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과중한 업무에 지쳐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피로함에 괴로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욕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속에서 불끈불끈 솟아 올랐었지.

하지만 현실적인 걱정을 안할 수 없었다.

아들이 대학 진학한 후 운동선수라는 특성상 매월 상당히 많은-우리 입장에선- 돈을 보내줘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졌고,

여러번 얘기했듯이 브랜드 런칭을 사실상 혼자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낼 수도 없었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여러 곳의 목적지에 대한 미련은 다 접어놓고 한동안 여행 생각은 하지 말자며 그 마음, 마음 저 구석에 고이 접어놓았지.

당연히... 서울에서의 1박2일 나들이를 그닥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2년 전인가 익선동에서 한 번 그렇게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익선동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막 뜨고 있을 때였고 우린 익선동이 확 뜨기 전에 한 번 제대로 구경해보자는 심산에 익선동의 한 숙소를 잡고 1박2일을 보냈던 거였다.

하지만 그때 묵었던 숙소는 우리가 막연하게 '낭만'이라고 떠올릴 법한 그런 수준과는 전혀 다르게 그냥 싸구려 가구를 갖다놓은 싸구려 숙소일 뿐이었다.

저렴한 숙박료가 익선동에 쌓여진 겹겹의 시간을 옛 것과 낡은 것으로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주 싸구려 가구와 누가 봐도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대충 성의없게 마감한 객실일  뿐이어서 대단히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예약한 내 잘못이 크지.

만약 와이프에게 알아봐달라고 했다면 절대로 그런 실수는 없었을거다.


그 뒤론 서울에서의 1박2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집에서 합정동까진 고작 21km 정도 거리이고 우리가 주로 외출 목적지로 삼는 곳이 합정/상수/망원/연남/서교/연희동이니... 굳이 이 부근에 숙박을 하면서 하루를 보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업무로 피곤했던 한 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친구들과 근사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저 우리가 그런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메리어트 호텔 계열의 Ryse Autograph Collection이 오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와이프와 상의한 뒤 투숙하기로 결정했다.

 

 

 

 

 

 

 

 

난 캐주얼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한국에서 구현될 때 균형을 잃고 카피와 과함으로 어색하게 표현되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어느 호텔은 누가 봐도 Jielde의 디자인과 완전히 똑같은 조명을 객실마다 갖다 놨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품의 브랜드를 확인할 수 없었고,

누가 봐도 Rolf Benz의 소파 디자인인데 아쉬운 마무리의 카피 제품임을 확인하게 된 공간도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색상은 늘 과하게 채도를 올리고, 여러 색상을 피곤하게 전시한 경우도 여러번 맞닥뜨렸다.

그래서 캐주얼한 인테리어 디자인이라는게 정말... 쉽지 않은거구나...란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었지.


그런 면에서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이하 '라이즈')의 객실을 포함한 공간의 인테리어는 꽤 훌륭하게 잘 꾸며졌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문 디자이너도 아니고 따로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어서 이런 말을 한다는게 상당히 주제넘는 다는 생각을 하지만,

모던 디자인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마무리의 디테일과 소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디자인도 소재가 나쁘거나 디테일이 나쁘면 오픈마켓에서 최저가로 검색해서 구입할 수 있는 무언가와 그닥 변별력을 느끼기 힘들다.

제품 또는 대상의 디자인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이 두가지 요소는 상품의 가치를 극명하게 구분질 수 있도록 작동한다.

 

 

 

 

 

 

 

 

세상은 점점 더 물건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돈을 벌기 힘들어지고 있다.

제품,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채널은 점점 많아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은 그 많은 채널들을 통해 제품,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최종 구매는 매우 소수의 정해지다시피 한 플랫폼을 통해 하게 된다.

자신들만의 온라인 공간에서 뚝심있게 판매해오던 업체들도 하나둘 스토어팜같은 대자본의 플랫폼에 발을 들여놓기 마련이다.

