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지인 중에도 이 공연에 가시는 분이 계신데... 엔딩 장면등을 다 말해놔서 그냥 읽지 않으시는게 나을 듯
짜증나는 저녁을 뒤로 하고 LG 아트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그 저녁을 갖고 인상을 쓰진 않았어요. 정말 어이없어서 웃기만 했죠.
우린 이 공연이 멋질거라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공연은 정말 멋졌습니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 지 모르겠어요.
전 무용이라곤 조금도 관심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춤을 아주 오랫동안 춰왔었지만 무용과는 다른 영역이었잖아요.
아주 친한 여자 친구 중에 한 명은 이화여대를 잘 다니다가 난데없이 불러내더니 현대무용을 한다며
해외로 나가버린 친구도 있었습니다. 전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다만, 멋지다...라고만
생각했죠. 전 그럴 신념도 용기도 없었으니까.(그 친구의 소식은 그 뒤로 끊겼습니다)
전 발레는 본 적도 없어요.
국민 공연(!)이라고까지 하는 매튜 본의 공연도 전 본 적이 없습니다.
뮤지컬과 발레... 전 전혀 관심이 없었고, 뮤지컬은 여전히 볼 마음이 없습니다.
제가 본 무용 공연이라곤 작년에 LG아트센터에서 본 '바체바 무용단'의 공연 뿐입니다.
물론 그 공연이 절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버려서 올해 LG 아트센터의 공연 패키지를 구입한 거지만 말이죠.
Pina Bausch
아무리 무용을 몰라도,
피나 바우쉬를 모르진 않았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유명한 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Pedro Almodobar(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Talk To Her/그녀에게]에서 나오는
무용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던거죠.
(그 영화에선 첫부분은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인 '까페 뮐러', 마지막엔 '마주르카 포고'가 삽입됩니다)
조금 일찍 올라와서 aipharos님과 바깥 공기도 쐬고...
수다도 떨고 장난도 쳤습니다.(커피...ㅋㅋ)
저희 자리는 대부분 2층 가운데 맨 앞열...입니다.
원래 LG 아트센터는 R석이 가장 좋은 자리인데, 피나 바우쉬 공연은 기존의 R석 중에서도 좋은 자리는
VIP석으로 운영됩니다. 2층에서도 맨 앞열은 VIP석이에요.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이미 글을 올렸듯 저희는 1년 패키지 티켓을 예매해버려서 몫돈은 나갔지만
35%를 DC 받았습니다.
2층의 저희 자리는 시야가 바로 무대 맨 앞부터 보이고 멀리 느껴지지 않으며 무대를 살짝 위에서
부감으로 내려보는 각도라 아주 좋아하는 자리에요. 뭣보다 앞사람 때문에 시야를 가릴 일이 없지요.
저희 올해 LG 아트센터에서 예약한 7개 공연은 5번이 이 자리입니다.
두 번은 1층 앞쪽이구요.
피나 바우쉬에 대한 소개는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33세에 부퍼탈 무용단의 예술 감독이 되었으니... 천재적인 아티스트죠.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용가라는데 이견이 없는 아티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후기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갖기 시작하는데, 그건 자신과 무용단이 한 나라의 도시에
장기 체류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느낌을 작품으로 옮기는 '세계도시' 시리즈를 내고 있다는거죠.
aipharos님이 놓쳐서 안타까와했던 2005년의 한국 소재의 'Rough Cut(러프컷)'.
'Only You(로스앤젤레스 소재)', 'Madrid(말 그대로 마드리드...)', 'Aqua(브라질리아)'등등...
세계 도시 시리즈를 공연하고 있어요.
그중 이번에 공연한 'Nefes(네페스)'는 터키를 소재로 한 작품이고, Nefes는 터키어로 '숨'이라는 뜻이랍니다.
