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The Blue Notebooks] by Max Richter
-맥스 리히터의 음악은 딱히 장르를 얘기하기 곤란하다.
사실 이제와서 장르를 얘기한다는 것도 우습다. 장르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나눠 놓은 것 뿐. 현재는 갖은 장르를 넘나들면서 합종연횡하는 것이 대세가 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맥스 리히터는 단순한 하이브리드 플레이어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했고, 에딘버러 대학과 로얄 아카데미 음악
학교를 수료했다. 게다가 그가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뮤지션은 바로 세계적인 미니멀리스트인 Philip Glass다.(본인도 무척 좋아하는)
그는 이후 Piano Circus의 멤버로도 활동을 하는데 이 그룹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앰비언트의 대가

Brian Eno(이전엔 아트록 뮤지션으로 Roxy Music등등에서도 활동했던)와 필립 글래스만큼 인정받는 미니멀리스트인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그가 크로노스 쿼텟과 함께 한 은 거의 죽음이다!!!), 현대음악가 Arvo Part(제가 Heiner Goebbels만큼 좋아하는
현대음악가가 Arvo Part이다)등... 정말 살떨리게 놀라운 뮤지션들이 포진되어 있었던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 이후에 그는 영국의 혁신적인 일렉트로니카였던 The Future Sound of London(FSOL)의 작업을 도와주면서

일렉트로니카와 현대음악이 교류하는 접점을 지속적으로 실험해보기에 이른다.
맥스 리히터의 성향은 위에서 열거했듯 다분히 현대음악적인 클래식의 성향이 강하지만, 그가 The Clash같은 펑크 그룹이나

Pink Floyd등의 아트록 그룹들을 좋아하고, 이후 점점 CPU가 제어하는 전자음악에 깊이 심취하게 되면서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기묘한 일렉트로니카 세계를 열어가게 된다.
그가 영향을 받은 그룹 중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 바로 Kraftwerk인데,
이 그룹은 독일의 전자 그룹으로 사실상 테크노의 효시가 된 그룹이며, 아트록 을 듣는 이들에겐 제법 인지도가 있는 그룹이다.
어쨌든, 이렇게 다양한 음악적 취향과 탄탄한 음악적 깊이가 결합되어 이뤄진 [The Blue Notebooks]는 놀라운 음악적 희열을 안겨다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치 Klaus Schulze의 사색적 전자음악과 Arvo Part의 비장한 현대음악이 혼재 되어 있는 듯한 이 놀라운 음반은 2004년 일렉트로니카 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12. [올랭피오의 별] by 허클베리 핀
-자... 드뎌 한국 그룹의 음반이 나오기 시작한다.
2004년의 한국 음악씬에 대해 또 얘기하는 건 이제 손가락이 피곤해서 더는 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한국 록음악 씬에 좌절해 있다고 봐도 무방했으나, 2004년엔 몇몇 음반들이 상당한 완성도로 발표되었다.
물론... 이 음반들은 거의 대부분 참담한 판매고를 올리며, 전혀 대중 매체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런 그룹들이 나온다면

한국의 록씬이 그다지 암울하지만은 않을 거라 희망을 가져 본다.
허클베리 핀은 3호선 버터플라이와 함께 사실상 한국의 록씬을 대표하는 양대산맥 이라고 봐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와 다르게 허클베리 핀에게선 보다 더 인디적 감수성이 강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선 보다 더 '아마추어'적이다.(이 말이 나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이들의 2004년작 [올랭피오의 별]은 사실 작년 한국 록씬의 거의 독보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것이 분명 그들의 네임 밸류에 기인한 감도 없지 않으나, 분명 작년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기타 사운드는 사운드의 맥을 천천히 짚어 나가기 시작했고 <헤이 컴>같은 곡에선 상당히 탄탄한 멜로디 라인과 원숙한 편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과대평가의 혐의는 있다고 느껴진다.
다가오는 2005년엔 더더욱 멋진 음반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13.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by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
-할 말이 정말 많은 음반이 나왔다.
몇몇 이들이 내게 작년 2004년을 빛낸 음반 중 왜 Nastyona를 빼놓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

