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지 좀 되었는데 이제서야 올림.
아무튼 이날 다녀오고 나서 증세가 더 심각해진데다가 거기에 편도선염까지 겹쳐 기가막혔다는. 참나...
마술사 이은결씨의 서울 공연 마지막에 즈음하여 다녀 왔다.
더 일찍 다녀올 수도 있었는데 좌석 좋은데 찾다가 한달 전에 미리 예매했다.
좌석은 1층 맨 앞에서 3번째 열.
결론적으로 이 자리가 정말 킹왕짱 좋은 자리라는 사실.

어머님, aipharos님, 나, 민성군 네가족 모두 다녀왔다.
티켓 가격은 VIP 100,000원/1인이나 VIP패키지를 선택하면 30% 할인이 된다.
뭐... 그래도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사실 11월엔 Flaming Lips의 공연이 있었는데 이 공연을 건강 상의 이유로 포기했다는게 두고두고 한이 될 듯.

 

 

 

충무아트홀.
아... 정말 징그럽게 막히는 동네에 있다.

 

 

 

 

오래전 이곳에서 산울림 공연을 보고 나서 처음.
aipharos님은 종종 와봤다고.

 

 

 

 

이은결 마술쇼를 하는 곳은 대공연장.

 

 

 

 

이 사진은 마술쇼가 끝난 후 찍은 사진.


마술쇼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그것도 내가 마술에 대해 생각했던 진부한 기대치와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사실 마술이라는 것은 우리가 TV에서 스펙터클한 블럭버스터를 기대하게 하는 무책임한 기대심리가 있다.
그건 순전히 데이빗 카퍼필드라는 마술사에게 익숙해진 탓이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고.
TV를 통해 그의 마술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책임하게도 '모름지기 마술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라는 기대를 막연하게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진부한 기대심리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 공연을 예매하면서 내 마음은 내가 즐겁기보다는 민성이가 즐겁기를 바랬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은결의 공연을 맞이 했다.
정시 시작인 오픈 시간을 기다리면서 전혀 지루함없이 소통하는 방식부터 일단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관객들을 무대 앞 양 옆의 스크린에 비추며 그 중 커플들을 위주로 무작위로 비추고는 아마도 이은결씨가
직접 타이핑하는 듯한 자막이 나온다.
자신들이 스크린에 비춰진 것을 알게 된 커플들은 무척 당황하지만 이내 스크린에 적히는 자막에 하나하나
반응하게 되고, 나중에는 서로 자기들을 잡아 달라고 손을 드는 우스운 광경을 보게 된다.
거의 열한두 커플을 이렇게 보여주는데 센스있는 자막도 즐겁고 공연 시작 전의 부드러운 분위기도 조성하는 데에도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

이러다가 시작된 공연.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화려한 마술이 불을 뿜는다.
마치 이게 당신들이 기대하던 마술이지?라는 듯 엄청난 속도감으로 쉴새없이 20여분을 몰아친다.
그리곤 곧 한숨 쉬는 시간을 갖다가 고전적인 방식의 마술들을 익살스럽게 선보인다.
하지만 그 고전적인 마술들도 하나하나 반전을 마련해두어 그만의 해석으로 다시 재구성했다.
60분 가량의 1부가 이렇게 후다닥 지나간 후에 20분의 인터미션을 거쳐 시작된 2부는 1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시작한다.
그가 말하듯 개인적인 비전, 자신의 이야기, 마술이 현실에서 희망이 되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내용인데,
사전에 미리 프로포즈 신청을 받아 무대 위에서 프로포즈하는 코너, 객석에서 즉흥적으로 아이를 불러 내어
그 아이가 생각하고 희망한 것들이 무대 위에서 정말 실현되게 하는 마술등, 결코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마술이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는 확실히 보여준다.

그러다가...
그가 제대 후 김중만 사진작가와 함께 아프리카에 갔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손가락 마술에 열광하던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프리카의 느낌을 옮겨오고 싶었다고 운을 땐 후 스크린에 광할한 아프리카의 초원 위를 뛰어노는
동물들과 원주민을 정말 두 손과 자신의 머리 만으로 표현하는 놀라운 그림자 마술을 보여주는데...
정말이지 아마도 이 마술쇼 최고의 인상깊은 장면이 아니었나싶다.

그러니까,
이은결 마술사의 공연에서 우리가 기대해야할 것은 데이빗 카퍼필드 무대 제작자...뭐 이런 스케일적인 부분이
결코 아니라 그가 마술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방식에 있다.
오히려 무대는 대기업이 함께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세련된 멋을 느낄 수 없다.
그런 무대의 요란한 겉치장이 아니라 그가 대중들에게 어떤 철학으로 마술을 알리고 싶어하는지가 진심으로
느껴졌다는 것이 내겐 더 깊은 인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진심이 느껴진 공연은 돈이 아까울 리가 없다는 거고.


*
이은결의 마술쇼는 12월 4일로 서울에선 공연을 종료했고, 현재 지방 순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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