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Legend](2007) directed by Francis Lawrence

어제 밤 9시 30분 [I Am Legend]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보고 나오면 후보단일화라든지 뭐 그런 희망적인 뉴스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저와 같은 분들 많으실텐데 저 역시 찰튼 헤스턴 주연의 Boris Sagal  감독의 1971년작 [the Omega Man]
대한 기억이 깊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저는 Ubaldo Ragona 감독의 1964년작 [the Last Man on Earth]를 훨씬 더 재밌게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막상 영화의 시퀀스와 프레임이 기억나는 영화는 [the Omega Man]쪽이네요. ㅎㅎ
어제 네이버 영화 파워블로거들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조금 당혹스러운 포스팅을 봤는데요.
그 파워블러거들은 하나같이 [the Omega Man]을 유치하고 황당하고 성의없고 난감한 영화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더군요.

무척 황당한 기분이었던 건 이분들이 [I Am Legend]를 보고 와서 뒤늦게 봤다거나,

아니면 [I Am Legend]때문에 뒤늦게 부랴부랴/주섬주섬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 올린 글들이라는 겁니다.
만약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현재에 꼿꼿하게 고정하고 이 영화를 들여 본다면 빈약한 비주얼과 느려터진
스피드의 액션이 도무지 맘에 안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건 영화를 시대활극 이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각의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네요.
전 요즘의 아드레날린 터져나오는 궁극의 좀비 영화들도 좋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1968년
George Romero 감독의 [Night of the Living Dead] 이상의 좀비 영화를 본 기억은 없네요. 전 이 영화를
네 번 이상 봤습니다. 가장 최근에 본 건 작년초에 밀레니엄 에디션 스페셜 DVD를 구입해서 또다시 본 거구요.
그 영화에선 수많은 사회/정치적 메타포들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고, 흑인 남자 주인공이라든지 느릿느릿
옭죄어오는 공간의 공포와 폭력이 말살하는 인성, 미국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붕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죠.
굳이 이런 언더라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오락적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거워요.



다시 [the Omega Man] 얘기로 돌아오면...
[the Omega Man]는 그런 은유적 메타포들보다는 제겐 시각적 충격으로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도시라는 곳이 그렇겠지만 폐허보단 비어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강하잖아요.
언제나 익숙하게 봐왔던 메트로폴리스의 번잡스러움이 제거된 도시라면 정말 음산할 것 같아요.
이걸 가장 멋지게 잡아낸 감독 중 하나는 바로 Danny Boyle 감독이죠. [28 Days Later...]에서 그는
Richard Matheson의 원작의 설정을 완벽하게 영화적으로 구현해냅니다.
사실 Richard Matheson의 [I Am Legend]책을 리메이크한 영화가 아니라도 [28 Days Later...]의
설정은 대단히 유사합니다.
[the Omega Man]은 지금보면 텅빈 도시 공간에 대한 표현이 어색해보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들이 휘발된 것처럼 보이는 느낌이 강하니까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휴거'라고 얘기할 법한
도시의 모습입니다.
그 많던 차들도 훵~~하니 안보이고 말이죠. 인류멸망의 대혼돈의 흔적이라곤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제겐 그런 텅빈 도심의 공포란 사실 [the Omega Man]이 최초였거든요.
찰튼 헤스톤이 총 한자루를 들고 마네킹과 말놀이를 하는 장면(이 장면은 [I Am Legend]에서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습니다)이나 을씨년스러운 도심의 그늘을 지나 상점을 들어가는 하나하나의 모습들이 대단히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도 강렬하고 재밌는 기억이어서 전 [I Am Legend]가 제 기억 속의 아성에 있는 [the Omega Man]을
넘어설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감독인 Francis Lawrence는 고작 장편 영화 하나 찍은 뮤직비디오 감독이지만 그 한 편이 바로
제 완소영화 중 하나인 [Constantine]이지요.
국내/외 영화팬들이 외면한 이 영화는 이상하게 제겐 초완소 영화랍니다.
완전히 이건 비약과 과장입니다만 전 주인공 콘스탄틴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론 Kevin Smith[Dogma]
초진지 모드같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0_0)
어쨌든 그의 차기작인데다가 점점 더 완소남 이미지를 제게 굳혀가는 Will Smith, 게다가 Richard Matheson의
시대를 훠얼~씬 앞서갔던 소설이 원작인 [I Am Legend]라니, 무조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했습니다.