요나의 카리스마가 번뜩거리는 Nastyona의 음반은 분명 한국 록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진중하고 아트 편향적인 음반임은 분명하나,

난 그 음악이 지닌 지나치게 수세적이고, 회귀적인 사운드가 그리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한국의 편향된 음악 시장에서나 나올 수 있을 법한 '대안적인 음악'의 한 형태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사실 그런 의미에서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의 음악은 보다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 당연하다.
전형적인 싸이키델릭 음악을 구사하고 있는 있는 이들은 와우와우 페달과 재지한 스타일에 격정적인 엇박의 비트와

브레이크를 넣어가며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다. 사운드의 볼륨과 음장감이 변변찮은 사운드 엔지니어링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임 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두번째 곡인 를 들어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클럽 공연 당시에도 인기가 없었으며, 1집이자 마지막 음반인 본작을 내곤 해체해버렸다.
척박한 한국 록 음악 시장에서 거의 횃불같은 음반을 내놓고는 그냥 사라져간...
비운의 그룹이자 전설의 그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는 벌레 이름이라고 한다. 허허허~)

 

 

 

 

 

 

14. [1st Album] by 가리온
-참... 일찍도 나왔다.
거의 5년인가 6년을 기다린 것 같다.
예전 신촌의 클럽에서 이들이 활동할 때 그때부터 내 개인적으론 이 나라의 거의 유일한 힙합의 얼터너티브라고 믿어왔던 이들.
하지만 음반을 발표한다는 얘기는 한해 두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고, 난 이들을 양치기 소년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었다. -_-;;
결국 작년에 발매된 이들의 데뷔 앨범은 예의 놀라운 라임,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샘플링등 그들의 재능을 그대로 드러낸 음반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인지 보다 더 높은 퀄리티를 기대했던 내겐 사실 완전히 만족스러운 음반은 아니었다.
이들의 놀라운 래핑을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이 즐비...하지만, <자장가>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내가 이들을 좋아하는 것은 이들의 음악이 그 흔한 있는 '척'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괜시리 어지간히 래핑하다 갑작스레 모두 입을 모아 합창을 하는 듯한 촌스러움도 없다. 말초신경 자극적인,

서브컬쳐를 가장한 저열함으로 똘똘 뭉친 섹스와 폭력에 대한 가사도 아니여서 좋다.
힙합을 좋아하면서도 의외로 가리온을 모르는 분들이 있던데, 절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음반이다.

 

 

 

 

 

 

 

15. [Non-Linear] by MOT
-사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놀랐다.
대부분의 한국 록음악이 한국적 감수성의 큰 울타리 밖으로 좀처럼 발을 내딯지
않는 것과 달리 이 음반은 적어도 울타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몇걸음은 내딯은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론 Trip-Hop의 리듬 라인에 음반 제목처럼 상당히 비선형적인 음소들, 그리고 듣는 이의 마음 속으로 침잠하는 가사들은

이 음반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과 이 두명의 멤버들이 나름대로 뮤지션으로서의 고뇌와 철학을 잘 반영하지 않았나...하는 믿음을 가게 한다.
물론, 이들의 음반이 너무 지나치게 치밀하고 숨쉴 틈 조차 없어서, 그들의 아름다운 곡인 <자랑>에 이르러서 조차도

마냥 편안하게 곡에 몸을 맡길 수 없는 것은 가장 큰 단점이겠지만(동시에 장점일 수도) 작년에 나온 거의 유일한

한국의 포스트 록 성향의 음반이라고 봐도 무방하기에 난 이 음반에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우린 나라에선 인디라고 하지만, 해외에서의 인디란 어떤 시대적인 흐름을 제시하고

미래를 겨냥하는 조향타같은 역할을 하는 음악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마냥 부러워만 했던 나에게 MOT은 아쉬운 면은 많더라도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키는 단비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2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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