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たそがれ淸兵衛/황혼의 세이베에/Twilight Samura,the]
Directed by Yoji Yamada(山田洋次)
2002 / approx 129 min /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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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부는 한류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언급을 할려치면 어김없이 '찌질이'란
소리를 듣는다. 천성적인 문화 열등감, 문화 사대주의자란 소리가 거침없이 돌아온다.
조금만 현 정부와 대통력의 정책에 동조해도 '노빠'로 매도되는 것과 사실 다를 바가 없다.

샴페인 참... 일찍 터트렸다.
이모 명예교수께서 한국이 이래저래 경제니 뭐니 다 져도 문화의 매력은 지지 않았다며
흥분하며 얘기하시는 걸 보고, 이전에도 언급했던 이모PD의 '한국 드라마가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제발 이젠 차분히 우리 문화 컨텐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증폭되기만 한다.
어제 끝부분만 봤지만 조영남씨가 한류는 분명 썰물처럼 사라질 것이고,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며 말 끝부분에 '우리가 무슨...'이란 직설적인 여운을 남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한섭 교수의 한국 영화붐이 과장된 거품이며, 이것도 곧 풍선껌 단물빠지고 터지듯,
사라질 것이란 논조에도 난 진작부터 동의해왔다.

1,000만 영화 관객이란, 정말 가당치도 않는 숫자놀음의 작위적 통계 놀음에 빠져 있느니 이제부터 우리 문화/예술 컨텐츠의 현 주소를 가늠하고,

나름의 전략과 시스템의 구축에 힘써야할 때다. 언제까지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체계적으로 털' 방법만 연구할 건가?

우리 영화가 아무리 규모에서 일본을 앞지른다고 해도,
이런 영화 한편에 문화적 열등감과 부러움은 결코 사그러들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거장이란 분들의 영화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를 지루하지 않고 필름에 엉겨 붙은 듯 몰입하게 하는 능력.
이마무라 쇼헤이와 함께 일본의 마지막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야마다 요지 감독의 2002년작 [たそがれ淸兵衛/황혼의 사무라이]는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녹아들어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영화가 가진 순기능적 미학이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바로 그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부 말기, 부인의 병환과 치매에 걸린 노모, 두 어린 딸을 돌보느라 검에 대한 뜻을 잃고 초췌해지는 말단 사무라이 이구치(眞田廣之/사나다 히로유키).
그는 창고지기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나, 일만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부업일에 전념하느라 '칼퇴근 세이베에'란 별명으로 동료들한테도 따돌림을 당한다.
사무라이는 허울 뿐, 인생의 버거움 앞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세이베에는 어느날 그가 흠모했던 친구의 여동생 토모에(宮澤りえ/미야자와 리에)를 만나가 되고,

자신의 가난을 떨칠 수 있는 '번'의 명령을 받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가 일본의 만화들(사무라이 디퍼 쿄우, 바람의 검심등)에서 보던 살벌하기만 한 사무라이가 아니라,

현실의 파도에서 명확한 비전을 찾지 못하고 중심을 잃은 나락한 사무라이들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원작을 영화화한 이 영화에서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이제 가장으로서의 존재감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는 이구치를 통해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성찰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토모에를 옭죄는 환경들은 지금도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이구치를 홀대하는 동료들이나 그가 속한 조직은 지금의 일본 사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사회 속에서 개인을 성찰한다는 것이 얼마나 개인으로서 버거운 일인 지, 스스로 만족하는 작은 삶에 안주하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도 포기해야 하는 지를 이 영화는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이구치가 휘두르는 검은 겉멋이 없고, 진중하다.
그가 휘두르는 칼의 날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념만을 향한다.
세상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멋대로 흉포하게 흘러가지만 이구치는 언제나 한결같이 변치 않는 신념으로 칼을 휘두른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으로 극히 일부분이 과장되고 비약되어 버린 '사무라이'의 모습을 천천히 들여다 본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놀랍게도 더더욱 사무라이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도 없이 많은 적과 둘려싸여 비장감을 풍기며 검을 휘두르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일상에 파묻혀 자신의 공간과 하나가 되어 가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한없이 경외스럽기도 하지만, 화가 나기도 한다.
형편없는 영화들이 즐비한... 일본 영화계지만, 간혹 이런 영화들이 일년에 몇 편 씩 나오는 걸 보면,

과거 그들의 황금시대에 구축한 놀라운 전통의 저력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일상의 공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이미 이마무라 쇼헤이가, 오즈 야스지로가 보여준 바 있지 않나... 오즈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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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에 역의 미야자와 리에의 연기도 훌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예전 누드집(산타페)을 냈을 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아름답다.
아무래도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무언가 달라진 듯한 것 같다.

***
야마다 요지 감독은 이 영화의 원작자인 '후자사와 슈헤이'의 또다른 작품을 갖고
작년 동경영화제에서 신작을 발표했다. 그 영화 또한 정말이지 보고 싶다.
[隱し劍 鬼の爪/비검 오니노츠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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