결론적으론 어제 영화관에서 10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전 [28 Days Later...]나 Zack Snyder가 리메이크한 [Dawn of the Dead]가 물론 재미있었지만,
지나치리만큼 빠른 좀비들의 스피드때문에 기본적인 좀비물의 옭죄어 오는 폐소적 공포와 심리적 압박은
많이 상실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I Am Legend]의 좀비들은 원작에서 두가지로 분류되던 변종인간과도 사뭇 다른 느낌인데다가
빠르고 강건하며 더욱더 폭력적이고 파괴력이 있지요.
이들이 인성을 완전히 제거당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격을 하고, 무리를 이루며, 수색견을 보내고
리더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선 이들을 말살된 인류로 볼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이게 바로 다른 좀비물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좀비물에서 좀비는 그저 식욕에 대한 기본적 욕구 외엔 없어요.

그게 다소 희석화되고 좀비가 학습 능력을 갖게 되며, 어쩌면 생존 인류와 공존할 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건 바로 좀비물의 본좌이신 George Romero 감독의 근작 [Land of the Dead](2005)에서 였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군집 생활 이상의 삶의 방식을 영위하는 좀비들은 뛰기만 하는 좀비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옭죄어 오는 공포는 없어도 지능적으로 포위하고 언제나 쫓고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 가능한거죠.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좀비들을 통해 폭력과 단절이 말살하는 세상에 대해 강렬한 메시지까지 끌어낼 수 있었
다고 봅니다.

71년작과 같이 여기서도 주인공은 로버트 네빌입니다. 그는 군과학자이죠.
사실 그렇잖아요. 거의 유일한 생존자이다시피 한데 회사원이나 공무원, 잡역부나 니트족이면 곤란하잖아요.
최소한 인류 멸망의 절체절명 앞에 그 키를 쥔 사람이 될텐데 이를 위해선 사태를 파악하고 진압할 수 있는
군대 장교 출신+인류의 멸망을 막을 의료지식이 있는 과학자...여야 할테니 군과학자가 딱입니다. 흐~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을 접한 적이 없는 분들이라면 사실 이건 그저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차원을 넘어서 그런 설정 자체가 얼마나 무겁게 인간의 무력함을 얘기하는 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지요. 중반부 이후의 결정적 사건에서 로버트 네빌의 행위는 처연함과 무기력을 불러 옵니다.
그런 면에서 [I Am Legend]가 심하게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전 동의하지 못합니다.
원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고 전체를 지배하던 감성은 바로 무기력과 단절이 주는 공포잖아요.
변종인류(뱀파이어)가 주는 공포가 아니고 말입니다.
[I Am Legend]에서도 그가 가장 크게 겪는 공포는 혼자가 되는 공포입니다. 그게 바로 단절 그 자체기 때문
이지요. 실제로 그는 자신이 좀비를 잡기 위해 쳐놓은 덫에 자신이 걸리기까지 하죠.

이 영화는 분명 아주 영리하고 눈부신 오락영화가 맞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기본 기저인 '폭력과 소통의 단절이 불러오는 말살된 인간'에 대한 메시지는 몇 번씩 설득력있게

커다란 느낌으로 전해져 옵니다. 기본적으로 이건 감독의 놀라운 연툴력임과 동시에 주연배우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전 Will Smith란 배우가 점점 완전호감모드로 변해가고 있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그 이미지를 굳혔어요.
이 영화에서 영화 마지막까지 전체를 책임지는 완벽한 1인극인데, 이토록 잘 소화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대상과의 교감에 탁월한 배우라는 걸 느껴왔었습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
영화 도중 심장이 내려앉는 장면이 두어번 있으니 심장에 자신없는 분은 한 번쯤 자기 스스로를 체크하고
영화관으로 향하세요.

 

 

 

***
전 이 영화 인천에선 죽은 줄 알았더니 자리... 만땅이더군요. 덕분에 몰지막한 인간들의 비율도 더 올라가죠.
영화관 내의 소음쯤은 가볍게 무시할 마음으로 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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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결말이 황당하다느니, 다 펼쳐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 급히 수습했다는 국내 네티즌들의 글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뭐 할 말 없는데 도통 뭐가 그리 황급히 엔딩을 봤다는건지 이해는 잘  안가네요.

안타깝기도 하구요.
주관적인 부분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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