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üeros / 궤로스>

Directed by 알론조 루이즈팔라치오스 (Alonso Ruizpalacios)
2014 / 106min / Mexico
테녹 후에르타 (Tenoch Huerta), 세바스찬 아귀레 (Sebastian Aguirre), 일세 살라사 (Ilse Salas)

 

스포일러 가득한 글이므로 영화를 보실 분은 가급적 패스해주시길.
멕시코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빈곤', '절망', '카르텔', '국경', '밀입국'등의 부정적 단어가 떠오른다.
사실 이러한 부정적 언어로 밖에 설명이 될 수 없는 나라가 NAFTA 이후 급속히 몰락한 멕시코이기도 하니
이렇게 암담한 현실을 다루는 영화들이 양산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영화 <궤로스>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헤드폰을 끼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보고 그와 비슷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 또 가슴 아픈 영화 한편이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이 영화는 아름답다.
아름답고 가슴이 뛰며 나른한 일상에 타성적으로 젖어있던 내 가슴과 뇌세포를 마구 흔들어 깨운다.
그렇다고 지난한 멕시코의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지성인의 단결과 군중의 힘을 믿는 감독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을 뿐이다.
불온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치열한 논쟁을 통한 군중의 힘이라고 그는 믿는 듯 하다.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듯 하다.
그렇지...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나.

1999년, 멕시코의 베라크루즈.
한 소년(토마스)이 약간의 말썽을 피운뒤 그를 감당할 수 없어하는 어머니에 의해 멕시코 시티에 살고 있는 형(페데리코 aka 솜브라)에게 보내진다.
낡디 낡은 아파트. 전기도 끊기고 먹을 것도 변변찮은 이 정도의 배경이라면 사실 그간 접해온 멕시코 영화를 생각해볼 때 으레 갱단이 등장하고
납치와 범죄 위협에 끊임없는 노출되는 범죄물이 되어버려야할텐데 토마스가 찾아간 피부색이 다른 형 솜브라는 멕시코 국립대학(우남, UNAM 대학)의 대학생이다. 카르텔 갱이 아니라는거지.ㅎ
형 솜브라는 평소대로라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할테지만 정부가 국립대학에도 등록금을 올린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이에 대항하여 대학이 파업을 선언한 상태라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솜브라와 친구 산토스는 전기도 끊긴 집에서 룸펜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심지어 아랫층 어른들이 집을 비우면 그들의 정신지체장애 딸에게 전기 코드를 올려달라고 하여 전기를 끌어쓰며 말이지.
변변찮은 식사를 하고, 전기를 끌어오면 라디오를 듣거나 의미없는 컴퓨터를 하는 등 솜브라와 산토스는 무기력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어린 동생 토마스로부터 Scab(파업에 동참하지 않는자)이라는 말까지 듣지만 그는 'We're on strike from the strike (우린 파업으로부터 파업한거야)'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군중 속으로 나아가길 거부한다.
이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토마스는 자신이 우상처럼 여기는 전설적인 가수  Epigmeneo Cruz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가야겠다고 얘기한다.
전혀 마음에 없던 솜브라와 산토스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터져 부랴부랴 집을 나와 토마스를 데리고 그와 함께 전설의 가수를 찾아 가지만 뜻하지 않는 일들을 겪으면서 영화는 로드 무비의 외양을 걸친다.
그리고 약간의 소란스럽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 끝에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거부했던 파업 중인 학교에 도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 영화가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오던 주제의식이 강렬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학교가 삶이 되어버린 학생들, 시위 학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 군데군데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쪽잠을 자는 학생들, 시위의 방향성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오고가는 세미나룸...
삶의 공간으로서의 대학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리며 무언가 잊고 있던,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더라.
이렇듯 감독은 우남(UNAM) 대학교의 시위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들의 논쟁을 통해 멕시코라는 국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신,
그리고 다양한 의견과 논쟁이 동지적 관점에서 벌어질 때 건강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주고 싶은 듯 하다.
실제로 해적 방송을 진행하고 우남 대학교의 파업을 주도하는, 솜브라의 연인이기도 한 여성 '애나'는
자신과 다른 노선을 격렬한 언어로 주장하는 이들과의 논쟁에 대해서도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이 시위의 방향성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감독은 단순히 군중 속으로 향하는 지성인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군중의 모습들은 우리가 여느 멕시코 소재의 영화에서 봐왔던 위협과 동정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따뜻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멕시코 민중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애나가 'i just remebered'라는 말을 뗀 후 솜브라와 나누는 깊고 깊은 키스를 통해 완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 하다. 혁명의 시작은 타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확신이라고. (아... 그 키스 장면은 정말...)

마지막 장면에서,
차에서 내려 시위대 속으로 함께 하는 애나와 그녀 뒤를 따라 가다가 멈추어선 솜브라를 토마스가 크게 부른다.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솜브라가 토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 모습을 토마스는 카메라로 찍는다.
이 장면의 여운은 가슴 벅찰 정도로 강렬하다.

이 영화가 이토록 아름답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힘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장 뤽 고다르의 <A Bout De Souffle/네 멋대로 해라>같은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사실인데 흑백 필름을 통해 빛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감각적이고 종종 호흡이 긴 롱테이크를 통해 등장 인물의 움직임과 심리를 정확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은 영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영화 초반 토마스가 물풍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것처럼, 솜브라 일행이 타고 가던 차에 난데없이 벽돌이 떨어져 큰일을 당할 뻔하는데
이는 누구의 삶도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인 동시에, 격렬한 불안함이 이를 관조하던 이들, 또는 군중 속으로 함께 할 것을 주저하는 이들(유리창 안에 안주하고 있는 이들)의 삶 역시 위협할 수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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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 <Güeros>는 일반적인 라틴 어메리카 사람과 달리 백인에 가까운 피부색을 가진 이들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토마스는 형 솜브라와 달리 백인이라고 봐야하는 피부색을 갖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형제인지에 대해서는 영화 내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토마스를 소개하는 매 순간마다 코믹하게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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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2014년 9월 26일,
멕시코 게레로(Guerrero)주 아요트시나파(Ayotzinapa)의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농촌사범학교 소속 학생들이 교사 임용 차별에 대항하여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사주한 카르텔 폭력배의 발포로 인해 6명이 숨지고 43명이 실종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포스터는 실종된 젊은이들을 찾는다는 게레로주의 공고인데, 내용인 즉 실종된 젊은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이에게

현상금 백만페소 (약... 8천만원 이상)를 지급하며 24시간 정보를 받으며 통화내용은 익명과 비밀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멕시코 주정부 또는 경찰의 익명과 비밀이 보장된다는 말을 믿는 멕시코인들은 거의 없다)

이후 정체 불명이 구덩이 6개가 발견되고 시신 28구가 발견되었는데 이 시신이 실종된 젊은이들일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었다.
국내에도 그렇게 외신이 타전됐었고.
하지만 유전자 감식 결과 이 시신들은 실종된 젊은이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는거.(도대체 이 나라는...)
이후 발견된 시신에서 실종 학생의 dna가 검출되었고 2015년 멕시코 주정부는 실종학생들이 전원 사살된 후 불에 태워졌다고 공식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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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üeros / 궤로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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