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오디오였다.
방에서 잠을 채 못깨고 눈을 부비며 거실로 나오자 거대한 오디오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셨고, 오디오는 내 차지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갖기엔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좋은 오디오였다.
그리고 늘 팝송을 FM 라디오를 통해 녹음하던 일상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3학년, 산울림 2집 LP를 처음 구입하는 것으로 음반 컬렉팅이 시작됐다.

내 중학교 때,
Prince의 [Purple Rain] 음반에 금지곡이 두 곡이 있었고, Pet Shop Boys의 [Please] 음반엔 무려 세 곡이 금지곡이었지만,
난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님께서 미8군 용산에 가셔서 미국반을 사가지고 오시는 바람에 금지곡 걱정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어가 있다는 웃기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Styx의 'Mr.Roboto'까지도.
당시에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영화는 거의 모두 부모님이 데려가 주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때 본 영화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가 끝날 무렵 mail order를 시작했다.
종로구 정동의 중고 LP숍의 엄청난 폭리에 염증이 난 나는 당시 인터넷도 없고 오로지 캐터록에 의존해야 하는 해외 mail order에 열을 올렸다.
First Pressing 음반 구입에 희열을 느끼면서 아파트 한 채 값은 족히 될 돈을 LP 구입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LD와 애니메이션으로 더... 관심을 넓혔고. 동호회 활동도 즐겁게 하면서 지낸 것 같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말이다.

난 아직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 거실에서 우리집 식구들이 One Way Ticket을 틀어놓고 아버님, 어머님 모두 춤을 함께 추던 기억이.
그리고 아주 자주 모대기업 전용 풀장에 방학 내내 1착으로 도착해서 신나게 즐기던 시간들을.

아버님의 사업은 도장 한방 잘못 찍은 일로 순식간에 다 날아갔고.
여전히 아버님을 믿고 지지하셨던 어머님도 아버님이 점차 변해가심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셨다.
그리고... 아버님은 어떻게 지내시는 지조차 모른다.
어머님은 함께 사시지만 살가운 대화가 오간 지도 감감한 기억 속에 있다.
그리고 난 어제도 밤에 어머님께 차가운 말만 늘어 놨다.

모두 그냥 아름다'웠'고 즐거'웠'던 옛 기억 속으로 묻혀 졌고 이젠 그 기억을 되살리기도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만 남아 있다.
예전엔 그냥 정말 어쩌다 그런 시간들이 생각나면 잠시 웃음과 안타까움이 함께 다가오곤 했지만, 이젠 그냥 무덤덤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마음이 시리다.
답답하기도 하고.
죄송하다고 어머님께 전화 할 행동은 왜 했을까.
자식이 그런 소리를 해도 큰 소리 한 번 못내시고 듣기만 하시고 되려 죄송해하는 어머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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