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블랑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안셀 아담스 (Ansel Adams) '딸에게 준 선물'展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왔다.
일찍 도착해서 50분 정도 여유가 있어 주변을 둘러봤다.(그 사진은 따로 올림)

날씨가... 정말정말정말... 좋았다.
요즘은 이렇게 멋진 날씨가 가끔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온전히 그냥 즐겁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정말 그게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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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셀 아담스의 사진을 자주 봤다.
물론 인터넷에서.

 

 ( 안셀 아담스 구글 이미지들... )

 

 

인터넷에서 볼 때만 해도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작가'라고 호칭달고 출사나간다고 하여 우르르 떼지어 나간 뒤
뷰포인트까지 점령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이 나라에서,
안셀 아담스가 보여주는 풍경 사진들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 많은 분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번 전시는 안셀 아담스의 사진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관계있는 알란 로스를 비롯한 다른 사진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 역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경이롭다.
다만, 안셀 아담스의 작품은 확실히 다르다.

나같은 문외한이 뭐라 떠들어댄다는게 무척... 조심스럽지만,
안셀 아담스의 사진은 풍경을 보여주지만 한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반드시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오브제가 있다.
거대하고 놀라운 풍광이 하나의 바위를, 한줄기 강을,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호수의 수면을, 외롭게 서있는 하나의 가옥을,
울창한 숲의 몇그루 나무를... 포용하고 받쳐주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다른 작가들의 사진이 장대하고 경이로운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과 달리 안셀 아담스의 사진에는 그의 명확한 시선과 애정,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러한 사진들을 20~50년대에 대중들에게 선보였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그가 보여준 노력들(존 시스템-zone system 같은)의 결과로 보여진 사진들 또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트룸과 포토샵이면 어지간한 사진은 다 자기 입맛에 맞게 보정해내는 지금과 달리 그가 촬영과 인화의 과정을 통해서 보여준 이 결과물로서의 사진은

결코 작가가 발딛고 찍은 공간과 분리되어있지 않다.

내가 발을 딛고 뷰파인더로 본 세상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또다른 분리된 세상을 떡보정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의 판타지가 아닌,
작가가 발자욱을 남긴 공간이 사진과 사진 사이에 단절된 괴리없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에 새삼 경외감이 들었다.

 

 

 

 

 

어르신들, 저도 40 중반이 넘은 사람이지만...
제발 우르르 등산가방에 등산복입고 사진전 보러 와서 엄청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지는 않았음 해요.
그건 최소한이 다른 관람객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요?

 

 

 

 

 

 

 

 

 

줄을 주욱... 늘어섰는데 티케팅 스탭이 한분 뿐이라니...
물론 이후에 한분 더 증원되었겠지?

 

 

 

 

 

 

 

 

 

 

 

 

 

 

 

 

 

입장.

 

 

 

 

 

 

 

 

 

 

 

 

 

 

 

 

 

 

 

 

 

 

 

 

 

아... 이런...
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단다.
난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들이 꽤 보여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는데.-_-;;;
그런데 사진 촬영이 안된다는 사실이 사실 관람에는 훨씬 유익한 듯 하다.
작품에 더더욱 집중할 수 있으니.
게다가... 안셀 아담스의 작품을 찍는다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내가 그 작품의 이미지를 다시 기억해내는 것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도록을 구입할까했는데... 50,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선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
차라리 나중에 해외에 그의 사진집을 주문하는 것이 나을 듯해서 그냥 왔다.

 

 

 

 

 

 

 

 

 

 

 

 

 

 

 

 

 

 

 

 

 

 

 

 

 

 

 

 

 

 

 

 

 

 

알란 로스의 저 누드 사진.
너무나 좋았다.
아름답다. 정말.

 

 

 

 

 

 

 

 

이런 느낌이다.
안셀 아담스의 풍경은.

 

 

 

 

 

 

 

 

 

 

 

 

 

 

 

 

 

와이프가 이 말이 참 좋다고.

 

 

 

 

 

 

 

 

 

 

 

 

 

 

 

 

 

 

 

 

 

 

 

 

 

 

 

안셀 아담스가 인화를 위해 고안한 존 시스템 (Zone System)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중 한 노파가 집 안에 앉아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역광으로 방안에 창을 등지고 앉아있는 여성의 사진을 찍은 것인데,
쓸쓸해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창밖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의 모습에 의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사진찍는 분들은 이렇게 어두운 곳, 역광의 사진을 찍으면 인물 뒤의 배경은 노출오버가 되기 때문에

피사체와 풍경을 모두 잘 담아내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우린 플래쉬를 쓰거나, 노출고정이 가능한 카메라는 어떻게든 최대한 노출고정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라이트룸이나 포토샵에서 창밖의 풍경이 잘 보이도록 밝은 곳의 감도 조정을 한다.

안셀 아담스의 그 작품은 포토샵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의 것이라

그는 순전히 자신이 고안한 존 시스템 (Zone System)을 근거로 인화의 과정을 통해 결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우린 얼마전 전쟁도 불사하자는 광기어린 미친 수꼴들의 황당한 주장을 종종 접하곤 했다.
안셀 아담스는 전쟁 전/후의 일본인들을 찍으며 그들이 우리와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사람들임을 강조한다.
당장 2차 대전, 히틀러의 광기로 무수한 과오를 저지른 독일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독일인들은 모두 머리에 뿔달린 악마였을까?
전쟁은 개인의 사상과 자유, 의지를 폭압적 광기로 억누르고 모두를 공범으로 만들고자 한다.

 

 

 

 

 

 

 

 

 

 

 

 

 

 

 

 

 

 

 

 

 

 

 

 

 

 

 

 

 

 

 

 

 

 

 

 

 

 

 

 

 

정말 잘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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