정보는 점점 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졌지만 이러한 정보들에 대한 가치 판단의 주체는 여전히 최종구매자에게 떠넘겨져있기 때문에 대중은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거나 타인의 리뷰에 의존하게 된다.

당연히 이러한 이유로 내 경멸하는 바이럴 광고가 만연하게 되지.

30년 전쯤, 구전 효과라고 얘기되던 바이럴 광고가 이젠 가짜 정보를 양산하는 양아치 마케팅이 실체인양 취급된다는게 참... 웃기지.

업체들이 상품권 혹은 증정상품을 걸고 벌이는 상품평 이벤트에도 난 매우 부정적이었다.

 

 

 

 

 

 

 

 

창업을 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엔 다른 이유도 있다.

과거엔 자본을 충분히 확보한 이들이 자본으로 적정 수준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었고 그게 그 타겟 시장에 먹혔다.

자본에 여력이 없는 업체들은 대체로 중저가 시장을 공략했고.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인가 자본가 집단도 분명하게 부류가 분류되기 시작하더라.

그저 돈많은 집에서 여유 자본을 갖고 기성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이들과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있는 가정에서 진보적이고 문화예술 친화적인 부모를 두어 어릴 적부터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체험하며 체화하여 남다른 안목과 취향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만의 확고하면서도 유연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현하는 이들.

세상은 결국 천천히 후자의 그룹이 리드하는 시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내가 뭘 알겠냐만...)

(아... 오해 없기를.

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이런 결론에 이르면서 씁쓸한 마음도 금할 길이 없다.

당장 내 자식이 이 극심한 한국의 경쟁사회에서 곧 저들과 경쟁할텐데...하는 생각을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위에 언급한 지점에서 난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어야한다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에 공감한다.

 

 

 

 

 

 

 

 

우린 종종 판매자와 판매 상품의 이미지가 합치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매우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제 우리도 고급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를 런칭하려고 한다'라는 대표들을 한 두명 본게 아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그 말씀하신 '고급 브랜드'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기획할 거냐고 물었다.

대표가 혼자의 힘으로?

아니면 과중한 업무와 낮은 임금으로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직원들로?

많은 대표들과 얘기를 해봤다.

내가 잘 났다는 그런 얘기... 절대 아니니 제발 오해마시고-종종 그런 분들이 계세요...-

난 그 대표들이 어떤 문화를 즐기고 어떻게 여가 시간을 보내며 어떤 소비생활을 하는지 물어본다.

150만원 정도의 소파를 판매하던 업체가 난데없이 400만원짜리 소파를 판매할 때 어떤 소구포인트를 내세울까?

뻔하다.


- 가죽의 질이 다르다.

- 내장재가 탁월하다.(이태리 어디어디...)

- 사진을 공들여 찍는다...


지금 난데없이 1,000만원짜리 소파를 내놓은 어느 업체도 여기서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브랜드를 통째로 이미징해야한다는 생각은 거의... 안하고 그저 디자인 잘 빼고 소재 고급화하고 사진 잘 찍으면 그럴싸한 제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업계에서 꽤 잘 나간다는 업체들도 대체로 다 이런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그 제품들은 길게 보면 6개월에서 1년 후에 모두... 사라지고 원래 그 업체가 지키고 있는 포지션으로 돌아가게 되지.


내가 그렇게 살지 않고,

직원들이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여력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고급 브랜드나 디자인 브랜드를 기획할 수 있냐는 말이지.


이런 뻔한 소리를 하면서도...

나 역시 내가 언급한 이유로 인해 우리 브랜드에 대한 걱정이 깊다.

하고 싶은 것 중 반 이상은 '회사 형편' 또는 '회사 사정'을 핑계로 미루거나 포기하기에 급급하지 않나.

 

 

 

 

 

 

 

 

게다가...

나 역시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니 이 고민의 골은 더욱더 깊어질 뿐이다.

