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련 포스팅은 정말 오랜만인듯.
인후염으로 한 주 고생을 좀 한지라 주말에도 조신하게 영화관만 다녀왔다.
사실... 내가 죽어라 싫어하는 여름이라 어딜 다니기도 싫고.
어머님, aipharos님, 민성군까지 우리 가족 넷 모두 함께.
우리도 재밌게 봤지만 민성군도 [the Dark Knight/다크 나이트]에 비할 만큼 재밌었다고 하고 어머님도 정말
재밌게 보셨다고 한다.

 

 

 

[인셉션/Inception]
directed by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2010 / U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아, 조셉 고든 레빗, 엘렌 페이지, 톰 하디, 와타나베 켄, 킬리언 머피, 톰 베린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다른 것 다 필요없이 내겐 [the Dark Knight/다크 나이트] 한 방으로 정리가 된다.
극장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이 영화가 정녕 사람의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의
완성도로 할 말을 잃게 만들었던 영화.
이 정도로 극도의 텐션을 유지하면서 편집된 영화의 다음 작품이라면 어지간해선 '소품' 정도로 여겨질 거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여지없이 들어 맞았다. 예고편에서의 장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하던 [인셉션/Inception]은 실제로 보고나니
한 번 쉬어가는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감독의 영화라면 이런 '소품'이란 말따위는 하지도 않았을테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를 보실 때 가급적 공개된 예고편도 보지 말고 아무런 사전 지식없이 보시라는거다.
물론 나 역시 트레일러 외엔 사전 정보를 전혀 숙지하지 않았지만 예고편에서 영화의 흐름을 단번에 유추할 수 있는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스토리를 한 발 앞서 간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들 지경이니 아직까지 예고편을 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가급적 끝까지 참으시고 그냥 영화관으로 가시길.

내용을 적으면 그 자체가 완전히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참 글을 쓰기도 거시기하지만 이 영화를 16세때부터 구상을 했다는
놀란 감독의 말을 빌자면 적어도 그는 그 시절부터 이미 프로이트를 독파(?)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니라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본 뼈대에 이후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살을 보탰을 수 있다.
프로이트의 책을 읽은 지 어언 20년이 넘어버린 나로선 이 영화에서 꿈과 기억과의 상반되면서도 근접한 관계,

무의식의 개념 정도만 어렴풋이 다시 유추해낼 수 있지만 사실 대중들이 이 영화를 볼 때 그러한 지식이 있냐없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구성과 편집 자체가 훌륭하다.
워쇼스키의 [매트릭스]가 장자의 철학과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뒤섞어 SF의 프레임 안에 존재론적인 질문을 짖궃게 해왔고,
최근의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Mr.Nobody/미스터 노바디]는 대놓고 양자물리학과 엔트로피등을 영화 속에 기가막히게 버무리며

관람자로 하여금 탄성은 물론 나아가선 자신에 대한 성찰까지 유도했다면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역시 장자와 프로이트를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지만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단선적이면서 非철학적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대야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놀란이 영화 속의 '설계자'들의 힘을 빌어
펼쳐 보이는 꿈 속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받아 들이며 수월하게 흐름을 따라 다닐 수 있게 된다.
사실 이게 말이 쉬운 얘기지 이 정도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의 재능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다크 나이트]도 엄밀히 따지면 대단히 복잡한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중의적인 요소들,

철학적 질문을 수도 없이 해대는데 영화 자체는 너무나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지 않나.
아무튼... 참으로 놀라운 재능이다. 정말. (젠장 나랑 동갑이더만-_-;;;)

영화적 스토리는 복잡한 꿈의 매커니즘에 비하면 대단히 단순하고 명료하다.
개인적으로는 건강 문제때문인지 초중반에 약간 집중이 되지 않았는데 중반 이후 펼쳐지는 정교한 마술같은 스토리에는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느낌이 있더라.
동일 시간의 흐름선상에서 각각의 꿈이 흐르는 시간이 절대시간이 아니라 모두 상대적 시간이어서 사실 혼란스럽게 보여져야 함이
당연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놀랍게도 동일한 시간의 흐름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꿈의 내용들을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완벽하게 섞어냈다.
막판에서의 단계적 킥(Kick)의 카타르시스는 그래서 정말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었던 것 같고.

배우들 역시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한다. [디파티드/Departed]에서 어쩔 수 없이 양조위와 비교되면서 아쉬웠던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놀라우리만치 자기 옷을 입은 듯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조셉 고든 레빗은 다행히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코브(디카프리오)의 필사적인 분위기를 침착함으로 밸런스를 맞춘다.
엘렌 페이지는 역시 작고 귀엽지만 자신만의 매력이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와타나베 켄도 묵직한 이미지로 중량감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의 영화가 한 감독의 '소품'으로 느껴질 정도라면 앞으로 그의 행보에 더더욱 기대가 갈 수 밖에 없다.
영화관에서 보셔야만할 영화 중 한 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강하게 든다.
놀란 감독과 함께 그렇게 기대해마지 않았던 Wes Anderson, Darren Aronofsky의 선전도 기대해본다.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크랭크인에 너무 고생을 하고... 너무 심하게 과작이다.-_-;;;



*
디카프리오가 열연한 코브(Cobb)라는 주인공 이름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60여분짜리 흑백영화인
98년작 [Following]의 주캐릭터 이름과 동일하다.
이 영화도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챙겨볼 필요가 있다. 후에 따로 올려볼 예정.


**
언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일부 언론에서 이 영화를 '매니아적' 영화로 치부하고 '비대중적'영화로 격하하는 느낌을

너무나 강하게 받는데(그래서 [이끼]와 같은 흥행광풍은 못할거다라며) 그럼 미국에서의 지금 흥행성적은
그렇게 '매니아적'인 영화가 낼 수 있는 성적인지도 참으로 의아하다.
난해하다 짐작마시고 한 번 보시길.
영재도 아니고 평범한 울 초등학교 5학년 아들도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니.



***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Platoon]에서 인상깊었던 톰 베린저.
이 영화에서 킬리언 머피의 삼촌정도로 나오는데 살이 많이 불어난 모습.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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