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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늘 해오던 것을 계속 한다는 것이 점점 버거워진다.
1월 안으로 2015년에 보고 들었던 영화와 음악을 정리해야겠다는 계획도 점점 멀어져만 간다.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올려 누구에게 보여줄 목적도 아닌, 그저 내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 하는 이 작업이 해가 갈수록 버거워진다.
단순히 텍스트로 순위를 적고 영화/음악 제목만 적어서 올리면 당장에라도 끝낼 수 있지만 내 스스로 그걸 용납못한다.
영화관에 가서 봤든, DRM구매해서 봤든, 블루레이를 구입해서 봤든, 불법다운로드해서 봤든... 모두 영상파일을 구해서 일일이 영상캡처해서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럼에도 이 짓을 안하면 당연히 해야할 것을 안한 것 같아 스스로 답답해하며 신경을 쓴다.
종종 도대체 난 이걸 왜 하는걸까?라는 질문을 내게 하는데 그때마다 결론은 똑같았다.
이걸 안하는 순간, 내가 폭삭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절감할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늘 하던 것을 변함없이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아... 누가 들으면 환갑을 앞둔 사람 얘기인 줄 알겠다)
몸은 점점 피로를 느끼고 의욕도 확실히 줄어들고, 복잡한 것을 생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영화나 음악을 듣고 느낀 내 감상을 글로 적는 건 너무나 힘들어졌다.
오래 전처럼 하루에도 3~4개의 리뷰를 뚝딱 해치워나가는 것이 이젠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해보련다.
정말 이걸 중단하는 그 순간 난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굴복할 것만 같다.
누군가는 그걸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고 말한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수긍하고 몸을 맡기라고 얘기하던데 난 아직도 그게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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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슈팅 게임인 FPS를 아직도 종종 즐긴다.
오래전 언리얼과 퀘이크가 FPS 시장을 양분했을 때 난 적수가 거의 없는 언리얼러로 나름 유명했었다.
아무튼... 그뒤로도 꾸준히 FPS를 해왔는데 지금은 고스트 리콘 팬텀이라는 FPS만 주로 즐긴다.
내 아들뻘인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인 이 게임에서 난 아직까지 압도적일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다.
들어가기도 힘들고 가장 실력있는 클랜이라는 VR1 클랜에서도 러브콜이 올 정도이니 아직 내 실력이 완전히 녹슬진 않았군...하는 위안을 얻으면서 내 나이를 잊기도 한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한해가 갈수록 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걸.
순간반응은 점점 더 느려질 거고 게임 진행을 파악하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질 것이며 내가 의도한 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별것도 아닌 게임인데 뭘...? 이라고 생각할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몇십 년을 해온 장르 게임에서 내가 더이상 버틸 수 없다고 느껴지게 되면 내 상실감은 제법 클 것 같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한때는 잘 했는데'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게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생각만 해도 은근 상실감이 크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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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다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늘 마음 속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핑계는 잘도 갖다 붙였다.
일 때문에, 바빠서, 돈이 없어서...
그러면서 난 이런 재능이 있었는데 어쩌구... 그래봐야 결국 난 아무것도 못할 인간이었을 뿐인데 이걸 받아들이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부질없는 미련은 날려보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미련을 갖고 미적대던 내 자신이 오히려 그립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모습을 매일 발견한다는 건 정말 한심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면서 다시 되뇐거지. 현재의 내 모습이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난 정말 ... 미련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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