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aipharos님과 일산에서 [아저씨]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보다 더 재밌었고, 원빈은 허벌나게 멋있었다.
원래는 60대 평범한 할아버지(?)가 설정이었다는데 원빈 캐스팅 이후 요로코롬 이야기가 바뀌었다고.
그런 설정이었다면 지금의 비교 회자되는 [Taken/테이큰]등등이 아니라
오히려 마이클 케인의 [Harry Brown/해리 브라운]에 더 가까왔을 것 같네.

공권력을 통한 법집행을 초월하는 이런 자력구제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허다하게 등장한다.
이런 개인적인 처단이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얻으려면 복수를 행하는 캐릭터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초법적인 처단을 당하는 악인들이 극악할수록 유리한 법이니만큼, [아저씨]에서의 악역들 역시
정상적인 인간의 윤리로 보아 '죽어 마땅한 쓰레기도 못되는 개쉐리'의 정형을 보여준다.

사실 그동안 원빈이 매력있다고 보진 못했다.
봉준호의 [마더]에서 멍한 눈동자 속에서 배우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 이전의 모습들은 그저 잘 생긴
남자배우들 중 하나...정도였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멍때리는 듯한 공허한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배우를 그닥 찾기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면,
배우로서의 원빈이 보여줄 가능성에 대해선 나름 기대를 하긴 했다.
그리고 [아저씨]에서 원빈은 내가 기대했던 그 무념의 표정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그러니까 아주 영화적인 캐릭터로서 충분히 상업영화에 바랄 수 있는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더라.

분명 원빈의 그 너무나도 출중한 스타일은 영화 속 처절한 복수의 피칠갑 향연에 몰입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어차피 영화라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판타지라고 본다면, 판타지로서의 원빈의 매력은 거부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난 우스개로 이 영화의 장르가 액션 느와르같은게 아니라 판타지라고 얘기하기도 했다.ㅎㅎㅎ)

일부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플롯의 앙상함을 지적하기도 하는 것 같고, 일부에선 또 이러한 초법적 처단을
경계하기도 하는 것 같다. 플롯의 앙상함, 캐릭터의 평면성은 난 사실 잘 모르겠더라.
그분들이야 언더텍스트를 끄집어내며 분석하실 능력이 되나 나처럼 그저 재밌게나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어차피 한계가 있는 소재에서 이 이상의 이야기를 기대하긴 힘들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구조를 축조하려면 상당부분 이 영화가 주력한 응징의 액션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을 수도 있다.
초법적인 처단의 부분에 대해선 나 역시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서서 보게 되긴 하는데, 예전에 글을 올렸던 [Taken/테이큰]의 경우
여성을 인신매매해서 성매매시장으로 팔아넘기고 마약에 쩔게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 말종들을 주루룩... 나열한 뒤
주인공들이 이들을 정말 사정없이 죽여버리게 하고, 살해/처단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엔딩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그 영화는 주인공의 딸은 '처녀'여서 상품성을 지키기위해 남성의 성적 유린으로부터 차단되고,
그저 마약만 좀 맞은 정도라는 설정 자체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지극히 마초적이고 보수적인 윤리적 시선의 방증이라고 글을 쓴 바 있다.
(그리고 이 감독의 차기작에선 그 실종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주 끝장을 본다)

다시 [아저씨]로 돌아오면,
이 영화의 악역들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저 뒷골목 잇권싸움이나하는 양아치들이 아니라 마약을 거래하고 아이들을 잡아서 개미굴에 넘겨 운반책을 시키고
좀 크면 죽여서 장기를 팔아먹는... 정말 인간 말종 중의 말종.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악인 중의 악인들이라는 설정이다.
그리고 이들을 처단하는 아저씨는 나름의 고통과 분노에 대한 동기도 충분한 편이고.
마지막 엔딩의 경우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는 배반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피칠갑 잔혹 액션 속에서 뒷끝이 덜한 씁쓸함을 안고 일어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란 무릇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와 플롯의 널뛰기에 같이 이입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나름대로 규정지어버리고
그 결말에서 어긋나면 묘한 배신감과 함께 허탈함과 나아가선 분노마저 느끼지 않나.
이성범 감독은 딱... 정해진 선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으면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붙들어메는 데 성공한다.
이건 상업적인 매력이지 이러한 엔딩이 좋다 아니다...는 말하기 힘들 것 같다.
나조차도 영화를 보면서 기대한 엔딩이 있으니 말이지.

악인을 처단하는 원빈의 액션은 기대이상, 상상이상이다.
[본]씨리즈에서 맷 데이먼이 보여준 사실적 액션보다도 오히려 더 강렬하고 간결하며 강력하다.
제압한 상대를 적절히 이용해 다른 상대들을 견제하고, 압도적인 물리적 우위를 제압된 상대를 이용해 다른 상대에게
강렬한 위압감을 주며 심리적인 공포를 주는 실전 무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원빈과 스턴트들의 액션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더 궁금한 건 이 액션씬을 촬영한 촬영감독이다.
상당히 액션의 합을 타이트하게 다가가 잡아내고 아이레벨, 니레벨, 완전부감을 확실하게 이어가며 찍어대고,
이를 편집의 과정에서 완벽하게 이어 붙여 액션의 동선이 유기적으로 흐르도록 만들어냈다.
이건 액션의 합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롱테이크 액션씬과는 완벽하게 다른 희열을 준다.
이 정도의 액션이면 캐릭터의 호흡과 함께 따라가다가 엉뚱한 장면 전환으로 맥이 끊기기 마련인데 [아저씨]의 액션씬은
아마도 한동안 한국 액션 영화를 얘기할 때 많이 회자가 될 것 같다.


*
김윤식의 깜짝 등장은 반갑기는 했는데...
왜 그렇게 갑자기 살이 찌신...거에요???

**
소미를 맡은 아역배우는 성인배우를 다 합쳐도 느끼기 힘든 아우라가 있다.
이 배우의 미래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

***
개인적으로 강동원이나 원빈같은 초간지 절정의 배우들은 이런 액션 영화를 좀 더 찍어줬음하는 바램을 늘 갖고 있었다.
강동원의 차기작인 [초능력자]는 어떨지 무지무지 궁금하다.
감독은 [4만번의 구타]로 이미 단편영화계의 보석으로 부상했던 이라 관심이 가긴 하는데...

****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매매하면서 장기적출한 뒤 죽여버리는 범죄에 대해선 예전에도 한 번 접한 적이 있는데...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고 한없이 가슴아프고, 그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갔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
아, 한가지가 빠졌다.
원빈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그 태국 배우.
그 태국 배우의 포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원빈의 상대역으로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 깊은 눈을 해서 한국말을 안해도 충분히 그 아우라가 드러나는.
아주 인상적인 캐스팅.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식상한 설정도 이 배우를 통해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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