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 세월호 이후로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거의 칩거에 들어갔던 분과 오랜만에 얘기를 나눴다.

그분은 우울증을 겪으며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파렴치하게 행복해지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다'라고 얘기했다.



가히 비상식적인 사람과 사건 투성이다.

하나하나 찍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빈번한 파렴치함이 넘쳐난다.

수백억이 들어간 국가 주도 사업의 웹사이트, 정부 주관의 사업등 우리 세금을 써가며 진행된 정부프로젝트는 하나같이 그 돈이 다 어디에 쓰였는지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엉터리이며 자원 비리, 국방 비리등은 그 실체가 까발려졌음에도 제대로 책임지는 이조차 없다.

국감에서 엉뚱하게 방송인을 거들먹거리며 군대 위신을 모욕했다고 수사하라는, 개그 프로그램은 아예 상대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언사를 쏟아내는 이가 보이는가 하면,

명백하게 외인에 의해 사망한 고인의 사인을 확인해야한다며 모든 이성적/논리적 근거를 무시하고 부검해야한다고 외치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모습을 매일 답답한 마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 이젠 고인의 유가족을 윤리적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려는 인간같지도 않은 국회의원과 유가족을 고발까지한 정신나간 수꼴단체의 소식까지 듣는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2년이 넘었음에도 단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 어처구니없는 아수라판이 무리도 아니다.

그러니...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세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저 무리들의 목적은 뻔하다.

세월호 때 그 저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마타도어를 유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목적은 그저 사람들이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에 일말의 균열만 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확신 속 저 밑바닥에 '혹시...'라는 일말의 의심을 심어주는 것.

바로 이게 그들이 목적이다.

박원순 시장 아들이 병역비리 의혹이 있다며 물고 늘어지는 것도 똑같다. 저들은 그저 상처를 내고 싶은거다.

그 작은 상처가 결정적인 순간에 커다란 의심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걸 저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따위? 저들은 감수할 수 있다.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고, 그 의도대로 만약 사람들 마음 속에 '혹시...'라는 의심의 찌꺼기를 조금이라도 뿌려놓는다면 저들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 이들.

그렇기때문에 이 정권은 악마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자본과 탐욕에 빠진 기득권의 민낯... 이런 클리셰같은 수사 인용이 불가피한, 인간의 형상을 한 모리배들을 매일 뉴스를 통해 마주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증세의 차이가 있을 뿐 사회학적 원인이 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만 납득하기 힘든 탐욕의 민낯을 마주하면 얼굴이 시뻘게져 욕설을 내뱉게 된다.

염치를 모르는 그 족속들이 만약 내 앞에 그 순간, 서있다면 난 어떤 짓을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블로그에 올리듯,

난 내가 즐길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식구들과 외식을 하며, 호사스럽진 않지만 쇼핑도 하면서 살아간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평범한 행복이다.

내가 즐기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다시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전시하는 이 과정을 벌써 12년 넘게 하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더 이런 글을 올리면서 내 스스로가 부끄럽고 파렴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과연 나뿐일까?


길바닥에 나앉아 1년 넘게 부당한 처사에 맞서 온갖 모욕과 경제적 불이익 속에서 싸우고 있는 티브로드, 동양시멘트, 한남운수, 콜트콜텍, 하이디스등의 장기농성장 근로자들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쓰고 잘 사는 것이 죄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얄팍한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내가 내 가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조차 맘놓고 즐거워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다.

그만큼 이 나라는 개인의 평범한 행복조차 맘놓고 누리지 못하도록 옭죈다.

그런 생각 끝에 한동안 페이스북에 먹고 논 글들을 올리지 않았었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엔 온통 답답한 이 나라의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올라왔고, 그걸 보기만 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 스스로,

난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어디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이기적인 결정이지만,

난 고민 끝에 조금 더 염치없고, 조금 더 파렴치해지기로 했다.

내가 딛고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이 답답하고 분노가 끓어오르는 현실을 잊지 않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행복해지기로 했다.

그 행복이란 것이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냐, 정서적인 위안을 얻는 것이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내가 해오던 대로 사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았다.

어쩌면 이건 내가 저 거대한 부조리와 싸울 마음이 없어 꼬리를 내리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즐거움조차 누리기 힘들어지는 이 나라에서 난 최대한 내가 해온 방식대로 행복해지기로 했다.

자본주의를 결코 옳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낙오자가 되는 것은 더 싫었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진보는 가난해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프레임은 더 싫었다.

그러니...

조금 더 염치없고 파렴치하게 내 행복을 좇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전에도 말했지만 조금만 더 현명한 소비를 계속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형마트를 최대한 이용하지 않고, 동네 수퍼를 이용하며-이미 4년이 넘었다- 대자본의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피하고, 대자본의 커피 전문점을 가급적 이용하지 않고, 노조조차 인정하지 않는 세계적 기업의 제품을 철저히 배제하고, 글로벌 S.P.A.기업의 옷을 구입하지 않도록 애쓰는 등 아주아주 조금은 더 현명한 소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가급적 이슈가 되는 집회에는 적극 참석하여 저들에게 비록 위협적이진 못해도 우린 낙담하고 좌절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했다.

후원이 필요한 단체 혹은 대상에겐 내 할 수 있는 선에서 꼭 후원하겠노라 다짐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내게 오랜만에 얘기를 나눈 지인의 '스스로에게 파렴치해지기로 했다'는 말은 내 생각을 합리화한 듯 하여 위안이 됐다.

그래, 얄팍하다.

비난받을 여지가 다분한 한심한 합리화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내 스스로 이런 합리화의 과정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잘 알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진심 미쳐버릴 것만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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