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Concert/콘서트]
directed by Radu Mihaileanu
2009 / France, Russia
Aleksey Guskov, Dmitri Nazarov, Mélanie Laurent, François Berléand, Miou-Miou

무척 기대했습니다만 기대만큼의 재미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후반부를 장식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장면은 숨이 멎을 듯한 압도적인 감흥을 주지요.
민성이도 같이 봤는데 마지막 공연 장면을 두 번 더 틀어달라고 하더군요.
클래식을 알든 모르든 클래식 음악이 지닌 한없는 감정의 풍요로움에 민성이도, aipharos님도 모두 젖어든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대학에 막 들어갔을 때 거의 1년간 정말 열심히 클래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슈베르트의 'Death and Maiden'을 듣고 폭... 빠져서는 열심히 듣다가 현대음악으로 넘어가서 잘 이해도 못하는
그 난해함을 온몸으로 받으들이려고 기를 썼던(참... 어리석기도 했죠)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그런 열정이 오래 갈 리가 없었죠. 전 다시 원래 듣던 60~70년대의 전세계 언더그라운드 록/포크 음반을 듣기 시작했고,
그 뒤론 클래식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습게도 클래식을 가볍게 접한 건 '노다메 칸타빌레'였어요.ㅎㅎㅎ
물론 그저 드라마에서 보고 감동하는 선에서 끝이 났지만 말입니다.

자주 하는 말입니다만,
클래식을 들으면서 전 '저 악보를 인간이 썼다고 생각해봐... 저건 그야말로 천재아니야?'란 말을 종종 합니다.
쥐뿔 음악에 대해 아는 바도 없지만 상식적인 생각만으로도 그런 음계와 화성을 조화를 이루며
오선지에 적어넣는다는게 전 경이롭기만 합니다.
인간이 가진 보편적 감성을 언어 외적인 표현으로 가장 극적으로 끌어내는 건 바로 클래식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클래식을 먼저 찾아 듣진 않죠.-_-;;;

아무튼...
이 영화 [Le Concert/콘서트]는 브레즈네프 시절의 소련에서 볼쇼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알렉산더 필리포프가
정치적 이유에 의해 공연 도중 지휘봉을 뺏기고 단원들 모두 30년간 밑바닥 생활(또는 서민 생활)을 하던 중
프랑스 샤틀레 극장의 공연제의가 담긴 팩스를 가로채어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가서 공연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허구죠. 자잘한 웃음이 있고, 약간의 감동이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이 두가지가 그닥 조화롭게 이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산만한 것도 아니지만 인물들의 개인사가 궁극적으로 마지막 협연에서의 감동적인 조화를 이끌어내는 동기로서
작동하는 힘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에피소드들이 좀 성긴... 느낌이랄까요?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전 쥐어짜는 감동을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러니 오해없으시길)

그런데 그런 개인적으로 느낀 단점들이 마지막 15분여에 완전히 뒤덮혀버립니다.
그건 스피커를 통해 비장하게 터져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장의 선율 때문이죠.
제 생각에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사실 알렉산더 필리포프가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입니다.
그만큼 차이코프스키라는 위대한 작곡가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고 봐야할 것이고, 차이코프스키를
고집하는 알렉산더 필리포프는 차이코스프키를 통해 그 시대를 반추하는 일종의 알레고리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그러니까 전 차이코프스키나 알렉산더 필리포프가 그냥 한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봤다는 말이 됩니다.-_-;;;
알렉산더 필리포프가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고 레퍼토리를 말할 때 프로코피예프를 아주 잠깐 언급합니다.
'프로코피예프야 어찌되었든 상관안한다'고.
아시다시피 차이코프스키는 그 당시 소련의 답답한 정치적 현실과 자신의 자폐적 상황을 음악으로 풀어나갔다고들 하죠.
결혼실패로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내성적 성격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대부분 비장합니다.
소련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당시의 예술 상황에서 갑갑함을 느낀 그는 유럽의 낭만주의를 민속적 음악에
가장 완벽하게 융화시킨 사람으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알렉산더 필리포프는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좌절한 이후
30년간 찌든 삶을 보냈을 정도로 소심하기도 합니다.(소심하다기보다는 대부분 이렇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러시아 5인조의 영향을 받은 후대 음악인 중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을 접어두고 죽어라 스탈린 체제를 선전하는 음악을 만들었고,
프로코피에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주인공 알렉산더 필리포프의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집착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등을 만네리즘의 범주로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음악 세계에서
지향한 것처럼 다른 문화와의 온전한 정서적 교감을 추구했고, 알렉산더 필리포프는 그런 음악 세계 속에서 협주 속에
완벽한 정서적 교감을 추구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죠.

이렇게 말하면 이 영화가 정말 성긴 드라마로 불만족스러웠단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느낀 건 저도 모르게
이 영화를 보면서 혼자 제 멋대로 기대한 바가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룬 영화를 더 좋아하는 저로선 이런 영화가 더 잘 맞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에피소드들이 삐걱대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억지스러운 연출도 보이지 않고,
감동을 쥐어짜지도 않으니 이런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입맛에 잘 맞는 그런 영화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단순한 코미디+드라마로 보여지기엔 갖고 있는 메시지가 사뭇 무겁단 생각도 듭니다.
등장 인물들의 인생을 좌절케한 소련의 공산주의는 몰락했지만, 몰락한 이후에 소련의 찬란한 예술도 함께 무너졌지요.
볼쇼이가 예전 볼쇼이가 아니라는 영화 속의 대사도 나오지만, 우리가 아는 저 고고한 러시아의 문화예술은
신자유주의의 탁한 물결 속에 예전의 명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선 30년 전의 그 타협 불가한 시대를 성찰하고 화해하고픈 감독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만,
그러기에 지금의 러시아는 너무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것 같아요.
이들의 스폰서로 등장하는 그 아무 생각없는 정유 재벌...이 단순히 희화화될 수만은 없는 상징적 의미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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