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dejegerne/헤드헌터스] directed by Morten Tyldum

주인공 키가 168cm. 이런 나랑 똑같네.ㅎㅎㅎ
평균키가 유럽보다 작은 한국에서도 168cm란 키는 호빗인데, 과연 유럽에선 어떨까? 
의외로 우리나라보단 덜 신경쓰일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살아보질 않았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른 법.
누군가는 결코 숨을 거둘 때까지 조금의 깨달음도 모르고 탐욕만 채우다 돼지처럼 죽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탐욕의 비극적인 절망은 모른채 지금도 사람들의 등을 쳐대며 치즈를 입에 털어넣는 쥐새끼도 있는 법이다.
어찌보면, 진정한 행복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이 터무니없기까지한, 너무나 고루하게 느껴지기까지하는 이 말은 
우리에게 늘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챌 수 없는 행복의 존재에 대한 역설.
이 영화 역시 작은 에피소드가 인생을 집어삼켜버리는 과정에 휩쓸려 헤어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이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고 작은 행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정말 지난...하고 처절한 과정을 보여준다.
스릴러의 형식미, 그로인한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선사할 정도로 탄탄한 구성 역시 보여주고. 
관객의 판단을 흐리는 맥거핀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 방식이 서사적이기까지하고 매우 과장되지 않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잘 짜맞춰지도록 군데군데 효과적인 복선도 제법 잘 깔아 놨다.
물론 클라스라는 인물에 대해선 다소 생뚱맞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
작은 키 컴플렉스로 자신이 가진 집과 아내는 경제적 능력으로 샀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란더 역의 Kyrre Haugen Sydness는 
[Max Manus]를 통해 낯익은 분들이 제법 계실 듯.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the Guard/더 가드] directed by John Michael mcDonagh


브랜던 글리슨(Brendan Gleeson)의 씨니컬하면서도 위트넘치는 연기. 적당히 무게를 실어주는 돈 치들(Don Cheadle).
개인적으로 무진장 좋아하는 리암 커팅햄(Liam Cunningham)과 마크 스트롱(Mark Strong).
배우들의 호연은 둘째치고 영화 전반을 가득 지배하는 건조하고도 아침안개같은 블랙 코미디 요소들.
호젓하고 지나치게 조용하게까지 보이는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 뜬금없이 마약거물들이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FBI 요원 웬델(돈 치들). 이 작은 마을에서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며 
인생의 중심없이 그저 살아가는 듯한 경찰 보일(브랜던 글리슨).
담담하게 소소한 사건들을 호들갑떨지 않고 따라가다보면 삶을 내걸고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의 동기가 대단하거나 
먼것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 영화는 툭 던져 놓는다.
간혹 미국의 세계경찰, 패권주의에 대한 비아냥이 드러나는데 이는 정의를 위한 액션의 근거가 절차와 청교도 윤리에 기반한다는(핑계), 
다분히 위선적인 정치적 동기들에 의해 움직이는 패권국가와 달리 세상의 정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내 주변과 내 스스로의 신념을 위해 시작될 수 있다는 항변을 하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마지막 결말에 대해 궁금할 수 있으나,
아일랜드에 마약거물 잡으러 파견된 FBI 웬델(돈 치들)이 떠올리는 보일(브랜던 글리슨)의 모습을 보면 답이 나온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메마른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









[50/50] directed by Jonathan Levine

병으로부터 살아남을 확률 50:50.
아직 30도 되지 않았는데 찾아온 희귀암.
스스로의 도덕적 위안과 다른 이유를 위해 연인 옆을 지켜준다는 여친.
기본적으로 군데군데 웃음을 안겨주지만 이 영화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암환자가 일상에 대한 의욕과 
욕망을 잃고 떠나는 이들을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현실에 대한 깊은 시선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생과 사의 확률만 반반이 아니라 우리가 순간순간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절반의 확률과 선택이라는 의미까지.
그 절반의 선택에서 사랑을 찾고 떠나보내며, 화해할 수 있거나 용서하지 못하거나. 결국 우리 인생은 모든 시간이 선택의 연속.
서툴지만 조금씩 다가가는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인생의 끝에서 다시 희망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영화.
조셉 고든 레빗이 [500일의 섬머]만한 무게감으로 다시 다가온 영화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

*
[Up in the Air/인 디 에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안나 켄드릭(Anna Kendrick)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기분좋네.
난 왜이리 안나 켄드릭이 예쁜 줄 몰겠어.









[the Ides of March/아이즈 오브 마치] directed by George Clooney

게임의 승자는 정의롭거나 의로운 신념으로 찬 이들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기검열을 통해 
차마 할 수 없는 악마의 한 수를 드는 사람들이라는거.
길게 썼지만 짧게 쓰면 결국 더 탐욕스러운 사람이, 더 많은 자본이 박애로운 자와 적은 자본을 이긴다.
더럽게도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작동하는 이 시스템은 이런 결과를 당연시 여긴다. 
조지 클루니가 이 영화를 만든 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똑같으니 누굴뽑아도 차악을 뽑는 것뿐이라는 메시지가 결코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분명히 존재하는 원작 소설을 각색하면서 결국엔 이기는 놈이 장땡... 아니, 선거에서 승리하는 자가 
바로 곧 선(善)이다라는 정당과 정치인이 스스로 외치는 존립의 당위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선거 캠프에 모여든 정치적 야망이 가득한 이들.
마치 스스로 정치적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입을 떠벌이지만, 
결국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가차없이 신념따위 집어던져버릴 수 있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선거 캠프의 모습들을 묘사한 영화들은 많지만 이 영화처럼 현실적이고도 한발자욱 떨어져서 묘사한 영화가 그리 많았던가?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적으로도 후반부에 한 번의 악수로 토사구팽당할 처지의 주인공의 심리가 그의 걸음과 표정 그리고 상대방과의 독대를 통해 보여지는 
절정 부분의 영화적 힘은 보통이 아니다. 조금씩조금씩 끌어모아 에너지를 한껏 서서히 몰아쳐올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
조지 클루니의 연출자로서의 능력에는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 영화로 그런 의구심이 대부분 날아가버렸을 정도.

완전 사족이지만...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들이 자본주의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고, 승자독식주의가 만연한 이따위 하자투성이 시스템을 
아직도 대안없는 가장 발전된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지금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
오랜만에...
내 그토록 좋아하던 에반 레이첼 우드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마리사 토메이.
이제 정말 늙었지만, 당신은 그래도 아름다워요.

**
라이언 고슬링은 연기 인생의 절정을 맞는구나.
내가 그를 주목한 영화는 [Half Nelson/하프 넬슨]. 
911이후 부시새끼의 어처구니없는 정책에 아무것도 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학교라는 작은 공간을 배경으로 보여줬던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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