 

 

 

 

 

 

 

 

1박 2일 동안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Ryse, Autograph Collection)에서 먹고 즐기고 집에 돌아오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난 어차피 금수저도, 은수저도, 동수저도 아니고.

나이는 50이 코 앞이고...

가진 재산따위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지.

거기에 대단한 문화적 식견, 예술적 소양 같은 것도 없다.

블로그나 인스타에 먹고 즐기는 걸 많이 찍어 올려서 종종 오해를 사고 있지만 나 스스로 내가 얼마나 얄팍한 인간이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투정부릴 정도로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탁월한 안목과 취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런칭하는 브랜드들을 보면 더더욱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예전엔 그런 브랜드를 만나면 뭔가 즐겁고 더 의욕이 생겼는데 이젠 그런 긍정적인 효과는 조금도 없이... 그저 한없이 내가 작아진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투정부릴 정도로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탁월한 안목과 취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런칭하는 브랜드들을 보면 더더욱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예전엔 그런 브랜드를 만나면 뭔가 즐겁고 더 의욕이 생겼는데 이젠 그런 긍정적인 효과는 조금도 없이... 그저 한없이 내가 작아진다.

 

 

 

 

 

 

 

 

암튼...

넋두리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사진과 어울리는 얘기로.


랑빠스81.

난 이 집을 정말 좋아한다.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내가 방문하는 횟수보다 훠어어어얼씬 더 이 집을 좋아한다.

서울 1박2일 나늘이 첫 날인 지난 주 토요일 저녁,

주방에는 그 키 크고 멋진 지오 셰프께서 땀을 흘리며 음식을 내고 계셨다.

어느 음식점에 가봐도 요리사들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은 마음을 숙연케하지만,

이 날 따라 난 더더 치열한 삶의 노동자로서의 요리사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야 먹고나서 '맛있네 없네' 어쩌구 알지도 못하며 손가락으로 쉽게 두들겨대지만...

 

 

 

 

 

 

 

 

앤트러사이트 서교점 역시 대단히 인상깊은 공간이다.

이 정도의 공간을 구현할 정도의 인사이트를 가진 자본가라니(혹은 자본가 집단).

주차장 따위 신경쓰지않고 정원으로 꾸며 이계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저 배짱.

음악을 틀지 않아 온전히 사람과 사물의 운동성만으로 공간을 채운 저 배짱.

그런데...

조금 전 오랜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앤트러사이트의 2015년 임금 체불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혹스러웠고 맥이 빠지더군...

얼마 전의 아라리오 갤러리 이슈도 그렇고...

합리적, 상식적 자본가라는 존재는 판타지에 가까운 걸까?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2015년 이곳 대표의 와이프가 쓴 트윗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알바의 피땀을 볼모로 일군 커피 맛과 공간이라면... 아... 정말 나 혼란스럽다.

 

 

 

 

 

 

 

 

거기에 밑도 끝도 없이 훌륭한 커피...

라고 썼고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난감해졌다.

 

 

 

 

 

 

 

 

 

아아... 정말이지...




+

아니 하나 더...

와이프가 한달 넘도록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정말... 한달 만에 허벅지는 더 탄탄해지고 몸의 선이 살아나더라.

며칠 전 누워서 남산만...한 내 배를 보고 반성을 했다.

이러다 34사이즈 바지도 맞지 않는 시점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키도 겁나 작고 비율은 좌절할 정도인데 뚱뚱하기까지 하면 이게 어디 사람의 모습인가.ㅎㅎㅎ


나도 운동할거야...라고 와이프에게 선언했다.

언제부터?

지금 당장?

아니...

서울 사무실 오픈하면...ㅎㅎㅎ

(글렀어 글렀어)




++

횡설수설 끝.

마음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글 끝 ㅎㅎㅎ




+++

추가 내용

어느 페이스북 유저께서 제게 앤트러사이트의 임금체불 (2015년) 이슈를 알려주셨습니다.

솔직히... 이 공간을 격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난감한 심정입니다.

얼마전의 아라리오 갤러리 이슈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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