더라.
이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계산이 필요했을 지는 안봐도 뻔한 일.

 

 

 

한번 보시길.

<Box>



그리고 메이킹 영상.

메이킹 영상 보기

behind the scene.
making 영상.


이런 작업들을 보면... 창작을 위한 자본의 규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 2007년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열렸던 일본 현대미술 작가전을 보고 전시된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자본의 무게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름이 족히 4m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원형 스틸 플레이트 위에 스틸로 작업된 정교한 도시가 들어서있고 그 위로 인공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을 구현한 작품을 볼 땐

과연 한국에서 이러한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작업을 구현할 수 있는 자본을 스폰싱받을 수 있는 작가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회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안젤름 키퍼, 랄프 플렉, 앤디 덴츨러...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작가들.
난 약간의 바이오그라피만 챙겨봤을 뿐이지지만 그들은 결코 한국에서와 같은 뻔한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뻔한 교육 시스템이란 바로 거의 똑같은 가치를 어릴 적부터 강요받았던 환경을 의미하고.

거의 모두에게 동일한 가치와 동일한 인생의 목적을 강요받는 한국의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간신히 자신 속에 갇혀있던 감성의 벽을 깨부수는 싸움을 해야하는 환경과 그들의 환경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는 것, 듣는 것 자체의 시발점 자체가 다르니 이 간극을 메운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양질의 결과물만을 요구하며 그에 상응하는 미술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투자가 바닥인 나라에서 압도적 작품이 나온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런 환경의 나라다.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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