일반적으로 피나 바우쉬의 이전 작들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많이 다루었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선
상당히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터키에서 억압받는 (이미 영화로도 알려진 '명예살인'등) 여성들에 대해 굳이 시선을 피하려 했다기보다는
그녀들을 감싸안고 보듬는 시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종종 객석에서 웃음이 터질만큼 유머러스합니다. 정말
1부와 2부로 공연은 나뉘는데, 중간에 인터미션이 20분입니다.
1부는 약 65분, 2부는 80분인데 솔직히 전 2부가 그렇게 짧게 느껴질 줄 몰랐어요.
마지막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면을 보다가 공연장의 불이 켜질 때 저도 모르게 '벌써 끝났어?'라고
내뱉었거든요. 전 정말 30분은 더 남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더군요.
1부보다 2부가 보다 더 역동적이에요.
무대는 마루바닥과 한쪽으로 거두어 놓은 커튼 2개 뿐 입니다.
공연 도중 무대 조금 뒤쪽 가운데부터 바닥에 점점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이 물이 한 번 다 빠지더니 다시 차오르더군요.
무용수들은 이 가운데의 인위적인 연못 경계를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해갑니다.
보는 이의 가슴에 왠지모를 억압과 해방에 대한 욕구가 극대화될 때, 1부의 끝에서 한 명의 무용수가
난데없이 저 연못을 격정적으로 뛰어 들어가지요.
그리고 천정에선 비가 내리 붓듯 그 무용수를 온통 적셔버립니다.
2부는 커튼 실루엣을 이용한 프로젝터의 영상 투사와
터키의 결혼식 피로연과 그들의 왁짜지껄한 모습들을 재현해내는 여러 역동적인 동작들이 쉴새 없이
등장합니다. 보다 연극적이며, 조금도 한 눈 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요.
물론 그 와중에도 여성들에 대한 억압적 시선과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지배 구조에 대해서 얘기하는
바를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나 바우쉬는 이를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의 시선이 아닌, 화해의 시선으로, 그녀가 바라는
화해의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남자 역시 성정체성과 마초이즘 사이에서 겪고 있는 억압과 강박관념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깊게 받았습니다.
한 폭의 그림같았던...
반복되는 동작.
피나 바우쉬의 'Nefes'엔 이렇듯 반복되는 동작들이 나옵니다. 어떤 경우엔 묘하게 변조되기도 하구요.
왼쪽에서 두번째 무용수는 우리나라 무용수인 김나경씨입니다. 96년부터 단원이 되었답니다.
여성의 머리 위로 놓인 두개의 물주머니, 수평을 맞추며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무용수.
정말 계단을 오르듯 허공을 올라갑니다. 두 남자 무용수가 이를 도와주지요.
터키 여성들이 겪고 있는 남자와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그리고 암담하리만치 힘든 사회 생활.
미장센과 아름다운 실루엣, 동선을 모두 보여줬던...
이건 1부의 마지막 장면, 순간적인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정말 너무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
**
이번 공연으로 전 현대 무용에 또다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런 또다른 예술을 이제서야 관심을 가졌다는게 안타깝고, 한 편으론 이제서라도 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중 내게 격정과 평안의 감상을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스크린과 음악, 갤러리의 미술 뿐만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몸짓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몸짓이 결코 관념적이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런 경험은 나 혼자였다면 했을까 싶어요.
aipharos님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마와요.
**
피나 바우쉬의 공연 화보집(70,000원)
전시 화보집(각 20,000원)
벽걸이 2009년 달력 (25,000원)
탁상 2009 달력 (10,000원)
게다가 티셔츠.
모조리 다 탐이 났으나 닥쳐올 지갑 재앙/통장 재앙이 두려워 그냥 나온게 많이 후회되네요.
특히 벽걸이 달력은 너무... 좋던데. 게다가 2009년 달력이고.
화보집이야 말할 것도 없고
***
Nefes에 나온 곡들을 들어보세요.
워낙 용량이 커서... 용량을 왕창 줄여서 음질은 좀 열악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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