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E] directed by Andrew Stanton
2008 / 약 103분 / 미국

어제 사실 이 영화를 보려고 했던건데 일이 있어 못보고 오늘 식구 모두 영화관으로 가서 봤습니다.
어머님과 민성이, aipharos님과 나, 모두 보러갔죠.
사실 Pixar(픽사)스튜디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많이 꺼려집니다.
픽사의 영화들이 싫어서가 아니라(오히려 그 정정정정반대죠), 남녀노소 구분없는 전체연령가 영화라
아이들이 너무 많이 오는 덕에 영화관이 보통 소란스러운게 아니죠.
그런 잡음과 소음에 너무 민감한 내 성격상 도무지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든요.

그래도 이 영화는 빨리 보고 싶어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길바닥에서 STEFF(스태프) 핫도그를 들고 저녁을 떼우고 CGV에서 선심쓰듯 제일 조그마한 상영관 하나 내준 상영관으로 들어가서 말이죠.
정말 안스러운 스크린 크기더군요. 도대체 왜 이 조막만한 스크린을 보러 극장에 왔나...싶기도 했어요.
(디지털 상영을 보려 했더니 이건 또 오후 4시까지만 상영하고 주말은 상영하지도 않더군요. 하도 이런 경우가 많으니 뭐)

보기 전에 걱정도 했습니다.
기대를 너무 하지 말아야지말아야지..하면서도 그게 맘처럼 쉬운 게 아니라, 이미 마음 속에 '보고싶다'라는
마음이 커지면 바로 그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과한 기대를 맘대로 해버리곤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도 정말 많았죠.

결론부터 말하면 [Wall-E/월-E]는 올해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제겐 최고의 영화입니다.
전 이 영화처럼 가슴설레이는 로맨스 영화를, 이 영화처럼 가슴 뭉클한 휴먼(논-휴먼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이 영화처럼 사랑스럽고 귀여운 코메디를, 이 영화처럼 말도 안되지만 뭉클한 SF영화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월-E]에서 보여지는 모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말이 안되지만, 그런 과학적, 논리적 반박이
정말 민망해질 정도로 이 영화는 따뜻하고 진정어린 시선으로 캐릭터와 내러티브 모두를 보듬어 안습니다.

주인공 로봇들인 월-E와 이브의 대화라곤 'Who are you?'와 서로 이름을 말하는 것 외엔 없다시피 한
이 영화가 가슴이 뭉클해지고 저 가슴 아래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을 여러차례 느끼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 나아가서 정말 진솔한 이야기라는 걸 대변한답니다.
당연히 월-E와 이브는 고작 눈의 모양과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억양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정말 그 어떤 대사도 필요없이 감정이입되는 이 놀라운 경험은 영화를 보신 분만이 알 수 있을 거에요.
아마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스스로를 반추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설레임을 월-E를 통해서 보게 될 것이고, 보안카메라를 작동시켜 월-E의
성심을 보게되는 이브의 시선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지고지순한 사랑의 뻔한 모습을 신선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고,
소화기 우주 유영등에선 가슴 벅찬 감동으로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될 거에요.

이 풍부한 감성들이 너무나 잘 짜여진 캐릭터 디자인을 통해 더더욱 사랑스럽게 표현되는 겁니다.
월-E, 이브 그리고 임무를 위해 일탈을 하게 되는 '모'를 비롯해서 모든 로봇 캐릭터들이 하염없이 사랑스러운 영화에요.
그에 반해 인간의 모습은 끔찍하지요.
민성이와 영화보고 나서 얘기했지만, 정말 이 영화는 매우 우울한 SF입니다.
오염된 지구로 인해 인류는 액시엄이라는 아주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700년을 우주에서 보내고 있고, 월-E는
그러한 지구에 남겨진 채 계속 자신의 부품을 갈아대며 쓰레기 청소의 임무를 수행 중인 거죠.
아무도 없는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은 정말 여러 영화들의 스틸컷을 떠올리게 됩니다.
[I Am Legend/나는 전설이다]를 비롯한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와요.

우주선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모습들도 그닥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맘만 먹었으면 이 영화는 정말 우울하고 어둡게 그려질 수 있을 영화였어요.
아무리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디스토피아적 감성을 '월-E'와 '이브'의 드라마가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거에요.
그러니 '월-E'와 '이브'란 캐릭터가 얼마나 놀라운 캐릭터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이지 누구에게나 꼭 추천하고 싶은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입니다.
아직 [the Dark Knight/다크 나이트]를 못봤지만, 아직까진 제게 08년 최고의 영화입니다.
픽사는 이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사람다운 감성'을 표현하는 노하우를 완벽하게 깨우친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놀라운 스토리가 나올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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